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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Jan 12. 2019

엄마와 : 염색

나이 들어간다는 것, 그렇게 보인다는 것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화요일에 남편의 고교 동창 송년모임이 있었다.
남편의 친구분들께선 '문화기행'이란 이름하에, 지난 15년간 년 2회 전국 방방곡곡 지리-문화적으로 이름난 곳으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송년회에선 그간의 문화기행 관련 사진들을 대형 화면으로 보여 주었는데, 나도 문화기행에 수차례 참석했으니 내 사진도 꽤나 많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 영상물 안의 내 모습이... 마치 내가 아닌 듯 왜캐 이쁜 것이냐!

사실 15년 전의 나는 비록 턱걸이긴 해도 아직은 사십 대였으니, 젊고 풋풋해서 이뻐 뵈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또한 말이 15년이지 강산이 한번 바뀌고도 남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으니, 지나간 그 시간들 속의 모습들에 비해 지금의 내 모습이 한없이 늙고 초라해진 것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이기도 하다.
아무리 아닌 척 안간힘을 써봐도 어쩔 수 없는 노인네임을 멀리서도 확연하게 드러내 버리는 구부정한 자세하며, 자글자글 주름살 투성이인채 늙고 처져만 가는 피부를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모든 걸 백번 감안한다 쳐도, 내 모습이 그렇게나 달리 뵈는 게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 결론은 '머리'였다.
지나간 세월만큼보다 훨씬 더 폭삭 늙어 보이는 데는, 허옇게 변해버린 내 머리가 한몫을 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나도 안다.
염색을 안 해서 허연 내 머리가 남들 보기에 얼마나 추레한지, 흰머리만 검게 염색해줘도 사람이 훨씬 더 생생, 선명해 보일 뿐 아니라 적어도 한 5년은 젊어뵐수 있다는 거 나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허연 흰머리를 고수하고 사는 건, 늘상 말해왔듯 속은 늙고 곯았는데 겉만 번지르르 젊은 척하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직은 염색할 나이인데 왜 그러시냐"는 미용실 원장님의 꼬심에도 눈 하나 깜빡 안 했고, "용기가 참 대단하다" 류의 핀잔을 들으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었다.
물론 이번 송년모임 이후 머리 때문에 더 늙어 뵌다는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도, 그간 꿋꿋이 버티어왔던 것처럼 염색에 대한 갈등이 1도 없었더랬다.
그런데 어젯밤 이후, 절대 염색을 하지 않겠다던 내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어젯밤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본 뒤, 한남동 순천향병원 앞에서 광역버스를 타게 됐다.
그 버스는 세종문화회관을 회차점으로 시내 중심가를 거쳐오는 노선이라, 내가 버스를 탔던 밤 10시 20분경에는 직장인들로 늘 만차 상태다. 그러니 앉아가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좌석 등받이에 허리라도 갖다 붙이고 올 수 있으면 그나마 운이 좋을 정도로 늘 붐비는 버스이다.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볼 때면 항상 그곳에서 버스를 탔지만 여태 한 번도 앉아본 적이 없었고, 어젯밤 역시도 앉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서 오는 40여 분간, 기사분께서 급브레이크만 안 밟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버스에 올랐던 터였다.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 기사분을 만나면, 중심 잡고 버티느라 무릎이 너무나 힘들어서 말이다)

만원 버스에 올라타 겨우겨우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서려는데, 내 앞에 앉아있던 청년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제자리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여기, 앉으세요~"라는 게 아닌가.
여태 살면서 딱 두 번 시내버스와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아 봤는데, 두 차례 다 중학교 저학년 정도의 어린 학생들이 자리를 내어줬었다.
내가 '노인'이라는 이유로 자리를 양보받을 거라는 걸 생각도 못해봤던 지라, 그때 그 상황도 너무나 민망하긴 했다. 하지만 그때의 그 어린 학생들 눈엔, 내가 자리를 내어줘야 할 만큼 늙은이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었다.
그런데 어젯밤 나에게 자리를 내어준 청년은, 30대 전후의 직장인으로 보이는 다 큰 어른이었다.
승하차가 잦은 일반버스나 지하철도 아닌 장거리행 광역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한다는 건, 내가 생각해볼 땐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나는 순간 너무나 놀랐고 당황했다. 그래서.
"어머나~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하면서도, 그 상황이 왜 그렇게 창피스럽고 민망한지.

그 청년도 하루 종일 일하고 늦은 밤 피곤한 상태로 그 좌석에 앉았을 테니, 저라고 뭐 썩 그리 일어나고 싶었겠는가. 그런데도, 일어나야겠다 생각했을 만큼 제 앞에 선 내가 너무 늙은 할멈이었던 것 아니겠나.
그러니 앉으시라 괜찮다 실랑이를 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마지못해 청년이 양보해준 자리에 앉긴 했는데, 앉아 오게 돼서 좋기보다는 그 자리가 마치 바늘방석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제자리를 내어주고 내 옆에 기대선 청년에게 민폐를 끼쳤단 생각 때문에 어찌나 미안하던지, 집으로 오는 내내 나는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가방 속 핸드폰도 제대로 못 꺼낼 정도로, 청년과 주위에 서있는 사람들한테 눈치가 보였다.
늙은 노인이라 자리까지 양보를 받았는데, 내 핸드폰 손잡이에 달린 '스누피와 찰리' 인형이 '노인'이랑은 너무나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말이다.
자리를 양보했던 청년은 물론 다른 사람 아무도... 나를 포함 내 핸드폰 따윈 신경 쓸리 없는데도, 슬프게도 그런것까지도 신경이 쓰였다.

늙었다는 것 외엔 달리 잘못한 것도 없는데도, 그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주눅 들어 고개도 못 든 채 버스 타고 오는 내내.
확!!! 염색을 해버려?! (그런다고 이미 늙어버린 얼굴이, 뭐 얼마나, 어마무시 젊어 뵈겠는가)
말아??? (그래도 머리가 새까맣다면 좀 낫지 않겠어?)
이랬다 저랬다 잔 궁리하느라, 결론도 못 낸 채 머릿속만 한참을 시끄러웠다.

어느새 12월 중순이니 또 한 살 더 먹게 되고...
내 머리는 더더욱 하얗게 될 텐데...
아~~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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