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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Oct 31. 2018

엄마의 : 인형

나는 엄마 물건 절대로 버리지 않을거예요

56년생 평범한 우리네 엄마.
어머니가 쓰시는 글을 대신 소개합니다.
부디 어머니의 글로 메마른 일상에
촉촉한 단비가 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소녀 취향의 물건들... 예를 들어 뭔가 작고 귀엽고 샤방샤방한 이쁜 소품들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나의 고질병이다.
다른 친구들은 전혀 쳐다보지도 않는데 유독 나만 삘이 꽂혀 발걸음을 멈추고야 마는 물건들은 대부분, 내 나이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유치찬란한 물건들인 경우가 많다.
그런 나를, 친구들은 덜 자란 아이 같다며 늘상 놀리곤 한다.

어린 시절 내게 ‘놀이’의 기억으로 확실하게 남아있는건 사실 별로 많지 않다.
엄마 품을 떠나 시골 외갓댁에서 자랐던 약 3년간, 기껏해야 길에서 주어온 깨진 색유리를 갖고놀거나. 벽돌을 곱게 갈아 고춧가루 만들고 꽃잎 따다 반찬 만들어 반두깨비하고 놀던 정도 밖엔 없다.
초등학교 2학년말 부모님 곁으로 오게 된 뒤에도, 우리 집은 제대로 된 인형이나 예쁜 놀이감 같은걸 척척 사줄만큼 여유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유년기를 보냈고, 놀았던 기억보다는 늘 공부로 닦달당한 기억밖엔 없다.

자라는 내내 그렇게.
여자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쪼끄맣고, 귀엽고, 예쁜 물건들을 마음껏 갖고 놀지 못했던 탓에.... 미처 다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가 내 안에 내재되어 있다가 뒤늦게 발현되어 그런지도 라며, 아동틱한 물건들을 유달리 좋아하는 이유를 나름 합리화시켜 보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론.
어린이들이 인형을 좋아하고 지나치게 집착하는건 분리불안의 표현일 수 있다는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만약 그 얘기가 맞다면, 어린시절 나만 혼자 외갓댁에 떨어져서 자란걸로 내 고질병을 설명할 수도 있지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 증상이 어른에게서도 나타난단 얘기는 없었지만 말이다ㅎㅎ

어찌됐든, 약 4년 전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여경란' 작가의 이 소녀인형을 처음 봤을때 역시도.
인형에서 좀처럼 눈을 못 떼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쟤... 또 시작이다, 어릴 때 부모님이 글케 인형을 안사주셨냐며 한마디씩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 인형이 너무 예뻤고, 그걸 만든 작가 이름이라도 알아두려고 가게에 들어가 이름만 물어봤을 뿐 내가 산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질 않았다.

월급쟁이의 아내로 빠듯한 살림을 꾸리다 보면, 뭐가됐든, 생필품이 아닌 물건을 장만하는 것은 생각보다 늘 쉽지 않았다.
내가 맞벌이를 하고난 뒤로 그나마 조금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아이들과 남편 먼저 챙기다보면 정작 내가 사고 싶은 것이나 나를 위한 건 언제나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물건이 살아가는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아마도 대부분의 평범한 주부들도 다 그러할 것이다. (라고 믿고싶다 ^^)

3년전 그 날도 그랬다.
마음 같아선 내 눈길을 잡아끄는 그 인형을 달랑 집어오고 싶었다.
하지만 명색이 작가님 작품이니 턱없이 비쌀게 분명한데다 다른 한편으론, 누가봐도 고개를 끄덕일만큼 그럴듯한 물건도 아닌, 겨우 알록이딸록이 인형이 아닌가.
그래서, 육십이 다 된 나이에 아직도 인형 나부랭이에 마음을 뺏기다니. 쯔쯔! 뭐 이러면서 마음을 접었더랬다.

하지만 그 인형을 굳이 사겠다 마음을 먹지 않았던건, 실은 비단 경제적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전처럼 덜컥 저질러 사기보단, 왠만하면 한번 참고 넘어가게 된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7년전 엄마가 돌아가신 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게 되었다.
평소 멋부리는 걸 워낙 좋아하시던 분이다 보니, 옷장 속에 옷이 한가득이었다. 옷장에 걸려있는 코트며 쟈켓들마다, 그 옷에 딱 마치맞을 브로치가 각각 달려있었고. 준보석류의 목걸이, 반지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모피와 핸드백 진짜 보석 몇개를 제외하곤.
그동안 엄마가 그토록 아끼고
한때 엄마에게 기쁨을 주었을게 분명한 그 물건들은 모두, 엄마에게만 소중한 물건이었지 남아있는 우리들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이었다.

여지껏 오며가며 좋아라 사들인 내 물건들 역시도, 언젠가 막상 제 주인을 잃고나면 그저 단순한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이젠 뭐든 새로 살게 아니라 하나씩 버리고 정리를 해나가야 하는 나이라는 걸.. 피부로 실감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단지 귀엽고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생각없이 물건을 집어들던 짓은 어느 정도 자제하게 되었고, 그 소녀인형도 그냥 보는걸로 만족했다.

그런데 얼마 전 다른 걸 구경하러 '통인가게'에 들렀고, 함께 간 친구에게 그 인형을 보여주었다.
하필이면 그 친구도 내 과(科)였던지, 인형을 보자마자 화들짝 예쁘다며 당장이라도 살 기세로 가격을 물어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가격은 크게 비싸진 않았고, 마음먹고 눈 한번 질끈 감으면 살수 있을만한 정도였다. 친구는 가격도 너무 착하다며, 내일이라도 맘 내키면 바로 사러 오겠다고 수선을 피웠다.

4년간이나 내내 보고 지나다녔어도, 내가 사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일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게 어찌나 묘한지.
막상 친구가 그 물건을 사겠다고 나서니, 이제 새로운 건 그만 사고 가진 것도 하나씩 정리해야 겠다던 생각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 분! 지름신께서 강림하신 것이다!!

마침 양력생일도 다가오고 있으니, 환갑선물로 받으리라! 아니 음력생일에 맞춰 환갑선물 이미 다 받아놓고선 뭘 또 바라냐며, 혹시라도 여의치 않다면. ‘내가 나에게 주는’ 환갑 선물로라도 사고야 말리라!
환갑선물이라고 우길 수 있는, 딱! 귀신같은 절묘한 시점에 내 마음을 들쑤신 그 친구 덕분에 어쩌다보니 이 인형이 내게로 왔다.

오래 둔다고 가격이 올라갈만큼 썩 투자가치가 있어뵈지도 않고. 보나마나 딸아이들 취향도 아닐테니.
이 인형도 언젠가는, 친정엄마가 아끼던 물건들처럼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될 것이다.
그러니 괜한 짓을 했나?! 벌써부터 후회가 마구마구 밀려오면서. 나의 고질병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물건같은 이 인형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치만!
이 나이니까 이런 걸 샀지.
더 늙으면 남사스러워서라도 어떻게 요런 물건을 살수 있겠냐... 쓰담쓰담 하다가, 문득.

.... 어쩌면 나는.
단발머리 나풀거리던 어린시절로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또한. 나의 지나간 날들을 추억할 시간조차, 이제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음을.
이 인형을 통해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마음이 쓸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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