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아침밥상에서 벌어진 일이예요. 밥 맛 없다고 깨작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슬슬 올라오는 화를 감지하고 있던 차에, 마지막 남은 김 한장을 가지고 열두살 첫째와 다섯살 막내가 싸웁니다.
첫째 : "내 꺼야. 내가 가져왔어."
막내 : "싫어! 내가 먹을 거야."
첫째 : "이리 내. 안 주면 뺏는다~."
막내 : "안 줄 건데~" (메롱하면서 김에 침을 착~)
그 모습에 열 받은 첫째가 막내 식판에 물을 부어 버립니다. 난데없는 물세례에 막내는 울고 저는 열이 뻗치고 첫째는 씩씩대고, 식탁 주변으로 순식간에 불기둥이 솟습니다. "너 뭐하는 짓이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제 입에서 말이 튀어나가고 맙니다. 곧이어 정신을 차리고 뻗치는 열을 누르며 첫째를 방으로 불렀습니다. 잘못을 일러주기 위해서죠. 그런데 아이가 레이저 눈빛을 쏘며 버팁니다. 뭘 잘했다고 말이지요! 아침부터 제 속은 부글부글!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서 화 날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사고를 치니까요. 친구를 때리고 밀치고 친구와 싸우고, 학교 다녀와서 숙제 안하고 게임을 붙들고 있고, 준비물을 빠뜨리고 방과후 수업을 잊습니다. 그뿐인가요. 부모교육에서 “어떨 때 화나세요?”라고 질문을 드리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은 “여러번 말해도 안 들을 때”예요. 저도 순한 딸 키울 때는 몰랐는데, 5살 아들 쌍둥이를 키우면서는, 불러도 쌩 하고 지나가 버리는 두 녀석 때문에 매일같이 약이 바짝바짝 오릅니다.
그렇다고 매번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 우리는 아이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줘야 하는 부모니까요. [엄마의 첫 공부]의 저자인 서울대 어린이병원 홍순범 교수는 2돌까지 애착, 초등학교 5학년까지 훈육, 그 이후에는 자립이 부모의 3가지 역할이다라고 정의할 정도로, ‘훈육’은 20년 부모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빼 놓을 수 없는 역할입니다. 이럴 때마다 적용되는 훈육의 원리를 안다면, 덜 불안하고 덜 자책하며 부모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치료사 버지니아 사티어는 의사소통유형을 다섯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그중 비난형은 자기 잘못이나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상대 탓으로 돌리는 유형입니다. 동생 식판에 물을 엎지른 첫째에게 “뭘 잘 했다고 눈에 그렇게 힘을 줘.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어?”라며 두 눈 부릎뜨고 아이를 몰아붙이는 거죠. 두 번째 회유형은 상대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을 최우선시하는 유형입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말도 행동도 절제하는 거죠. ‘좋은 게 좋은 거지, 굳이 분란 일으킬 거 있어’라는 생각에 치밀어오르는 화를 꾸욱 누릅니다.
세 번째 초이성형은 감정 표현을 일체 삼가면서 팔짱 낀 상태로 이론과 정답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열두살이나 된 애가 그깟거 하나 이해 못하고..잘 하는 짓이다 쯧쯧쯧”. 네 번째 산만형은 한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있지 못하고 이 주제 저 주제를 혼란스럽게 오가는 유형을 말합니다. 아이를 혼냈다가 미안하다고 했다가 혹은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스타일입니다.
네 가지 유형은 각각 부작용이 있습니다. 비난형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회유형은 자신의 욕구를 자꾸 희생하게 됩니다. 초이성형은 상대가 연결감과 친밀감을 느끼지 못할 테고, 혼란형은 관계 자체를 이어 가기가 어렵습니다.
사티어가 말한 다섯 번째 유형이자 바람직한 방향으로 제시한 것은 일치형입니다. 일치형은 자신의 속마음, 즉 감정과 생각과 기대와 열망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상대의 속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입니다. 아이와 대화를 나눌 때 아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엄마 자신의 속마음에도 귀 기울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일치형의 의사소통입니다.
일치형이 좋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우리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비난형, 회유형..문제가 있는 의사소통방식을 유지합니다. 이것이 어릴 적 부모에게 수용받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즉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생존방식이고 그 후 수십년간 매일같이 밥먹듯 써온 방식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 방식으로는 아이와 소통이 삐걱댄다는 것을. 훈육의 효과가 없다는 것을 말이지요.
저희 아침 밥상머리에서 일어난 싸움현장으로 돌아가 볼까요? 네가지 중 어디에 발붙이고 있느냐에 따라 제 반응은 이렇게 달라집니다.
자책, 회의 : ‘내가 애랑 잘 대화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역시 잘 될리가 없지’
불신, 포기 : ‘나 지금까지 뭐한 거야. 그렇게 공들인 애가 이 정도밖에 안돼? 그냥 다 포기하자 포기해’
독선, 배타 : ‘내가 너한테 그동안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데, 너 뭘 보고 배운 거야!’
협력, 공존 : ‘네가 뭔가 단단히 화가 났나 보구나. 무슨 사정인 건지 좀 들어보자. 이 상황을 잘 해결해 봐야지’
독자님은 이 중 어떤 접근이 가장 익숙하세요? 제가 만나본 부모님들은 3번, 독선과 배타 포지션에서 가장 많이 훈육해 왔다고 하시더군요. ‘네가 얼마나 잘못을 했는지’를 매섭게 알려주는 거죠.
전문가라고 하는 저도 실수를 많이 하는데요. 다행히 저 날은 정신줄을 붙들고 4번 영역을 기억해 냈어요. 화가 나서 동생 밥그릇에 물을 부은 아이에게 무엇이 잘못이고 왜 잘못이며 바른 행동은 무엇인지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려는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지 않고, '뭐가 그렇게 화가 났어?'라고 묻고선 아이에게 말할 기회를 주었지요. 글이라 뉘앙스가 전달이 될까 싶지만, 이 질문은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왜 그렇게 사사건건 불만이야?)와는 다른 말이예요. '네가 화난 이유를 알고 싶다'라는 호기심의 표현이었어요. 엄마의 열린 질문에 아이는 자신이 화난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고, 듣다 보니 저도 '화날 만 하군' 이해가 되었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제 모습에 아이의 화는 바로 누그러졌지요.
사람은요. 자기 심정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 고함치지 않아요. 그럴 필요가 없는 거죠. 만약에, 우리 아이가 자꾸 소리 지르고, 자기 입장만 고집스럽게 관철시키려고 한다면, (위험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때가 아니라면) 한번 아이 속마음을 들어 보세요. 금쪽같은 내 새끼의 AI 코끼리가 된 것처럼 말이죠. 아이는 자기 마음에 귀 기울이는 엄마 모습에, 금세 순한 양으로 변할 거예요.
아이도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나도 노력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해야 해요. ‘넌 도대체 누굴 닮았길래!’라는 마음을 가진채 훈육을 하면, 아무리 말을 부드럽게 해도 아이의 행동을 바꾸지 못합니다.
이쯤이면 이런 생각이 드실 거예요. ‘이렇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하면 씨알도 안 먹혀.’, ‘좀 더 엄하고 단호하게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이렇게 어떻게 말해. 왜 그래야 하는데!’. 어릴 적 꿀밤이나 등짝 스매싱, 회초리와 소리지르기, 손 들고 서 있기 이런 훈육을 익숙하게 받아왔던 우리에게, 말로만 하는 훈육은 너무 호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땐 누군가 우리에게 가르칠 때 어떻게 대해주면 좋을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부드럽고 친절하고 구체적으로 알려주길 바라시나요? 아니면 허리에 손 얹고 무서운 눈빛과 낮은 톤으로 겁주며 혼내길 바라시나요? 두번째와 같은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서워서 몸과 마음이 얼어버리기 때문이지요. 개중에는 “전 맞고도 잘 자랐는데요.”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매일같이 맞은 게 아니라, 어쩌다 한번 호되게 맞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나마도 안 맞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잘 자랐을 거예요.
말이 세다고 효과가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말의 효과는1) 말하는 이가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2) 상대의 눈높이와 정서에 맞추어 듣기 좋게 전할 때 가장 높습니다. 눈동자에 힘을 준다고, 목소리를 낮게 깐다고 효과성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지요. 훈육에서의 단호함이란, 말투나 표정보다 일관성과 연관이 있습니다. 무엇이 되고 안되는지를 일관되고 반복적으로 말해줄 때 그것이 아이에게는 단호함으로 느껴지는 것이지요. 훈육의 언어 A.I.D는 ‘원조, 지원’이라는 뜻입니다. 훈육은 그 누구도 아닌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아이가, 탈 없이 잘 성장하도록 이끌어 주기 위해서요. 그러니 입에서 잔소리가 터져 나오려고 할 때 입을 닫고, 아이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말만 골라 주세요. 칭찬은 자주 공개적으로, 훈육은 가끔 아이와 둘이서만 하는 거랍니다!
(위 글은 동화세상에듀코의 코칭맘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