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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Nov 07. 2018

엄마의 : 책 '소년이 온다'

엄마가 기억하는 그리고 되새기는 광주 민주화 운동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맨 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 강'씨의 '채식주의자'를 오래전에 읽긴 했으나, 독특한 제목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을 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상을 받은 그녀의 쾌거를 축하하고 응원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책을 사려던 중, SNS에서 이 책 '소년이 온다'가 좋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했다.


광주항쟁이라 불리던 광주 민주화 운동은,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 아무리 눈을 감으려 해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일이 아니던가.

나는 그 시대를 살아왔으되, 그 일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고 너무나 끔찍해서 차라리 외면해왔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게다가 나는 아픈 현대사를 곱씹고 성찰할 만큼의 투철한 문제의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니 굳이 들추어내거나 알아보고 싶은 생각도 없는 그 사건을 다뤘다니, 책을 살까 말까 처음엔 많이 망설였다. 다들 좋다 하니 사서 보긴 하겠지만, 이 책에 관하여 독후감을 쓸 생각 같은 건 책을 읽기 전엔 전혀 없었더랬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 만약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지역이, 나와 별 연관성이 없는 '광주'가 아니라 내 고향이었더라면 어땠을까.

또 나의 혈육이나 내가 아는 누군가가 그 일로 무참하게 희생되었더라면, 그 사건에 관해 내가 느꼈을 체감온도는 훨씬 더 높았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것이 무엇이 됐든 그에 관련된 내용을, 지금처럼 외면하기는커녕 일부러 찾아서라도 읽으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절대로 잊지 않기 위해서, 나라도 나서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끄적거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남편은 언론사에 다니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처음에 그 사건은 내국인들에겐 철저하게 보도 자체가 통제되었다. 카더라 통신으로 여기저기서 띄엄띄엄 줏어듣긴 했어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끔찍한 얘기들이 떠돌아 다들 긴가민가 했었다.

그 시절 언론사에 다니던 남편은 일반인들보다는 그 일에 관한 정보가 많았고, 사건의 본질과 현장의 참혹함을 알아갈수록 거의 매일 밤 만취한 채 귀가하곤 했다.

어느 날인가는 남편 친구들이 우리 집에서 술판을 벌이며 그 일에 관해 울분을 토하며 건배를 하다가, 혼수로 해간 고가의 크리스탈 양주잔을 박살내기도 했다.


내가 주워 들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전후 사정은, 사건 전체로 놓고 본다면 겨우 빙산의 일각이었을 텐데도 너무나 무섭고 끔찍했다.

우리 군이 자국민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가했다는 말도 안 되는 내용들 뿐만 아니라,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나았을법한 비인간적인 이야기들 투성이었다.

만행이 저질러진 그곳에서 하루아침에 혈육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아픔에 모두들 공감하면서도, 험악한 공포 분위기의 그 시대 상황에서 일반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흉악무도한 범죄가 벌어진 그 지역이 내 피붙이가 사는 곳이 아닌 게 한편으론 다행이다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던 것 같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믿거나말거나한 얘기지만.

그 사건의 현장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술에 취한 군인들이 전라도 씨를 말리겠다고 했다는, 지역감정을 들쑤시는 흉흉한 얘기도 한때 세간에 떠돌았다. 그런 악랄한 얘기들의 와중에서, 나는 그런 소리들이 사실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랬다.

광주가 내 연고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쪽 지역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덜 아프고 덜 민감하게 반응한 부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그 일을 당했던 당사자나 친인척만큼은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아침에 웃으며 집을 나섰으나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누군가의 남편과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 억장도 무너졌고, 광주 민주화 운동의 원인제공을 한 자들을 향해 분노하기는 나도 그 지역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치만 나는 안타깝게도, 그해 2월에 갓 결혼한 철없는 새댁이었다.

나는 그 사건 때문에 깨트려버린 고가의 크리스탈 술잔도 조금 아까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에 울화가 치민다며 날이면 날마다 고주망태가 되어 귀가하는 남편의 건강도 걱정스러웠다.

세상이 어떻게 소용돌이치든, 나는 그 무엇보다 내 삶과 내 가정이 가장 소중한 이기적인 속물이었다. 그래서 나와는 무관해 보이는 그런 끔찍한 일 같은 건 하루빨리 잊어버리고, 전처럼 평온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다시는 그 일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후 그 사건의 진상규명에 관한 보도나 5.18 기념식 보도를 접할 때에도, 그저 먼 남의 나라 일처럼 여기며 굳이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잊고 살아왔다.


그랬는데,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이 책 '소년이 온다'를 읽게 된 것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 책이 분명 소설의 형식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마치 넌픽션처럼,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관한 기록물처럼 읽힌다는 점이다.

또한 그토록 처참한 살육의 현장에 관한 소설이라기엔 너무도 침착하고 담담하게,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내비치지 않는 단단한 문장 하나하나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더 저리고 아리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책을 편 뒤 채 열 장도 넘기지 못하고선, 나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책을 덮고야 말았다.

그 눈물은 온갖 시덥잖은 세상만사에 눈물을 찔끔거리게 된 나의 노화현상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왜 이 책이 '한 강'의 인생작이라 불리우는지를 가늠케 하는, '소년이 온다'가 가진 힘이라 할까.

그렇게 눈물 흘리고 한숨 쉬며, 폈다 덮었다를 몇 차례나 한 끝에 겨우 읽어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 '한 강'이 받은 맨 부커 상이 얼마나 세계적인 상인 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상의 경중(輕重)을 떠나 그 상을 수상함으로 인해 이 책 '소년이 온다'가 회자되었고,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간 잊고 있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게 더 훌륭한 일인 것 같다.


결코 쉽게 잊어버려서는 안 될 사건이었지만 많이 아팠던 만큼 하루속히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 일을, 이 책을 통해 기억의 끄나풀을 잡아당기게 만들었다는 점.

그리하여 이미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일을 당한 그 지역 사람이나 당사자가 아님에도,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어 그 사건을 다시금 되살아나게 만든 그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그 어떤 큰 상을 받은 것보다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게 어언 38년 전의 일이다.

38년 전이라 하면 상당히 오래전 옛 일 같고, 길다면 긴 세월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나의 피붙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참혹한 죽임을 당했더라면!

또한 겨우 살아남긴 했으나, 그 피비린내 나는 극악무도한 현장을 목도했던 씻을 수 없는 상흔 때문에 차라리 죽음보다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남겨진 채로 견뎌내야만 했던 38년의 하루하루는 지옥과 다름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누가 감히 그 사건을 두고, 흘러간 과거지사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사건들과는 달리 확실하게 명령을 하달- 실행한 이들이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그들 가해자 중 그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았고 늘 그렇듯이 유야무야로 넘어갔다.

희생자 가족들에겐 38년 전에 그대로 멈춰진 채 피눈물 흘리며 살아왔을 그 시간들 동안, 나 역시도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눈과 귀를 막고선 잘 먹고 잘살고 있었으니...

그 사건을 남의 일로만 치부한 채 오로지 내 안위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말할 수 없이 미안한 지금.

남은 가족들이 '소년이 온다'를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받길 바라보면서,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던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온 마음을 다해 빌어본다.


* 책이 출간된 2014년도에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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