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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민 Dec 02. 2021

게임 해설가, 요즘 세대의 인플루언서(2)

e스포츠 경기에 '스토리'를 부여하는, 게임에 누구보다 열정적인 이들

사진=유튜브 채널 빡겜러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문구를 알고 계신가요?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게임 e스포츠 경기 시작 전, 터줏대감이신 전용준 캐스터가 경기 개시를 알리는 멘트입니다. 이 멘트를 모르시는 분들은 갸우뚱 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이 멘트를 듣자 마자 가슴이 웅장해지고 벅차는 것이 느껴지네요.


지난 글에서는 요즘 세대(MZ세대, 거칠게는 10대-30대)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이 점차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초등학생들이 '유튜버'를 장래희망 1순위로 적었던 것도 어느덧 몇년이 지난 이야기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인플루언서, 제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누구일지를 고민해 봤습니다. 제가 대표하는 인구집단이 2030대, MZ세대 남성이라고 하면, 어느정도 일반화될 수 있을까요? 저는 e스포츠 관련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기사도 썼었던만큼, 게임 및 e스포츠 업계의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게는 게임 해설자들이 저의 인플루언서에 해당합니다.


게임 경기에 선수가 있으면 되는데, 해설자는 왜 필요할까요? 해설자 섭외는 대회의 규모를 가리지 않습니다. 아프리카TV 등 개인방송 플랫폼에서 열리는 작은 대회에서도 게임 해설자는 반드시 등장합니다.

아프리카TV 이벤트 대회 해설진, 사진=아프리카TV 캡처

해설자들은 e스포츠 경기를 종합 '콘텐츠'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e스포츠와 게임에 '프로'라는 개념이 도입된 후로, 선수들이 치르는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경기'로 자리매김해갔습니다. 그러나 게임에 대한 인식이 과거 대중적으로 좋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들끼리는 가슴 벅찬 명경기였을지라도 바깥에서는 인지도가 없거나 그저 오락으로 취급받기도 했죠.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스타크래프트 해설가로 활동하셨던 엄재경 해설위원은 최초로 게이머를 '프로 선수'로 호칭하며 스토리를 만드는데 주력했습니다. 단순히 10대들의 하위 문화가 아닌, 직업으로서의 프로 선수의 이미지를 만들어 간 것입니다. 당시 만들어진 프로게이머의 이미지와 스토리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데요. '황제' 임요환, '폭풍' 홍진호부터 '천재' 이윤열, '폭군' 이제동 등 캐릭터와 별명부터가 상당히 인상깊고 멋지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수의 플레이스타일에 맞는 스토리와 캐릭터가 붙어 시청자들끼리 밈을 만들기도 하구요. 그래서인지 스타크래프트는 여전히 팬들의 기억에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에 인터넷 방송과 함께 재유행을 타기도 했습니다. 

'황제'라는 별명에 담긴 그의 스토리, 사진=JTBC


제게 특별히 영향을 미친 해설가가 있다면 현재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을 해설하고 있는 김동준 해설위원과 '클템' 이현우 해설위원입니다. 


김동준 해설위원은 1981년생으로 1998년부터 스타크래프트 프로 게이머로 활동한 초창기 유저였는데요. 2002년부터 해설자로 전향해 아주 오랜 경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게임 해설자 자체가 안정적인 직장과는 거리가 있기에, 그는 많은 우여 곡절을 겪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등을 겪으며 일자리가 없어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 해설 종목을 리그 오브 레전드로 바꾸기도 했는데요. 새로운 후배 해설자들이 계속 등장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만의 강점을 보여주고 있어 보는 재미가 있는 해설자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인벤

e스포츠 업계에서는 어느덧 잔뼈가 굵은 그지만, 아직도 우리는 게임과 해설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김동준 해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에서는 그를 '강팀준'으로 호명하며, "강팀 경기만 나오면 경기 해설할 생각에 신나서 행복해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도 명경기가 나올때면 그가 진짜 감동하며 해설하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김동준 해설위원은 이 명경기를 해설하면서 되려 돈을 받는 자신이 어리둥절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할 정도니까요. 실제로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은 진성 겜돌이"라며, "게임으로 돈을 벌고, 직업을 삼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이 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클라우드 템플러', '클템' 이현우 해설위원인데요. 그는 1989년생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가 아직 이 정도의 위상을 갖기 전, 1세대 프로게이머로 활동했던 선수이며 현재는 개인방송과 해설을 병행하는 종합 크리에이터입니다.

사진=인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클템 이현우 해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의 어휘 사용, 어투, 화법 등을 따라하기 위해서 한동안 그를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화법은 '포장'에 특화되어 있으며, 뛰어난 순발력으로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데 탁월합니다. 오죽하면 팬들은 "아무리 재미없는 경기도 클템이 들어가면 살릴 수 있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클템 화법의 특징은, 특유의 완곡어법, 쉽게 단정짓지 않고 문장을 늘여 말하는 기술, 사자성어의 적극적 활용을 통해 사운드를 채운다는 것인데요. 저도 사석에서는 잘 활용하고 있지만...공적인 자리의 PT 때는 좋지 못한 것 같네요ㅋㅋ....


클템 이현우 해설은 학창시절에 공부를 제법 잘했고, 대학을 다니다 군대로 가서 복학 후에 프로게이머의 길로 들어섭니다.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리그 오브 레전드 판에서, 최초로 뛰어들어 프로로 활동한 그야말로 개척자였던 셈인데요. 


클템은 선수로서도 1세대였고, 리그 오브 레전드 해설자로 전향한 최초의 선수 출신 인물이었으며, 해설을 하는 동시에 개인방송 캐릭터를 구축해 성공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은퇴 선수들이 그의 모델을 벤치마킹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만큼 구설수도 많았고 사건사고도 많았는데요. 어쨌든 현재까지 독특한 컨셉(...)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해왔으며, 여전히도 콘텐츠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결국 해설자도 연예인이나 유튜버와 다르지 않아서, 불러주는 시청자가 있어야만 수입이 유지되기 때문이겠죠.


자기 자신을 '쓰레기'라고 칭하며 개그 캐릭터를 만들어 광대가 돼버린 클템, 사진=클템 유튜브 채널

재밌는 것은 81년생인 김동준 해설은 여전히 미혼이나, 89년생 클템 이현우는 자녀가 둘 있는 가장입니다. 클템이 이런저런 일을 벌이며 시도하는 모습을 두고, 팬들은 '가장의 무게'라고 부릅니다.


두 해설위원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많은 귀감이 되는데요. 특히 안정적인 상황과는 거리가 먼 게임 업계, e스포츠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시청자들에게 재밌는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이 제가 좋은 인상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그 경기를 진짜 즐기면서, 또 선수들의 뜨거운 승부에 감동하면서 해설하는 것이 느껴질 때면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곤 합니다. 


앞으로도 두 해설의 콘텐츠, 그리고 삶을 통해 제가 영향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만하면 저에게는 단순한 게임 해설가, 콘텐츠 전달자가 아닌 인플루언서가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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