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세계를 접하다
크지 않은, 아주 작은 번역 아르바이트를 소소히 들어오는 대로 해보는 중이다. 아직 유려한 영어 실력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의뢰가 들어올 정도는 되는가 보다. 한번 하던 게 두 번이 되고 하는 것을 보니. 영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일이라면 정말 행복감에 신나게 하겠지만, 반대로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는 일이 많아 스트레스를 몇 배나 받아가며 미션을 간신히 완수하는 중이다.
정말 나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아직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영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것보다는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는 것이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뉘앙스라던가 분위기에 적합한 표현을 찾는 일이 쉽지 않더라. 반면 한국어는 내가 가진 자원이 상대적으로 크고 넓더라. 이거 아님 저거. 변화해서 다양한 느낌으로 쓰는 것이 편한 기분이다.
번역을 하며 또 하고픈 말들이 떠올라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일단 번역가라 말하기도 어려운 실력이라 좀 그렇지만, 어쨌든 분명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영어로 글을 쓰면서 배웠던 가장 큰 원칙 중에 하나가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런 부분을 좀 더 신경 쓰며 고치는 덕분에 여러 표현들을 배운다. 또 의미는 같아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야 되는 점들이 있는데 여기서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아주 많이 느낀다. 영어는 뭐랄까 형용하는 면보다는 좀 더 직접적이거나 아니면 감정적인 전달을 위해서 어딘가에 빗대어 표현하게 되는 것 같다.
더불어 언어적 차이는 어찌 보면 사고의 차이로 보이기도 하더라. 언어와 사고는 어느 접점이 분명 있는 것 같다. 사고 자체를 언어로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개념이 없기 때문에 설명이 되지 않는 말들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 장애물들을 만나면 그 개념이 어디에 닿아 있는 것일까를 깊게 생각해보곤 한다. 최근에 제임스와 한참 이야기를 하며 같은 개념을 찾아보려 했던 언어 중 하나는 ‘서운하다’. 이 감정을 어떻게 영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sad, sorry, hurt?(disappointed나 a little bit sad 등을 써서 표현하는데, 내가 아는 서운하다는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구구절절 풀어서 표현하게 되는데 어쨌든 그 느낌이 잘 전달이 되지 않아서 좀 아쉽더라. 한국어의 다양함이 영어로는 가끔 너무 심플해지는 것 같기도 하더라.
그리고 주로 하게 되는 글들이 에세이나 자기소개서 등인데 쓰던 글이라 좀 편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런 글들을 접하면 다른 것들을 만날 때에 비해 마음이 가벼워진다. 하지만 약간, 예민하게 거슬리는 부분(pet peeve)이 있긴 한데. 글 자체가 썩 예쁘게 쓰인 것이 아닌 경우들이 그러하다. 영어로 바꾸어 줄 수는 있는데, 이게 원래 좋은 글이 아니라 아무리 바꿔도 태가 나지 않기도 하고 한국어 자체를 조금 더 바꾸어 주면 더 좋은 글이 될 것 같기 때문에. 그런데 원 글의 주인이 써둔 것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어서 그게 마음속에 작은 불편함으로 남는다.
가장 최근에 접한 자기소개서를 번역하며, 완벽한 모양이 나온 것 같지 않은 찝찝함. 그 때문에 이런 글을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그 선을 명확하게 그어 지킨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참으로 깔끔한 기분일 수 없게 한다. 뭐.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