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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Nov 19. 2018

엄마의 : 이별 이야기

코코야 우리 꼭 다시 만나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이별은 늘 슬프다!!!
준비된 이별조차도 말이다.
이제와 다시금 생각해보니 나는 별로, 아니 어쩌면 단 한번도 진심으로 녀석을 좋아한 적이 없었던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별을 결심한 뒤, 마지막으로 녀석과 함께 탑승한 차 안에선 어이된 일인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녀석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너무 아팠다.

나는 고양이나 강아지 등의 애완동물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 길거리를 지나다 강아지를 만날때면, 선 채로 바로 그 자리에 얼음땡이 될 정도로 강아지를 싫어했다.
뿐만 아니라 달랑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는 공동주거 공간인 아파트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었던 사람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약 15년 전 '강아지 키우기'를 내걸고 딸아이와 뭔가 약속을 했었고, "한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엄마"라는 족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아지를 키우게 되었다.
시츄였는데 숫놈이었고, 이름은 "코코"였다.

코코가 오자...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늘상 키워왔던 남편과 강아지 키우는게 원이었던 아이들은, 코코를 물고빨고 한 침대서 뒹굴고 그야말로 난리부르스를 춰댔다.
하지만 원래 강아지를 싫어했던 나는 "저리가!" "오지마!" 등의 외마디 비명을 질러대며, 코코가 절대 내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제 때 밥 챙겨주는 것 외엔 그녀석을 만지거나 눈도 결코 맞추지 않았으니, 코코도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다들 저를 이뻐하는데 도대체가 곁을 안주는 나를 코코는 무서워했고, 나와는 늘 적당한 거리 간격을 유지한채 슬금슬금 내눈치를 보곤 했다.
그러다보니 우리 집에서 그 녀석의 출입이 제한되는 유일한 곳이 안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도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난 다음날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안방 침대에 걸터앉아 엉엉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한참을 서럽게 울고 있는데 코코가 어느 틈에 슬그머니 안방으로 들어와, 겁도 없이 두발로 나를 툭툭 건드리며 낑낑거리는게 아닌가!
이제껏 녀석이 안방 문턱을 넘은 적은 단 한차례도 없었고, 나와 녀석은 털끝조차도 닿은 일이 없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강한 자의 면모를 자랑하던 주인님께서 울고있는 이 상황이, 녀석에게는 심각한 비상사태라고 생각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뭔가 제 나름으론, 어떻게든 주인님을 위로하려 했던게 아닌가 생각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감히 어떻게 출입금지 구역인 안방으로 기어들며, 호통만 치시는 주인님의 몸에 언감생심 제 손을 갖다대고 코를 부빌 수가 있단 말인가! 마치 울지 말라고 토닥토닥 위로하듯 말이다.
녀석이 그러는건, 사실 지금까지의 우리관계로 미루어 봐선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그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겁도 없이 그러는 녀석이 귀엽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런 코코를 향해 어찌 마음을 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 일이 있은 후론, 우리 집에서 코코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심지어 내 침대까지도 말이다.
그후 여지껏 우리의 동거는 그런대로 순조로웠다.

하지만 무릇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인지라, 녀석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코코는 이런저런 병치레 끝에 피부암에 걸렸고, 몸 여기저기엔 작은 혹들이 생겨났다. 녀석의 몸에선 참을 수 없는 악취가 풍겨져 나왔고, 심지어 장롱 속의 옷들 조차도 그 냄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코코의 피부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은 온 마루를 뒤덮었고, 발걸음을 뗄 때마다 허연 각질들이 발바닥에 잔모래 밟히듯 달라붙었다. 동물병원에서도 노환이라 치료불가라며 손을 놓은게 벌써 삼사년 전의 일이었다.

올해 초 남편과 나는 심각하게 안락사를 고민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차마 그리할 수가 없어, 하는 데까지 해보리라... 마음을 다시 굳게 다잡았다. 각질과 악취에 시달리는게 힘들긴 하지만, 그간 코코가 우리에게 주었던 기쁨을 생각한다면 그 또한 감내해야만 할  일이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며칠 전부터 내 손과 팔- 다리에 벌레 물린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제법 커다란 붉은 발진이 불긋불긋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상한 건 그 발진이 생기는 부위였다. 몸통을 제외한, 다시 말해 다른 것과 접촉이 가능한 부위에만 발진이 생겼고 일반 피부병과는 양상이 많이 달랐다.
게다가 가려워서 미칠 것만 같았는데, 늘 앞발로 자기 몸을 끝도없이 긁어대는 코코가 오버랩되면서 덜컥 겁이 났다. 그간 내게 말은 안했으나 알고보니 남편도 두어차례 그런게 생겼던 모양이었다.
피부과에 갔더니,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코코가 문제였다. 여태껏은 괜찮았으나, 우리가 나이 들면서 면역력이 떨어지니 그리된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끝도 없이 고민했으나 마땅한 답이 없었고,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그러던 차, 궁하면 통한다고 사돈댁의 농장에서 코코를 맡아주시기로 했고, 오늘 녀석을 데려다 주고 왔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녀석은 차에 안 타려고 계속 도리질을 해댔다.
농장으로 가는 내내 저를 안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코코의 슬퍼 보이는 눈빛 때문에, 나는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녀석을 떼어 놓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우리를 따라 차로 달려 오려다 목에 매어놓은 목줄 땜에 오도가도 못하는 코코를 보고 있자니 어찌나 안스럽던지...

갓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아파트에서만 살던 코코가 농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코코를 떼어 놓아야만 하는 이 상황이 말할 수 없이 괴롭긴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찌하겠나.
부디 코코가 농장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잘 살아 내기를 바랄 뿐이고, 농장이 코코에게 그런 좋은 환경일거라 애써 믿고 싶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녀석이 늘 앉아있던 방석이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놓여있는걸 보니 어찌나 썰렁하던지, 다시 또 가슴이 허전해지면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녀석과 함께 한 15년이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다보니, 코코도 오늘 밤은 쉽게 잠들지 못할 것이다.

나 또한 오늘 밤은 잠이 잘 안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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