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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미션 Feb 20. 2023

9. 더 먹게나

[수요일 10시, 아하하하 소희 씨]

결혼 전엔 타로점을 더러 봤었다. 20대 때는 카페에서  값에 얼마를 더하면 손금도 봐 주고 무슨 일하며 살면 좋을지 같은 걸 얘기해주시는 분들이 계셨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점심 식사 후 광합성을 한답시고 돌아다니다 길가에 늘어선 천막들 중 한 곳으로 들어가 주제별로 5천원 정도를 내고 앞으로의 내 신세를 묻기도 했다.


현재까지 내 생애 마지막 타로집은 '엄청나게 잘 보는 집이라 예약이 필수'라며 직장 동료로부터 소개받아 찾아간 곳이다. 당시 30대 초반 솔로로서 나의 하드웨어가 문제일까, 기술력 리는 소프트웨어가 문제일까, 솔직히 둘 다 인 것 같기도 하다가 '뭐가 어때서'라고 스스로를 추스리던 과정이 반복되던 시기였다. 같이 간 친구도 매한가지. 서울 도심 오피스텔에 위치한 그곳은 그 전까지 노점이나 복합 쇼핑몰 코너에서 만났던 타로집과는 기세 부터가 달랐다. 숨죽여 쭈그려 앉은 우리 둘은 "뭐가 궁금하냐."며 눈을 똑바로 뜨고 질문도 직구, 답변도 직구로 던지는 타로술사에게 홀린 듯 중얼거렸다. 연애는, 할 수 있나요? 결혼은, 언제쯤 할까요?


"이 카드 보이지? 긴 창을 든 백마 탄 남자. 그런데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눈, 코, 입이 안 보여. 왜 그럴까? 못생겼단 얘기야."


점괘는 희비극이었다. 적절한 때에 남편감을 만나는데 우리집에서 환영할 만큼 성실한 사람이지만 못생긴 사람이다, 결혼해서도 외로울 신세이니 자식을 꼭 두고 살아라, 이야기했다. 이 친구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 둘이 결혼해서도 가까이 살며 의지해라, 했다. 다행스럽기도 했고 암담하기도 했다. 안개 낀 얼굴로 나와서 친구와 소주를 마셨다. 내가 더 마셨다.


타로점은 근미래만 본다는 이야기를 들어 저 타로점의 시효는 금방 말료되었다 생각했지만 이후 누굴 만나던가 성실추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훈훈한 외모의 상대가 소개팅 장소에 나오면 은연 중에 마음이 접혔고 스윗했던 목소리와 사뭇 거리가 있는 외모의 사람이 등장하면, 그래도 마음이 접혔다. 악화는 악화를 구축했다. 망했다.


그리고 두둥. 남편을 만났다. 어인 일인지 30대 초반이 넘어서야 터지던 소개팅 자리와 애프터 100%를 기록하던 나의 전성시대에 남편이 등장했다. 점괘가 말한 그 사람이었다. 마음이 접혔다. 그런데 계속 등장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앞뒤를 재지 않았고, 조심스러웠지만 끈기 있었다. 접혔던 마음이 열렸다 다시 접히기를 몇 번 하고 나니, 결혼을 했네 그려, 허허.


그래서 남편은, 운명의 남자다. 그러니 불만 말고 열심히 살아야한다. 어떤 길로 갔던 목적지는 이 사람이었을 것이다. 점괘가 그렇게 말했다(고 내 뇌는 왜 이리 오래 사로잡혀있는 것인가, 엉엉). 그래서 열심히 살고 있다. '우리는 로또 같은 부부'라며 이토록 둘이 안 맞는 것을 서로 확인해주고 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이유다. 나의 운명(?)이고 선택이니까.


소희 씨도 열심히 살 수 밖에 없었다. 운명보다 더한, '기를 쓰고 반대해도 기어코 이 남자'라며 고집부려 짝을 선택한 사람이 바로 소희 씨이기 때문이다. 집안끼리 원수도 아니었고, 그 시절 동성동본도 아니었지만 소희 씨의 부모가 '3대 사위 금지 직업' 중 하나에 콕 맞아버린, 거기에 부모 노릇하는 8남매의 장남이 바로 소희 씨가 고집스럽게 선택한 사람이었다. 소희 씨는 자존심 강한 여자였다. 책임감도 강했다. 그것이 그녀의 인생 2라운드를 지배했다. 자, 이제, 2라운드 시작!

(아! 우리 부부는 사내 아이 한 명을 두었고 남편 퇴직 전까지는 주말 부부로 지낼 것이 확실하며 타로집에 같이 갔던 친구는 현재 옆 동네에 산다.)


경찰서를 얼마나 다녔나, 한 2년 다녔나? 아빠하고 관계가 깊어지려고 하니까 내가 그만두려고 했어. 그랬더니, 그때 마침 아버지가 사람들한테 내가 일 잘한다는 소릴 들으셔서, 그냥 다녀라, 하시더라고. 내가 경찰 사귀는 거 모르시니까. 그래서 또 그만 둔다고 말을 못했고. 그런데 결국 들켰지. 우리 직원들이랑 아버지가 같이 술 드시다가 박양이 누구 사귄다고 그랬나봐. 아버지가 바로 당장 그만두라고, 그래서 결국 그만 다녔지.


그렇게 헤어지나 싶었는데 그게 또 쉽게 되나. 그러고 나서 내가 타자를 배우러 서울에 와서 타자 학원에 조금 다녔거든. 근데 아빠도 마침 서울로 발령이 나서 왔더라. 자기가 지원했는데 그게 됐다고. 그래서 또 만나고.


그러다 다시 홍성으로 내려가서 공무원 시험을 봤어, 교정보도직. 그게 뭔지 잘 모르고 법무부에서 하는 거라서 그냥 봤는데 합격을 했어. 그런데 법무부에서 하는 곳이니까 신원조회를 굉장히 엄격하게 하더라고. 그때 경찰서에서 내 신원조회를 해서 자료를 올려 보내는데, 내가 면접까지 봤는데도 발령이 안 나. 그래서 지금 행안부인가? 여튼 그때 총무부 높은 자리에 계시던 고모부한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달라고 하니까, 우리 아버지가 6.25 때 선생을 했다고, 그걸 부역이라고 꼬투리를 잡고 있다는 거야. 그때는 그런 게 참 엄격했어. 교정보도직 자리니까 더 엄격했지. 그래서 고모부가 다시 신원조회 자료를 내려보내줄테니 아버지가 선생한 내용을 빼서 올리라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경찰서에 가서 다시 내용을 빼달라고 했거든? 그런데 그게 안된다는 거야. 한 번 나간 정보는 다 기록이 남아서 안 없어진다고.


그래서 결국 내가 공무원 못했다니까. 아이고 아깝지. 그래서 내가 아버지 원망도 조금 했어. 자기 딸 일인데 아버지가 어떻게든 좀 해줬으면 좋으련만, 우리 아버지는 생전 자식 위하자고 남에게 어려운 소리 한 일이 없다니까. 다른 사람 일이었다면 도와주셨을텐데. 그런데 아버지도 막 화가 나셔서, 그때 선생한 게 부역이면, 그때 선생들 다 뭐가 되냐고, 막 그러시더라고. 아버지도 속이 상하신거지.


그렇게 일은 계속 어그러지고 헤어지라는 남자는 계속 만나는데 부모라도 그 딸을 어쩔 것이야.

우리 아버지보다 먼저 서울에 계신 고모가 아빠를 만나봤거든. 근데 늬 아빠가 겉으로 보기에 얌전하고, 그러잖니. 그러니 고모가 이렇게 사람 좋은데 왜 얘들 결혼 안 시키냐고 홍성에 쫙 이야기를 하셔서 말이 이미 돌았지. 할아버지도 울 아버지 불러다 이야기도 하시고. 그렇게 해서 아버지가 고모랑 같이 아빠 만나러 서울에 한번 올라오셨어. 아버지도 만나 보니 사람이 괜찮다, 순사같진 않구나, 그러셨을 것 같아. 늬 아빠가 어른들한테 예의도 갖춰서 하고 그러잖니.


나중에 고모가 그러셔. 중국집에서 만났으니 자장면 같은거 먹었겠지? 늬 아빠가 예나 지금이나 잘 먹잖니, 아빠가 후루룩 먹으니까 우리 아버지가 자꾸 자기 그릇을 밀어주면서 "더 먹게, 더 먹게." 그랬다고. 자꾸 황순경 앞으로 음식을 밀어주더라고.


또 아버지가 당진에 아빠 고향집을 가보셨어. 딸이 남자를 사귄다고 하니 궁금하셨던 것 같아. 홍성에서 당진으로 가는 길에 덕산이 있는데, 덕산 지나서 이모부네가 살았었거든. 그집도 아주 부자였지. 그 이모부하고 오토바이 타고 송학리 집에 다녀오신거야. 그런데 가보니 집 한쪽 담은 무너져 있고, 워낙 헐어있는 집이었지. 집 문도 다 잠겨 있었는데 마침 어떤 할아버지가 나오시면서, 오늘이 당진 장이라 그집 사람들이 장에 돼지 새끼 팔러 갔다고 그러더래.


아, 그때 아버지 마음이 어떠셨을까. 그래도 딸이 결혼한다니 어째. 고모가 서둘러서 결혼이 됐지. 그때는 스물 네 살이면 딱 결혼할 때였어. 여자 나이 스물 다섯 만 넘어도 늙었다고 했던 때니까. 그렇게 내 나이 스물 넷, 12월 5일에 결혼을 한 거지.


*부역(逆) :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함을 뜻함.

과거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는 '연좌제'가 있었다. 이는 고대로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실시되었던 제도로서, TV 사극에서 조선시대에 누군가 역적으로  몰리면 당사자 집안의 3대를 멸하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데, 친족관계를 비롯해 연루된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연좌제가 바로 이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4년 조선시대 때 연좌제가 폐지되었으나 이후에도 일제시대와 6.25 등의 수난사를 겪으며 당대 정치와 이념의 잣대에 따라 범죄자나 사상범의 가족 또는 친족임이 신원조회에서 밝혀지면 공무원 임용 등의 취업과 해외 출국 등이 불가한 경우가 많았다. 공식적으로 연좌제는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 직후인 7월에 부활해 이후 19년간 유지되었다가 박정희 대통령 사후인 1980년 8월 1일에 8차 개정 헌법에 연좌제 금지를 규정(대한민국헌법 제13조 3항 :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하면서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나무위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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