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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렘 May 03. 2022

토마토를 사러 갔다가

폐업이라니 폐업이라니 


지난 주말,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가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가 눈에 들어왔다. 

장보기 목록에 없었던 거긴 한데, 20년 넘게 포도밭집 막내딸로 살아온 경력 때문인지 몰라도 

늘 과일에는 진심인 나이기에 토마토 한 팩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장바구니에 넣진 못했다.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비쌌다. 


"내가 내일 도봉역 채소 가게 가서 사올게." 


토마토에 별 관심 없는 남편에게 선전포고하듯 말하고 조용히 토마토를 내려놨다. 


도봉역 채소 가게는 도봉역 2번 출구 즈음에 작게 자리 잡은 허름한 가게다. 

허름한 만큼 물건 가격도 착해서 지나가다 우연히 처음 들른 후 

과일이나 채소가 필요할 땐 집에서 조금 멀더라도 굳이 이 가게에 들러서 장을 봤다. 

마트에서 5개에 7,980원 하는 토마토가 

이 가게에서는 한바구니 12개에 3,000원 하는 수준이라 발품을 안 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방울 토마토 한 바구니에 3,000원 

상추, 깻잎, 청경채 할 것 없이 한 봉지에 1,000원 

딸기 한팩에 3,000원인데 두 팩 사면 5,000원 (마트에서는 1팩에 8,990원이었다.)

이 외에도 양배추, 양상추, 감자, 고구마, 당근, 오이, 가지, 마늘 등등 

단가가 너무 비싸서 (예를 들어 마트에서 대파가 한 단에 6,000원 하던 시절 등) 

못 들여오는 채소 말고는 다 있는 곳이 '도봉역 채소가게' 였다. 


월요일. 주말에 못산 토마토를 데리러 도봉역 채소 가게로 갔다. 

당연히 제철이니 토마토를 들여놨을 거라고 확신하고 발걸음도 가볍게. 

그런데, 멀리서도 잘 보일만큼 크게 


'폐                                           업' 


이라고 적힌 플랜카드가 걸려있고, 입구는 거대한 화분 두 개로 막혀 있었다. 

채소와 과일이 가득하던 그리고 하나라도 더 득템하려는 할머니, 할아부지, 아저씨, 아주머니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루던 가게 내부가 보기 싫게 텅 비어 있었다. 

을씨년스러웠다. 


도봉역 채소가게에는 목청이 아주 큰 대신에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에게도 

반말을 섞어가며 "엄마! 그거 거저야. 더 못 깎아." 라면서 너스레를 떨거나 

"엄마! 왜 그래, 진짜? 막 눌러보고 그러면 안 되지. 상품 상하잖아!" 하면서 

(진심으로) 곧잘 화를 내기도 하는 젊은 총각(?)들 이 주인으로 있었다. 


가끔은 청년들의 말투나 행동이 조금 도를 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보통 가격을 더 깎으려하거나, 사과 6알을 넣고 5알로 착각했다며 

당황해하는 손님을 대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팔뚝엔 문신이 있었고, 주로 까만색 반팔 쫄티를 입었고, 

존댓말은 애초에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은 청년들이었다. 


어쨌거나 토마토를 사러 간 도봉역 채소가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굳이 가게 앞까지 가서 안을 들여다봤다. 

마치 야반도주라도 한 것처럼 가게 안은 너저분하고 황망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아쉬운대로, 토마토는 건너편의 또다른 채소가게에 가서 사왔다. 


토마토가 든 까만 봉지를 흔들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도봉역 채소 가게 있잖아, 없어졌다?" 


결혼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   

갓 결혼한 지난 2020년은 수입이 아주 적었던 해였다. 

한 명의 아주 적은 월급으로 두 명이 살기 시작했을 무렵, 우리는 이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단돈 몇 천 원에 양손 가득 들고도 손이 모자랄 만큼 풍족한 채소와 과일을 듬뿍 안겨준 곳이었는데 

막상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이 좀 그랬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은 말했다. 


"양키들. 가버렸군." 


남편은 늘 어르신들에게 반말을 남발하는 청년들의 말투를 마음에 안 들어했지만 

그래도 떠난 마당에 양키들이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어 한소리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도 그 나름대로 아쉬움을 표현하는 

별로 낭만적이지 못한 표현방식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의 가난한 신혼을 풍족하게 받아준 가게 하나가 총총히 사라졌고, 

우리는 여전히 장을 보러 마트에 가지 않는다. 

운동한다는 명목하에 30분을 넘게 걸어 동네에서 가장 싼 슈퍼에 들르고 

가끔은 한 겨울에 허벅지가 얼 만큼 걷고 걸어야 겨우 도착하는 재래시장에 간다. 

그 시간이 나쁘지 않다.

다만 장 본 식량들이 가득 든 배낭을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 배낭을 짊어진 새내기 남편이 조금 안쓰러울 뿐. (하지만 이 모든 일은 그가 자처한 것이다.) 


다행히, 12개에 3,000원 준 토마토는 꽤 맛이 좋았다. 


"양ㅋ ㅣ...아니 청년들, 어디로 갔는진 모르겠지만 잘 살아요!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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