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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표 Nov 13. 2016

역사는 피를 먹고 자랐다.

2016년 11월 12일, 100만 평화집회의 소회

1. 어제 한국 민족사, 어쩌면 세계 역사 상 유례를 찾기 힘든 평화롭고 유희로 물들어진 거대 집회가 있었다. 첨예한 정치적 사안이 걸린 집회였음에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 폭행과 방화 같은 폭력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의 민족성이 가진 저력이라 단언할 수 있다.

2. 군중심리라는 것이 참 무섭다. 인구통계학적으로 100만의 사람이 모였을 때 그 중 1%의 과격한 성격의 사람이 섞여들어가는 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대략 그 수가 1만명이라고 쳐도 결코 적지 않은 수이고, 장시간의 대치 속에 쌓인 감정을 어느 사소한 계기로 분출하기 시작하여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을 때 폭력 시위로 변질되는 것이 다반사다.

3.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그런 필연적이면서도 우연적 사건으로 인해 역사는 드라마틱하게 변해왔다. 그래서 "역사는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2016년 11월 12일의 집회는 지금까지 역사가 그래왔던 것처럼, 일부 격앙된 사람들의 행동이 촉발되어 통제불가능한 유혈사태로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집회 허가 구역에 대한 혼선, 정치적 반대파의 대응 집회 소집, 야당 주요 인사들의 참여 등, 집회 전부터 폭동으로 이어질 만한 요소들이 하나 둘씩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회가 없었더라도 발생했을 61건의 소방응급대원의 출동이 있었고, 매우 적은 수의 과격한 행동을 한 23명 남짓의 시민이 연행된 것 외엔, 누가 누군가를 폭행하여 다치고 피를 흘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과격한 성미를 가진 사람이 경찰 차량위에 올라가서 분노의 감정을 내뿜었을 때, 이성을 가진 시민들은 그의 목소리에 동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비폭력"을 외치며 그의 행동을 제지하였다. 경찰을 밀치며 버스에서 떨어뜨리려 하자, 혹여나 누구 하나가 다칠까봐 - 심지어 완력을 행사하는 시민이 다칠 것까지 우려하며 "비폭력"을 주장했다.

5. 한국인의 민족성은 그런 것 같다.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서 혹은 허리케인이 불어닥쳐 치안력이 무너졌을 때, 상점을 약탈하고 평소에 맘에 안드는 누군가를 린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 자리에서 자신의 상태를 최대한 추스리고 그 다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가진 잉여를 나누어주는 성품. 평상시엔 죽자고 싸웠던 옆집 사람도 어려운 상황에선 생수 한 병을 건네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진 것이 한국인이라 생각한다. 나를 막는 경찰도 결국 누군가의 아들이고 우리 국민이다. 저 위에서 그토록 생지랄을 해대는 정치인들도 속내를 보면 참 불쌍하기 그지없는 작자들이라 생각하는 그런 심성.(하지만 법은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

6. 우리 개개인의 무의식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홍익인간의 정신은, 정말 미워 죽겠지만 그래도 함께 가야할 존재들이라는 의식과 행동을 이끌어내며,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저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IMF 같은 위기에 닥쳤을 때 우리 국민은 기꺼이 장롱 속의 돌반지를 꺼내 모았지 않았는가? 나는 우리 민족에게 이런 무형의 힘이 있기에 앞으로 겪을 세계사 유례가 없는 극난을 버티고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우리가 이런 저력을 가지고 있음을 일깨워준 박근혜에게 진심어린 고마움을 느낀다.

7. 이제 우리 청년들은 "한국이 자랑스러운 이유"를 꼽을 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거리가 하나 생겼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싸이의 강남스타일, 한류 아이돌 문화 같은 부차적인 문화가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진짜 선진 문화로 "2016년 11월 12일의 100만 시민 평화 집회"를 내세워도 부족함이 없다.

8. 하지만 누군가는 그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을런지 모른다. 그렇게 100만명이 모여서 "박근혜 하야"를 외쳤는데, 대체 바뀌는게 무엇인가? 를 생각해보면 참 답답하기 그지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민이 주말의 휴식을 뒤로하고, 생계를 포기하고, 수 시간이 걸리는 여정을 마다않고 모여 한 목소리를 만들어 냈는데, 다음 날 아침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어제와 똑같은 하루이고, 세상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9. 인류의 진보란 그런거다. 물리적 힘으로 빠르게 규정되던 질서의 방식이, 서로에게 덜 치명적인 위해를 주며 비록 느리지만 안정적인 제도와 합의로 질서를 잡는 방식으로 변화해온 것이다.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해결책이 당장의 사이다가 될 수는 있겠지만, 내가 100만의 에너지를 세계에 투사한 만큼, 반대로 100만의 마이너스 에너지가 나에게 닥치는 것이 사회의 법칙이다. 저쪽으로 100만쯤 기울어진 잣대를 내 쪽으로 옮겨오겠다고 100만의 에너지를 쓰는 것은 결국 공멸이다. 적당히 1천의 에너지를, 1만의 에너지를 쓰면서 서서히 이쪽으로 잣대를 바로 세우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지혜이며, 무형의 유산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것을 포기하고 사이다를 찾는 것은 수백년, 수천년간 쌓아온 우리의 공든 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짓과 같다.

10. 이제 시작이다. 우린 1천 정도의 에너지를 투사했고,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처럼 보일런지 모른다. 결과적으로는 그럴지라도 우린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있으며, 이 다음 1만의 에너지를 모으고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11. 그리고 이것이 진짜 우리가 달성해 낼 인류 역사 최초의 선진 문화 질서이며, 시간이 더해갈 수록 이것은 더 찬란하고 고귀한 것으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P.S. 어제 집회에 참여하신 수많은 시민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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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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