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 올 대도 없는데 없으면 어떠냐고? 전화기는 전화기 이상이다
딱히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요즘. 그래도 집에서 빈둥대며 누워 있기에는 내가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성격이기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늦은 아침 식사 후에 집을 나섰다. Walmart 에 가서 이틀 늦은 Gas 요금 고지서를 지불하려 샵핑 몰로 향했다. 주차를 하고 걸어가는 길, 캘리포니아 답지 않게 유난히 쌀쌀해진 날씨에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놓고 걷다 보니 전화기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뒤늦게 깨닫느다. 조수석에 던져 놨겠지 하는 안심이 들면서도, 차 창밖에서 전화기가 보이면 차와 전화기가 동시에 위험해질 수 있음을 알기에 맘이 불안했다. 얼른 일을 마치고 차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굳이 발걸음을 돌리지는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진짜 불안이 시작되었다. 전화기를 집에 두고 온 것이다. 불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늘 반나절 불편함을 감수할 생각을 하니 좀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자니 한번 돌아가면 다시 나오기도 좀 꺼려질 것 같고, 먼 거리는 아닐지라도 오며 가며 gas값도 아깝고, 게다가 가장 큰 이유는 괜히 전화기에 심하게 종속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아 그냥 불편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불편할 것도 없다. 특별히 오늘 연락이 올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소 자주 연락이 오는 경우도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편함은 전화기가 전화기 본연의 목적에 맞게 사용되기를 바라는, 솔직히 말해서 누군가와 자주 연락하고 연락받곤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나 결코 되지 못 한 자격지심에 대한 핑계 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올지도 모를 연락은 노트북에 카카오톡을 깔아 받겠다는 생각으로 원래 계획에 맞춰 스타벅스로 향했다. 스타벅스에 도착해서 전화기가 단순 전화기 본연의 목적으로만 쓰이지 않는 세상에 있음을 깨닫는다. 전화기에 스타벅스 앱을 깔아놓고 충전 후 주문을 하던 나에게 전화기가 없으니, 포이트 받기도 틀렸고, 무료 리필도 물 건너 갔다. 그나마 지갑이 있어 현금으로 계산한다.
자리에 앉아 얼른 노트북을 켜고 PC용 카카오톡을 다운했다. 로그인을 하던 중 실소가 터진다. 전화기가 있어야 PC 인증이 되고 노트북으로 카카오톡이 시작된다. 전화기가 없어서 노트북으로 카카오톡을 하겠다는 시도는 전화기가 없으면 노트북으로 카카오톡을 시작할 수 없음을 깨닫음으로 마무리되었다. 결국 전화기가 없어서 발생하는 불편함은 말 뿐은 아니었다. 내 자격지심에 대한 핑계 이상의 진정한 불편함이 숨어 있음을 발견한다.
지난 미국 횡단 여행 중에 전화기가 얼마나 요긴하게 쓰였는지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단순 지도뿐만 아니라, 몇 번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몇 분 후에 버스가 오며 얼마나 가야 도착하는지. 들려야 하는 관광 명소가 어디인지, 맛집이 어느 곳인지 등. 한 번은 마이애미에 밤늦게 공항에서 내린 적이 있다. 공항이 숙소와 너무 멀어 한참 심난해하고 있었다. 버스를 거의 종점에서 종점까지 한번 갈아타야 한다고 전화기는 언제나처럼 성실히 가르쳐 주었지만, 그것까지 임무를 마친 채 배터리가 다해 깊은 잠에 들어갔다. 버스 번호만 가진 채, 어디서 타야 할지, 어디까지 가서 내려야 하는지, 다음 버스는 몇 시에 오는지, 내린 곳에서 타는 것이 맞는지. 막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불안한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밤보다는 새벽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시간이었기에 물어볼 사람들도 마땅찮고, 전화기 충전할 곳은 더욱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여행을 시작하며 히든카드로 지니고 있던 것이 있었다. Uber. 이와 같은 상황이 오면 우버를 부르겠다며 나름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를 세워 놓았다고 생각했건만, 우버를 떠올리는 순간 오늘과 같은 실소를 삐죽 내뿜고 말았다. 전화기가 숙면 중이신데 뭘로 우버를 부르나? 공중전화? 요즘 공중전화가 귀하기도 하지만 있다한들 앱이 아닌 전화기로 우버를 부를 수 있나? 하긴 콜택시를 부르면 되겠다 싶지만, 숙소 주소는 전화기에 들어있는데 불러서 어디로 가자 해야 하나? 누구랑 이야기하는듯이 머릿속에서 혼자 대화를 주고받으며 다시 한번 전화기 의존도를 높이는 시간이 되어 버렸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묻고 물어, 걷고 걸어 새벽이란 말이 어울리기 시작 할 때쯤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긴 여행 필수품 중 하나인 카메라 역할도 전화기가 담당했었고, 오늘도 브런치에 올리려고 했던 글의 밑거름이 될 사진들도 전화기에 있으니 전화기가 전화기 본연의 목적으로 쓰임 받지 못 할 지라도 나에게는 그 외의 이유들 때문에 전화기의 빈자리가 불편함으로 채워짐이 맞다. 하긴 아침에는 전화기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날씨에 주식 시세 확인, SNS의 친구들 소식이며 뉴스, 교통상황, 내비게이션, 잠들기 전 침대에서 잠깐의 시간 때우기까지. 물론 연락 수단으로써의 역할은 당연하고. 그래서 이제 전화기라 하기보다는 스마트폰이라고 하는 것이 정답인가 싶다. 이게 내가 스마트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화기는 분명히 스마트해졌다. 스마트해진 전화기 덕분에 나는 전화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 것은 확실하다.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스타벅스 좋은 자리도 맡았건만, 시간을 보겠다며 자꾸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찾는 나의 손길이 뻘쭘하다. 맘을 괜스레 불편하게 만든다. 전화 올 곳이 없어도 전화가 없으면 나는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