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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카 Aug 17. 2019

무명 세대의 허랑한 푸념

<386 세대유감> 리뷰


지난 6월 이한열 열사 추모식을 취재하러 갔다. 선배님 얼굴을 새긴 티셔츠를 맞춰 입고 군무를 추는 20대 초반 후배들 사이로 영정이 들어왔다. 학생 네댓명은 맞춘듯 선배님의 큰 뜻을 기린다는 소감을 말하고 천막 밖 땡볕에 서서 내빈으로 온 어르신을 맞았다. 


뱃지를 단 키크고 잘생긴 의원이 도착했다. 그가 도착하자 어느 학과장, 어디 단체장이며 교수님들이 주변으로 모였다. 87년의 한가운데 섰고 탄핵 정국에서도 핵심이었던 그는 쇠진할 법도 한 커리어였지만 오히려 한창 때의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뱃지와 위신 그리고 경제적 성취를 거둔 그 세대를 상징했다. 


천막 바깥과 내빈석. 86세대와 현재 20대의 자리다. 6월항쟁에 이어 촛불집회의 성취까지 얻어냈으니 그럴만도 하다. 혁명은 커녕 취업도 이뤄내기 힘든 세대는 천막 바깥 정도가 맞을지도 모르니..


이 책은 86세대를 비판하는 이야기 모음집이다. 익숙한 얘기인지라 모음집이라고 보는게 딱 맞다. 텍스트는 익숙하다. 86세대는 경제적 혜택을 받았고, 정치적 단결력으로 권력을 점유하며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한다는 얘기.


'86 장기집권론'을 가장 집요하게 주장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산업화 세대다. 이 책이 주목 받은 이유는 화자가 2030세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구매자 가운데 26%는 50대 이상이다. 2030세대는 17%에 그친다. '20대가 86세대를 비판하는 얘기를 들으며 좋아하는 산업화 세대'의 구도는 한국사회 담론지형의 한 장면이다.


부를 이름도 없는 2030세대가 86세대와 각을 세우려 해도 어려운 몇가지 이유가 있다.


사실 86세대로 인해 가장 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건 역설적으로 2030세대다. 이 세대는 86의 에코세대다. 지금의 20대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쯤 무상급식이 시작됐다. 몇년 뒤에는 반값등록금이 시작되더니 이제는 정부의 역점사업으로 청년-신혼주택 공급이 떠오른다.


몇번의 전국단위 선거에서 드러났듯 2030세대는 찻잔 속 태풍이다. 머릿수는 점점 준다. 그래도 쏠쏠하게 받아 챙긴다. 이 세대의 부모가 바로 86세대이며 2030세대에 돌아가는 혜택은 사실 86세대가 쟁취한 성과다. 아이들의 눈길을 끌어 부모 지갑을 여는 고전적 수법이 정치에서도 먹히는 셈. 이런저런 불평을 해도 이 세대는 86세대와 후원관계다. 


86의 장기집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허무한 다른 이유는 이들의 집권은 이제 시작이기 때문. 수명이 늘고 있다. 현재 86세대는 50대다. 치안총수인 경찰청장이 몇 살인가? 54세다. 예전 같으면 총장 퇴임 후 한 20년 정도 무슨무슨 클럽이니 다니며 기침 좀 하다 생을 마친다.


이제는 앞으로 40년은 더 산다. 정년 없는 노후 사업에 관심이 간다. 정치다. 이런 사람이 이제 쏟아져 나온다. 언론계, 기업계, 학계에 넘친다. 86세대 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여의도가 점점 더 노후화되는 건 이어질 추세다.


주목할 움직임이 있다. 심상정 대표가 반드시 총선서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낸다고 했다. 언제는 그런 다짐을 하지 않았냐고 하지만 이번엔 남다르다. 6~8%를 자신들이 가져가도 민주당은 한국당을 무찌를 만한 주류라는 확신이 선 것이다.


경제적 주도권도 이어진다. 연금경제화가 진행될수록 자산을 가진 이 세대는 소비력까지 유지한다. 2030세대의 소비력까지 이전 받는다. 부와 명예, 권력까지 쥔 86세대의 장기집권이다.


그런거 관심없고 보람튜브나 되고 싶은 우리 세대 입장에선 헛헛한 얘기다. 그나마 관심을 가질만 한 얘기는 앞에 언급한 정의당의 선언이 아닐까 싶다. 판세를 보니 결국 86 아랫세대를 모아 저항 세력으로 규합하자는 생각으로 보인다. '동성애자 차별은 싫지만 보기도 싫어요'가 청년보수라는 저쪽은 어차피 희망도 없어보이고..


사실 세대론은 맥거핀일지도 모른다. 2010년대를 후에 기억할 때 유의미한 주인공은 여성이 아닐까. 내 또래의 누군가가 주연인건 이 문제 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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