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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날다 Jan 25. 2018

'오래된 미래'는 우리의 '현재'가 될 수 있을까?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오래된 미래’ 모순적인 두 개의 단어가 만났다. 아마도 작가는 오래된 그 무엇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 같다.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1970년대 중반 학위논문을 쓰기 위해 라다크를 방문한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호지의 관심은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과 전통으로까지 옮아간다. 그리고 라다크 사람들이 오래도록 이어온 전통적인 생활문화가 전 지구의 생태적 다양성을 회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그 여정을 전통, 변화, 미래라는 3개의 장으로 펼쳐낸 책이 <오래된 미래: 라다크에서 배운다>이다. 

 중국, 티베트, 인도, 파키스탄에 둘러싸여 있는 라다크는 정치적으로 인도 카슈미르에 속해 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역사·문화적으로 티베트에 가까워 ‘작은 티베트’로 불린다. 척박한 자연환경, 자급자족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라다크 사람들은 땅과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물 한 방울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도 소중한 자원으로 다시 사용하는 등 자연으로부터 얻은 모든 것을 헛되게 소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우리들 보통사람의 시각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뜻하게 살 수도 없고 깨끗이 씻을 수도 없다. 곡식을 빻고 옷을 지을 때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기 때문에 노동강도도 상상 이상으로 세다. 또한 라다크 사람들은 탄산음료나 케이크 같은 달콤한 음식도 먹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다크 사람들은 평안하고 충만하며 행복하다. 그들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라는 말을 모른다. 그리고 늘, 활짝 웃는다. 억지로 짓는 미소 같은 것은 없다. 남성도, 여성도, 아이도, 노인도 각자의 역할을 다 하며 당당하게 살아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책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처음, 라다크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종교와 연결시켜 이점을 설명하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였다. 사실은 공동체의 규모 같은 경제적 환경(조건)이 그들이 평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라다크의 모든 주민은 예외적인 몇몇 가구를 제외하면 모두 자기 땅을 소유하고 있다. 빈부격차가 거의 없다. 또한 마을은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100가구가 넘는 마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주민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일원과 직접 접촉하고 상호 의존하며 살아간다. 혹 개인의 이해와 공동체의 이해가 충돌해도 함께 의논하고 능동적으로 해결하면서 한 사람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손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다. 법과 관료제, 거대시장에 의해 좌우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다수 다른 지구인의 삶과는 참으로 다른 이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라다크에 글로벌이라는 미명 하에, 개발의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오랜 기간 라다크는 부족한 자원, 혹독한 기후, 용이하지 않은 접근성 때문에 식민주의와 개발의 영향권에서 비껴서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인도 정부가 그 지역을 관광지로 개방하면서 외부로부터 영향이 거세게 불어 닥치게 된다. 

 남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수도인 ‘레’로 떠났다. ‘레’는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순식간에 평온했던 모습을 잃어버리고 흔한 제3세계 국가의 슬럼가로 변해 버렸다. 라다크 사람들은 서구인과 비슷해지기 위해 차림새, 말투를 흉내 내며 라다크의 전통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더 벌기 위해 이웃을 속이고 가족과 다툼을 하게 되었다. 

 서구로 대변되는 선진국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라다크도 이제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개발과 발전의 길로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미국 달러의 가치가 변하면 인도 화폐 루피도 덩달아 춤을 추고 예전과 달리 생계를 위해 화폐를 사용하게 된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도 오락가락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다.

 한마디로 라다크는 세계경제라는 사다리 제일 아래 자리 잡게 되었다. 땅을 경작하며 살던 시절에는 그들 모두가 삶의 주인이었지만 이제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먼 나라 사람들이 내린 결정에 따라 끌려 다니는 비주체적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또한 서구의 이미지를 동경하게 되면서 고유한 문화와 뿌리를 부정하고 정체성마저 부인하게 되었다. 이런 소외현상은 자칫 적개심과 분노를 유발하기 쉽다. 오늘날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종 간, 문화권 간 갈등과 폭력사태의 한 원인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개발계획이 추진되고 16년 정도 흘렀을 때 라다크는 빈부격차가 커지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범죄 발생률이 증가했다. 외부세계에 대한 경제 의존성이 커짐에 따라 전통적인 자급형 경제구조가 사라지고 가정과 마을 공동체마저 붕괴되었다. 

 사실 세계화, 현대화는 지역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일문화와 경제체제로 편입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제공하는 개발계획은 전통사회의 여러 불편함을 개선하고 선진국으로 나서는 발판이 돼 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개발의 광풍이 분 대부분의 제3세계는 서구 선진국, 다국적 기업의 새로운 시장으로 전락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라다크가 겪어온 개발, 산업화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와 자각한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통적, 생태적 삶을 복원하기 위해 ‘반개발’ 캠페인을 펼쳤다. 라다크 주정부와 인도 중앙정부에 전통문화부흥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 사용 장려를 주장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라다크에서 태양에너지를 활용한 소규모 실험 프로젝트를 실행해도 좋다는 승인을 얻어냈다. 연간 300일이 넘게 해가 나는 라다크에서 태양에너지를 활용해 난방을 해결하고 오븐과 온실을 운영하는 것이다. 또 라다크 사람들이 좋아하는 연극을 활용해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다시 불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일련의 활동은 1980년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작은 국제기구를 설립하는 성과를 내기에 이르렀다. 

 흔히 한 국가가 얼마나 잘 사는지를 평가하는 지표로 GNP(Gross National Product, 국민총생산)를 활용한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 부탄 국왕은 1998년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국민총행복)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문화적 전통과 환경보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철학이다. 

 실제로 라다크나 인근 부탄왕국의 경우 GNP가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에 IBRD(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국제부흥개발은행)는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들은 기초적인 생활필수품을 자급할 수 있고 예술품과 음악을 즐기며 가족, 친구와 여가생활을 하는 시간이 서구 세계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다.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하지 않고 쫓기는 삶 대신 여유롭게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분명 통계적으로 볼 때 그들 모두는 수입이 없지만 통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풍족함이 분명 존재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21세기 들어 여러 국제적인 갈등 상황, 예컨대 빈부격차, 테러, 기아, 난민, 인종갈등 등등이 경제생산만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게 되었다. 그 결과 환경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다양한 분야에서도 생명의 중요성, 지속가능성, 상호 연관성에 대한 관심과 자각, 필요성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인간 중심의 삶, 관계의 중요성을 소중히 여기는 삶 등등. 이제야 사람들은 이런 가치들 앞에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지만 사실 이 모두는 라다크가 아주 오래전부터 증명해 보여준 평범하고 오래된 현재(일상)인 것이다. 과연 라다크의 ‘오래된 미래’는 우리의 ‘현재’가 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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