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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쏠라미 Sep 01. 2021

오랫만에 보낸 카톡

유종의 미

나는 스물 세 살에 선출산 후결혼을 했다. 

정확히는 스물 셋에 출산 후, 스물 넷에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누구도 내가 말하기 전까진 모른다. 내 결혼식 사진엔 어디에도 우리 아들이 안찍힘으로.


아들이 세살이 될 때까지 나는 시댁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 해 겨울 분가를 했다.

분가하며 이사 들어간 집은 정말 좋았다. 자유가 있는 온전한 우리 집이었다.


'아 귀찮은데 빨래 내일해야겠다.'

'설거지 내일 아침에 해야지'

시댁에서 산다는 건 이런 게으름따위는 통하지 않았고, 먹고싶은 것도 맘껏 먹을 수 없었기에 나에게는 군대같았다.


그런데 분가를 했으니 나는 이웃도 맘껏 집으로 초대해서 차 한잔 할 수 있었고, 친정엄마도 슈퍼에서 1+1 달린 우유를 사더라도 맘편히 나눠주러 집에 들릴 수 있었으니 나는 '우리집'이 주는 안락함을 24시간 온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네 살이 된 아들이 교육기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도 같은 기관을 보내는 엄마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카톡에 '생일인 친구' 목록이 있다.

나는 이걸 잘 보진 않는데 그 날 따라 이 목록을 들어갔다.

그러자 9월에 생일 예정인 친구들까지 줄줄줄 친절하게 나와있었는데 그 중 한명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분가 후 나의 육아 호시절을 함께 했던 언니들 중 한명이었다.


그 당시 4살이었던 울 아들은 12살이 되었고, 여러 사정으로 인해 내가 그 지역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왔고, 그 이후 연락안한지도 몇 년이 지났기에 연락하기가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카톡을 보냈다.


[언니 안녕하세요? 저 **이 엄마에요]


[@@야~ 오랫만이당^^ 잘 지내고 있지?^^ 

언니는 서울로 이사왔어. 거의 2년 되어가네~ 넌 %%에 살고있어?

애기들 많이 컸겠다 ㅎㅎ 보고싶네^^]


그 당시에도 친절했던 그 언니는 반갑다고 답장을 보내줬다.

하지만 곧바로 그 언니는 나가려던 참이라서 길게 얘기는 못하겠다며 잘 지내라는 인사를 건네왔다. 


[오랫만에 넘 반가웠구~ 내가 지금 나가봐야 해서 아쉽지만 오래 톡은 못하겠다

담에 또 안부 연락하자^^ 건강하게 잘지내구~]


그 순간 서운함이 확 밀려왔다.

나는 같이 호들갑 떨며 옛날 일들을 함께 되짚으며 추억하고 이야기 나눠주길 바랬다.


9시면 아이들 등원차에 실어보내고 네 명이 모여 오전 내내 차마시며 이야기 나누던 일.

함께 근사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서점에서 아이들 그림책 고르던 일.


오후 4시. 아이들이 하원차에 실려 집앞에 내리면 다가이 놀이터에 가서 

저녁 때까지 뛰놀던 일, 차 타고 교대 캠퍼스가서 아이들 뛰어놀리던 일.


내가 경기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을 때 

송별파티 해준다고 밤 중에 한 집에 모여 근사한 테이블을 차려서 다함께 짠~ 하고 건배 했던 일...


아.. 난 그냥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고 싶었었는데 타이밍을 잘못 잡았나보다. 

사실 이 언니는 나의 연락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을 했다.


[네~ 생일인 친구 목록에 뜬거 보고 연락해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카톡 보낸건데

기억해주니 감사해요 ㅎㅎ

놀이학교 보낼때 어린나이에 우리 아들 키우면서 처음사귄 육아 동지였어서 

언니들이 좋은 기억으로 한 부분 남아있어요^^

바뿌신데 답장해주셔서 감사해요 ㅎㅎ 언니두 건강히 잘 지내세요~^^]


[나두 옛날 서로 즐거운 대화 나누며 아이들 키우던 생각이 나네~^^

너두 건강히 잘 지내구~ 연락줘서 고마워 ㅎㅎ]



서운했지만 내가 고민끝에 어색함을 뚫고 카톡을 보낸 이유를 짤막히 말하며 마지막 인사하듯 답장을 보냈고, 그녀도 고맙다고 했다.

 

좋은 인연, 좋았던 시절, 함께 나눈 시간들을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더 이상의 답장은 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서운한 마음은 사라졌다. 

 

스쳐가는 인연은 스쳐가게 둬야하는 것 같다. 

음...

나도 고마웠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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