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가 난 후의 이야기
그날은 요즘 같은 비가 계속되는 장마철이 얼마나 그리웠나 모르겠다. 유난히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날이었다. 그리고 건조함은 극에 달해 한창 화재 소식이 뉴스를 가득 메웠던 나날들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일을 하다가 문득 창문을 바라본 것에서 시작되었다. 갑자기 창문 밖으로 우리 동네에서 까만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소하지 않은 불이 났음을 실감했다. 곧 까만 연기는 전쟁지의 연기처럼 번졌다. 화마가 불어닥쳤다는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불길이 치솟음과 동시에 시꺼먼 연기가 타올랐다. 자세히 보니 우리 동네였다. 불이 물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어릴 적 책에서 보았던 불 속에 악마의 표정을 한 모습이 과장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에 불이 난 건 처음은 아니었다. 오늘 화재사건이 3번째였다. 내가 알고 동네에 온 이후로 최근에 3건이었다.
하지만, 건조해지기 쉬운 불이 많이 나는 시기였다.
곧바로 오늘은 산에서 불이 났다는 경보 문자가 도착했다. 그다음 날에도 여기저기서 화재 소식이 들려왔다. 한참 동안 꺼지지 않아서 모두의 걱정을 샀던 울진 산불 소식도 생각이 났다.
비닐하우스를 집어삼키던 화마의 불길은 앞 건물에도 타고 올랐다. 건물의 벽면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선들이 다 까맣게 탔다. 불길이 번져 본격적으로 탄 건 아니었지만 불길이 치솟았다.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불길은 빠르게 모든 것을 태웠다.
소방차는 좁은 골목과 주차된 차들로 인해서 진입에 난황을 겪었다. 워낙 좋은 골목이기도 했고, 바로 근처에 공영주차장이 있어서 불길이 옮겨 붙어 2차 3차 피해가 예상되었다.
현장에서 소식을 전해주는 이웃들의 도움으로 나는 상황을 또다시 남편에게 공유했고, 같은 건물에 사는 단톡방에서도 난리가 났다. 불길이 집까지 번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소방차는 몇 대가 가득하게 골목을 채웠다. 진화작업이 한창이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소방 헬기까지 떴다. 몇 번이나 물을 떠 나르면서 불길을 잡으려고 했다. 그렇게 불길을 잡기 시작한 지 1시간가량이 되어서 연기는 점점 잠잠해졌다.
퇴근하면서 다시 한번 화재 장소 근처를 가보았다. 정말 길게 골조만 남아있는 모습이 화재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특히나 비닐하우스 같은 화훼단지의 화재는 정말 큰 불로 이어질 수 있었다. 아직도 공기 중에 화끈거리는 화마가 떠있는 느낌이었다. 얼른 집으로 들어가 창문을 닫았다.
우리 동네에 화재가 쓸고 지나간 곳은 총 3군데인데 그 기간은 각자 다르지만, 그 이후로 회복된 곳은 한 곳도 없다. 다만 들어가지 못하게 경찰 조사라는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을 뿐이었다.
회복의 기운은 하나도 없는 까맣게 탄 화재의 흔적들과 탄내는 서서히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가 했다. 나는 결혼하기 전 혼자 살던 아파트 옆에서 불이 나서 문을 열어두고 대피를 한 탓에 집 천장이 그을음으로 까맣게 된 적이 있다. 그을음은 잘 지워지지 않았고 탄내는 생각보다 오래갔다.
화재가 나서 난방 시설을 쓸 수 없게 된 후 나는 냉골이 된 방에서 끓인 물을 물통에 넣고 끌어안고 잤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전기장판을 틀어도 방의 냉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비닐하우스는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불타버린다. '불길'이라는 것도 그렇게 실감하게 된다. 까맣게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수개월의 기간이 걸렸다.
뼈대만 드러낸 자리에서 이제 지나가면서 화재 소식을 전하던 사람들은 갈길이 바쁘게 지나갈 뿐이었다. 화훼단지의 화재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게 특징이었다. 안에 있던 나무들도, 비닐도, 씨앗도 남지 않았다. 꽃들은 물론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했다.
신기하게도 그 한동만 타고 옆의 비닐하우스에는 불길이 옮겨 붙지 않았다. 우리 동네 화재의 공통점은 그러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 탄내를 치우지 못했다. 우리 동네는 재개발 예정지역이다. 화훼단지 상권이 멀리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상권을 두고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커서 갈등이 많았다. 간헐적으로 비닐하우스만 골라서 띄엄띄엄 불이 나는 게 나는 누군가의 의도적인 화재가 아닌가 음모설을 펼쳐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화재가 난 비닐하우스를 다시 찾았을 때는 그곳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길고양이인 건지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고양인지 알 수 없었다. 탄내가 진동을 할 텐데 한참이나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럼에도 화마가 긁고 지나간 생채기는 오래오래 남아있었다.
그 사이에서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고양이들도, 강아지들도, 탄내가 더 잘 날법한데, 그들이 살던 공간인 것처럼 지나다니지만, 어쩐지 사람들은 탄내가 나는 불난 집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불구경은 해도, 불이 나고 난 이후에 회복되는 과정을 보는 일은 흔하지 않다. 사실은, 화재의 그 현장도 불을 끄는 현장도 모두 중요한 일이다. 특히나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불을 끄기 위해 현장으로 투입되는 것은 정말 존경받을 일이다.
그런데 어쩐지 사람들은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의 '재생'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사건 사고를 뉴스에서 접했을 때는 관심이 많던 사람들도 그 사건의 후기가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뜨겁고 아파서 녹아내리는 듯 아팠던 아픔들도, 지나고 나면 그저 까맣게 잿더미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제 시작된 장마로 계속된 비가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화마가 휩쓸었던 자리들에 새로운 희망들이 피어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