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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코치 Nov 29. 2017

#5. 엄마가 내는 화의 실체

화로 퉁쳐버린 수많은 감정들

심리학에서 화는 2차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화’라는 감정이 일어나기 전에, 1차로 발생한 다른 감정이 있다는 이야기지요. 예를 들어, 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피가 난 것을 보고 달려가 ‘그러길래 조심하랬잖아. 왜 엄마 말을 안 들어’라고 혼내며 화를 내지만, 그 전에 이 엄마가 1차적으로 느낀 감정은 ‘놀람’, ‘걱정’입니다. 밤늦도록 남편이 연락도 없이 들어오질 않다가 12시가 되어 만취해 들어왔을 때 ‘왜 전화를 안 받아. 술은 또 어디서 이렇게 많이 마셨어’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아내의 화 이전의 감정은 ‘안도’, ‘안심’일 것이며, 그 전에 느낀 감정은 ‘불안’과 ‘걱정’입니다. 놀라고 걱정되었는데 화를 내는 경우처럼, 진짜 감정이 아닌 화로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내 가족상담의 권위자 서울대 김용태 교수는 그의 저서 <가짜감정>에서 감정을 3가지로 구분합니다.      

                                                   

화는 표면감정이고, 그 아래에는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이면감정, 더 깊은 곳에는 수치심이라는 심층감정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최초로 경험하는 감정은, 신생아 시절, 엄마와 자신이 같은 존재가 아닌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느끼는 ‘불안’입니다. 인생 초기의 불안한 감정이 부모의 민감성으로 달래지지 않으면, 아기는 ‘나는 뭔가 부족한 존재’, ‘별 볼일 없는 사람’,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그 결과 마음 속 깊숙이 수치심을 품게 됩니다.     


무의식 속에 수치심과 불안을 갖게 되면, 그런 모습을 들킬까봐 두려워하게 되고,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알면 무시나 비난을 당할까봐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여린 감정을 없애고 감추기 위해 화를 냅니다. 화를 내면, 대화의 초점을 상대방에게 돌릴 수 있으므로, 자신의 진짜 감정을 직면하지 않아도 되고, 또 화에 담긴 ‘나 아닌 네가 문제다’라는 메시지를 통해,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이지요. 김용태 교수는 ‘화는 이렇게 자신의 문제를 피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다준다’라고 합니다.     


저의 친정 아버지는, 화가 많은 분이셨어요. 술을 드시면 소리를 지르기도 하시고, 저희를 무릎 꿇려 놓고 혼을 내시기도 하셨지요. 어린 저희 형제들은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었었지요. 제 위로 언니와 오빠는 조그만 실수에도 맞기도 했고, 제 눈 앞에서 피를 본 적도 있었어요. 어릴 때는 아버지의 화가 마냥 무섭기만 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니, 그 화 이면에 열등감과 불안이 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못 배운 것에 대한 열등감, 동생보다 부모님의 사랑을 덜 받은 것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네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불안감. 그러나 그는 ‘강해야만 하는’ 남자이자 ‘가족의 버팀목’이어야 하는 아버지였지요. 자식들과 아내에게 걱정을 끼치기도 싫고, 또 약해 보이고 싶지도 않으니 열등감이나 불안감 같은 여린 감정을 보일 수 없었겠지요.    


엄마들이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 역시 2차 감정입니다. 화나기 전에 먼저 스쳐 지나간 감정이 있습니다. 엄마들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된 1차 감정은 ‘피곤함’입니다. 밤잠 잘 못자고, 낮에 쉬지도 못하고, 종일 집안일과 독박육아에 시달리다가 저녁즘 되면 꼭 폭발을 하곤 하지요. 육체적 피로 뿐인가요.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놀아주는 것에 대한 피로감, 아이 앞에서 진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애써 웃고 편안한 척 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피로감들이 쌓였을 때, 피곤하지 않았을 때라면 괜찮을 행동에도 버럭하게 됩니다.    

다음은 ‘초조함’입니다. 특히 아침 시간에 많이 느끼지요. 어린이집 갈 시간이 다가오는데, 아이는 세월아 네월아 놀이 하고 있을 때, 엄마는 늦을까봐 아이를 재촉하게 됩니다. 밥을 입에 떠 넣고, 스타킹 겨우 신겨서 신발을 신기려는데, 신발이 마음에 안 든다고 투정을 부리기리도 하면, 초조함 감춰가며 친절하게 재촉한 게 무색하게 버럭 하고 맙니다.  

  

세 번째는 ‘걱정’과 ‘불안’입니다. 아이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을 때 “야, 너 엄마가 이런 위험한 짓 하지 말랬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라고 화를 내지만, 속마음은 놀라고 걱정되는 마음입니다. 정성껏 다양한 반찬을 해서 먹여도 잘 안 먹는 아이에게 끝끝내 “너 왜 이렇게 안 먹어. 됐어. 먹지마. 엄마도 이제 반찬하기 싫어!”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속으로는 아이가 안 크면 어쩌나,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입니다.    


아쉬움과 서운함도 있습니다. 남편이 일찍 들어온다고 해서 찌개 끓이고 생선 굽고 간만에 정성껏 밥을 차려놓았는데 갑자기 회식 때문에 늦을 거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말은 “그걸 왜 이제야 말해줘. 아 정말 이상한 회사야. 그리고 당신도, 회식 한번 빠지는 게 그렇게 어려워? 됐어 끊어.”라고 하지만, 단란한 저녁식사가 물 건너 간 것에 대해 내심 아쉽고 서운한 것입니다.     


피곤함, 초조함, 걱정과 불안, 아쉬움과 서운함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화나 짜증으로 둔갑해서 단순해져 버렸습니다. 정신분석학자 롤로 메이에 따르면 “성숙한 사람은 감정의 여러가지 미묘한 차이를 마치 교향곡의 여러 가지 음처럼, 강하고 정열적인 것부터 섬세하고 예민한 느낌까지 모두 구별할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감정세계의 표현이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높은 음 낮은음, 강한 음과 약한 음을 내는 교향악단의 연주가 아니라, 단조롭고 단선적인 기상나팔 소리에 그치는 것이지요.   

 

한 엄마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활달하고 호기심 많은 둘째 아이가 외출만 하면 엄마 손을 놓고 도로로 뛰어들곤 해서, 아이의 문제행동을 멈추려고 화내면서 혼을 많이 냈다고 해요. “너 미쳤어? 너 그러다 사고 나면 구급차타고 병원 가서 치료 받아야 해.”, “한번만 더 찻길로 달려가봐. 엄마 너 안데리고 다닌다.” 목소리는 빠르고 높았고, 시선도, 행동도 거칠었겠지요. 그렇게 갖은 수를 다 써도 아이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고 하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그렇다고 정말 안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혼내는 자신의 의도가 사실은 아이에 대한 지극한 사랑, 아이의 안전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온 것을 깨닫고는, 진심을 다해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우리 00이 그러다 다치면 엄마 정말 슬플 거야. 엄마한테는 00이가 너무 소중하거든. 엄마는 00이랑 함께 오랫동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다시는 찻길로 달려가지 않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어?” 믿거나 말거나 둘째는 그 뒤로 더 이상 찻길질주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속마음, 진짜 감정, 여린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엄마가 왜 얼마나 속상하고 아픈지 제대로 들려줌으로써, 아이가 엄마의 진짜 마음을 이해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엄마로서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써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왜 경계하고 불안해하고 아파하는지 알아야, 아이에게도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by 지혜코치

 http://blog.naver.com/coachjih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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