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x는 30 이하가 좋을 것 같고, 커브는 P88도 좋은데 블레이드가 좀 긴 것을 선호하고 슈팅을 할 때 아직 스틱을 잘 클로즈하지 않고 맞추는 단점이 아직 있어서 일단 이번엔 P92로 하고, 킥 포인트는 로우를 선호하는데, 만약 물량이 없어서 선택할 것이 없으면 미드까지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주문 사항을 점원에게 전하며 아이가 원하는 스틱을 고르는데, 그 과정에 나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내가 그새 아주 많이 하키에 대한 지식이 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스케이트는 종류는 어떤 것으로, 프로파일링은 어떻게, 스케이트 날은 어떤 스타일로 가는지까지 상세하게 취향대로 정해서 알려주는 데, 이제 진정한 하키맘이 된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하키 스틱은 그 종류와 스펙이 무척 다양하기 때문에 구매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정말 많다. 처음 아이들이 하키를 시작했을 때는 어떤 기어를 구매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아무거나 가격이 합리적인 것을 선택하거나 점원이 추천하는 것을 골랐다. 정말 무지했기 때문에 무엇을 고려해야 할지도 몰랐고, 그저 단순하게 가격 비교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아직 어린 나이에 갓 하키를 시작한 시기에는 기어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아무거나 입거나 쓸 수 있는 상태면 애들이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점점 실력도 향상되고 스스로의 스타일이 생기면서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가리게 된다. 참고로 둘째 아들은 스틱 커브와 스케이트 날을 가는 정도에 아주 민감하다. 그래서 기어 상태가 본인이 원하는 수준이 아니면 좀 예민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한국에서 캐나다로 넘어와 갓 하키의 세계에 입문한 예비 하키맘에게 이 모든 조건을 스스로 깨우쳐 파악하는 것은 힘들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한국에서 하키를 하다가 캐나다에 유학 온 부모들 같은 경우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가 많아서 진짜 요목조목 잘 따져 고르고, 좋은 것들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그래서 나중에 알게 된 한국에서 캐나다로 온 하키맘들을 통해 듣고 보고 배운 지식이 크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반면 한국서도 하키를 접해본 적 없는 나는 정말 말 그대로 ‘완전 초보’였다. 영어도 잘 안되고, 한국인 하키맘을 만나기 힘든 이곳에서 안 되는 영어로 하나하나 깨우쳐 가는 과정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다. 아마 아이들이 즐기면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좋아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덜 보였다면 진작에 관뒀을지 모르겠다.
처음 하키 도구를 사러 캐나다에서 여러 잡다한 도구들을 다 파는 곳인 Canadian Tire라는 곳을 들렀는데-지금은 하키 물품을 구매하러 잘 들르지 않는 곳이긴 하다-, 그곳에 막 시작한 이들을 위한 키트가 있었다. 거기에 대부분의 물건이 있는 데다 가격이 저렴해 일단 구매했다. 그리고 한 시즌 아주 편하게 잘 사용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캐나다에서는 어린 초보자들의 하키 기어는 놀랄 만큼 저렴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아이가 커질수록 가격은 껑충껑충 오른다. 하키를 하는 인구를 늘리고자 하는 이유도 있겠거니와 나이가 들수록 하키를 하는 이들은 좀 더 물건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지 않나 혼자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키 비기너 키트와 스케이트, 스틱, 그리고 헬맷을 구매해 동네 올림픽 센터에서 하키 비기너 코스에 등록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나는 잘못된 스틱을 구매했기 때문에 다시 제대로된 스틱을 구매해야 했다. 그땐 뭣도 모르고 아이스가 아닌 땅에서 사용하는 하키 스틱을 가져갔더랬다. 또 양말을 사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보냈다가 양말과 목보호대도 구매하라는 이야기를 들어 다시 폭풍 검색을 통해 구매 리스트를 만들어 상점으로 향해야만 했다. 하키에 양말이 필요하다는 것과 목 보호대가 필요하다는 것도 나는 몰랐더랬다.
실제 하키에 필요한 도구들을 열거하자면, 우선 가장 중요한 스케이트부터, 보호 장구인 가슴 보호대(shoulder Pads), 팔꿈치 보호대(elbow pads), 무릎 보호대(shin guards), 헬멧(helmet)과 얼굴 가드(face guard), 장갑(gloves), 하키 팬츠(hockey pants), 목 보호대(neck guard), 하반신 보호대(Jocks or Jills supporters)와 양말(socks)과 저지(jersey), 그리고 스틱(stick)을 말할 수 있다. 여기에 마우스 가드(mouth guard)를 선택해 사용하기도 하는데, 아직 어린 나이의 아이들은 잘 착용하지 않는다. 점차 크면서 밀거나 치거나 부딪히는 행위인 바디 체크(body check)가 허용되면 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 착용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어떤 기어가 필요하고, 무슨 종류가 좋은지를 줄줄 읊을 수 있다. 그리고 하키를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물어오면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알려주려 노력한다. 하도 아이들과 허튼짓을 많이 하며 배운 것들이 많기 때문에 또 다른 예비 하키맘이 나처럼 고생하게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키 기어는 차마 가격대가 저렴하다고 말할 수 없는데, 만약 처음 시작한다면 비기너 키트를 활용하는 편이 좋다. 또 캐나다는 중고 하키물품을 나누어 쓰는 시스템도 잘 되어있는 편이고, 중고 거래도 많기 때문에 초보자라면 너무 좋은 물건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단, 스케이트만큼은 반드시 새로 사서 자신의 것을 만드는 것을 권한다. 스케이트는 생각보다 오랜 기간 사용하는 것이고, 자기 발에 꼭 맞게 살짝 작은 느낌이 들 때까지도 쓴다. 더불어 중고로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스케이트를 쓰게 되면, 발과 맞지 않아 잘못된 스케이트 습관이 생길 수도 있다. 정말 운이 좋지 않으면 발복 부상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기어는 대체로 중고를 사용해도 괜찮지만-헬맷은 제외-, 스케이트에 한해서는 투자를 하라고 권한다. 나는 처음에 첫째가 쓰던 스케이트를 둘째 아이에게 물려주곤 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게 아님을 알고 미련 없이 둘째 아이에게 맞는 스케이트를 사준다. 형제라도 발 모양이 다르고 스케이트 습관이 달랐기 때문에 같이 공유할 수는 없더라.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 중고물품은 생각보다 사용이 꺼려지긴 하는데, 무엇보다 ‘냄새’가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아직 어린 나이엔 괜찮지만, 이제 10살이 된 둘째 아이의 팀 체인지 룸에도 점점 들어가기가 꺼려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운동이 격해질수록, 기어에 배인 땀냄새는 좀 많이 참기 힘들어진다. 물건에 따라 물론 다르겠지만, 큰 아이들일수록 다른 사람이 쓰던 물건은 그래서 잘 사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아마 그래서 물건이 더 비싸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자신에게 맞는 기어를 준비했다면, 이제 실제 하키의 세계로 넘어가 보자. 어떤 방식으로 팀에 배속되고, 그 안에서 어떻게 그룹을 나누고, 스킬 세션이 진행되고 게임을 하게 되는가. 앞으로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