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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Oct 27. 2018

엄마의 : 아버지의 바리깡

나이 들어간다는 것, 노인이 된다는 것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새벽에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셨다.
무슨일인가 했더니, 오늘 올때 머리자르는 기계를 사오라신다.
지난 1년여동안 아버지 머리를 잘라주던 요양보호사가 그만두고, 새로운 분이 오셨다. 그래서 아마, 앞으로 당신 머리를 어떻게 자를지가 걱정되셨던 모양이었다.
그치만 그분이 그만둔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자식들이 주3회는 찾아뵈니 그때 얘기하셔도 될일이었다. 그럼에도 마치 화급을 다투는 일마냥, 새벽같이 전화를 해 사람을 놀래키시다니...

올해 94세이신 아버지는, 외출은 커녕 워커없이는 혼자 걷지도 못하시고 하루종일 거의 누워만 계신다.
그런 노인이... 머리가 길면 긴대로, 그냥, 대충 사시면 될일을. 봐줄 사람이 누가 있다고, 이런 일로 새벽부터 잠을 깨우시는가.
참 별나기도 하시다싶어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그딴거 어디서 파는지 모르겠으니 좀 알아본 뒤, 다음주에나 사가겠노라 쌀쌀맞게 말씀드리고는 얼른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버지는 원래, 누구보다도 사리분별이 명확하고 염치를 차리는 분이셨다. 그러시던 양반이 근래 들어서는, 독불장군마냥 오직 당신밖에 모르신다.
자식들이 어쩌다, "그게 아니고요~" 반박하거나 당신 뜻을 거슬렸다가는. 금새 눈물을 글썽글썽, "오래 살아서 이런 꼴을 당한다"류의 신세한탄이시니 매사가 조심스럽다.

뭔가에 꽂히시면 전후사정이야 어떻든, 시도때도 없이 채근을 해대시고. 잘 안들리시니 당신 마음대로 추측하신 뒤, 이런저런 분란을 일으키시는 경우도 허다하다.
뵐때마다 매번, 살기싫다! 안죽어서 큰일이다! 푸념을 늘어 놓으시면서도. 혹시 감기라도 걸리실까 걱정이 태산인것도 모자라 언제나 조심조심 당신건강을 챙기시고, 온갖 맛난 반찬이나 군것질거리는 다 꿰고 계신다.

그러실때마다 그때그때 당신 뜻대로 다 해드리다가도, 변해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가끔은 흉을 안볼수가 없고. 때때로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차가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새벽녘 아버지의 전화에, "에휴! 오늘은 또 이발에 꽂히셨구만" 궁시렁거릴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전화를 거신 오전 6시는, 내겐 한참 단잠 잘 시간이다만. 초초새벽에 기상하는 아버지로선 한낮이나 진배없는 시각이다.
그러니 아마 일어나시고도 여태껏, 전화걸때가 되길 눈빠지게 기다리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뿐만아니라 자식들이 뭐든 다 알아서 척척 해주는것 같아도, 사실 우리들 중 누구도 앞으로 아버지의 이발을 어찌할지 까지는 미처 생각도 못했었다.
아버지의 이발이, 자식들에겐 신경써야할 만큼의 특별한 일이 아니었으나. 성정(性情)이 깔끔한 아버지로선, 새벽같이 전화할 중요한 사안이었을수도 있는 일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버지의 처지가 짠해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사사건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일에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건 물론, 그에 따른 본인의 불편과 타인의 불평도 별수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고령노인'의 서글픈 처지말이다.
그리고 언제였던가.
나 늙을건 생각 안하고, 단지 친정엄마가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늘과 비슷한 짓을 저질러 엄마를 몹시 섭섭케 했던게 생각났다.


엄마가 70세쯤이던 어느날, 화장품을 사오라셨다.
굳이 내게 그런 부탁을 하신건, 딸년이 당신보단 젊었으니  화장품에 대해 뭔가 더 많이 알거라 생각해서. 좋은걸 잘! 사오라는거 였을것이다.
문제는, 그당시 40대 후반이던 내 눈엔 엄마는 좋은 화장품이 필요한 '여성'이 아니라 그냥 늙어빠진 '노인'이었다.
누가봐도 할머니인 엄마가, 조금이라도 젊어지길 바라고 예쁜걸 추구하는 '여성'이란 생각같은건 꿈에도 하질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부탁한 화장품은, 특별히 신경써서 고르고자시고 할게 없었다. 엄마는, 그냥 아무거나, 대~충 바르면 되는 '노인'이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설화수 헤라 오휘 등등 하고많은 좋은 브랜드 다 놔두고, 저렴하고 실용적인 걸로 사다드렸다. 늙은 노인에겐 그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던 것이다.
내돈 쓰기 아까워 그랬나? 할수도 있겠지만, 엄마카드 받아가서 사면서도 그랬다.

내가 사간 저가화장품을 보시고도, 엄마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해서 엄마의 속마음이 어땠는지, 처음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직 40대였던 그땐... 늙는다는게 어떤건지.
내가 사다준 화장품이, 엄마를 얼마나 쓸쓸하게 만들었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며칠뒤 우연히 딸아이에게 하는 엄마얘기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할매가 인자 다 늙어뿌따꼬.
세상에~!!!
너거 엄마가... 내한테 요런 싸구려를 바르라칸다!
우짜꼬?!"



늙는다는건 그저.
삭아가는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 것일뿐. 나이든다고 해서 인간의 감정 자체가 바뀌는건 아니라는걸, 늙어보니 이제사 알것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70 아니라 80, 90에도 여전히. 타인을 의식하고 자신의 외모에도 신경쓰게 되는게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겠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선, 반드시 기본적인 욕구도 충족시켜 줘야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한은, 끊임없이 이런저런 잔손이 많이 갈수밖에 없는게 인간일테고.
살아있으되 이 모든 것에서 편해지고 자유로워 지기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닐것도 같다.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리기 전에는,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엄마한테 그랬듯,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워진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충! 그냥!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존재로, 나는 아버지를 인식하고 있었던건 아니었을까.
죄송한 마음에 미용재료상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머리자르는 기계를 어디서 파는지 모른다는건, 순 거짓말이었다.

바리깡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는 아버지를 뵈니, 이리 해드리면 될걸 그깟 일로 툴툴거렸다니... 내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걸, 아버지라고 왜 모르셨겠는가.
부모는... 자식이 같은걸 열번을 물어봐도, 열번 다 웃으며 대답해 주지만.
자식은, 부모가 두세번만 같은걸 물어보면 버럭 화를 낸다던가.

어느날 혹시라도 너무 가까운 미래에, 갑자기 죽어버리게 될까봐 겁이 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론.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면서, 아버지처럼 오래도록 살아남게 될까봐도 너무 무섭다.
마지막까지, 존경과 품위를 잃지않기도 쉽지않고.
도리를 다하기도 쉽지않으니.
산다는 것은... 이래저래.
무엇하나 쉬운게 없구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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