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자. 깨지 말고 계속 꾸자.
오래간만에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지난 몇 달을 특별한 대외 활동이 없이 지낸 듯 싶다. 그렇다고 칩거하여 햇빛 한번 쏘이지 않고 겨울을 난 것까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한 지인들에게 살아는 있냐는 소리를 듣기에는 충분하게, 혹은 한 번씩이나마 보는 친구들에게조차 어떻게 지내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뭘 먹고 지내냐', '먹고는 사냐'라는 질문의 우회적 표현이었다) 특별한 꿈틀거림조차 없이 지낸 것이 사실이다.
사실 글을 쓰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고 싶었다. 내 여행을 위해 나보다 앞서 그 길을 밟았던 선배 여행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 정보를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이 아름답게 남은 추억만을 가지고 할 수는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여행 중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수많은 자잘한 정보들을 그 순간 기록해 놓지 않은 것이 큰 실수였다. 내 기억력이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이 아닌 이상 꼼꼼히 챙겼어야 할 작업이었다. 게다가 순간마다 필요한 사진들을 찍었다 싶었지만 이제와 새로이 기억을 정리하며 들춰보니 내 기억 속에 남은 이야기와는 다른 시점의 흔적들이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기억하는 여행의 스토리를 풀어내기에 막상 사진들은 다른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글의 방향을 바꾸어 시도해 보기로 했다. 결국 추억만 남아 있다면 그 감성을 풀어 보자 싶었다. 충분한 사진들이 없다 할 지라도 사진 한 장만이라도 보는 이들과 함께 마음에 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남겨보고 싶었다. 그 지역의 정보를 줄 수는 없더라도 그곳의 정취를 나눌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이때를 대비했었나 보다. 줄기차게 남겨놓았던 페이스북 포스팅도 있었고 자신 있었다. 하지만 절박함이 부족해서였을까? 이것도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절박감 속에서 한 주에 한 편씩 짧게나마 글을 써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전도사 시절, 보통은 담임 목사님께서 채우시는 교회 주보의 제일 뒷 면을 내가 채워야 했다. 대다수의 목사님들께서 설교를 준비하시며 주보의 칼럼까지 쓰시니 내 일은 비교할 것도 아니기는 했다. 그래도 설교는 성경 본문 말씀을 바탕으로 풀어갈 수라도 있지만(때로는 이 때문에 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주보의 칼럼은 맨땅에 헤딩이었다. 주일이 끝나면 새로 시작되는 한 주간 내내 절박한 심정으로 TV의 무슨 프로를 보든, 어떤 책이나 신문을 읽든, 누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듣고 말하든 간에 글 쓸 꼬투리를 잡기 위해 머릿 속은 항상 분주했다. 덕분에 당시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한 번쯤은 그 흔한 이름 "지인"이라는 호칭으로 우리 교회 주보에 등장하고는 했다. 다행히도 주보 제작이 내 손에서 마무리되기에 주일 새벽까지 그 마감선을 연장해 가며 어떻게든 한 편을 완성하고는 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와 더욱더 유유자적해진 나로서는 절박감 비스므리 한 것도 찾기가 힘들어졌으니 글쓰기가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전, 설날쯤에 한국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여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물으셨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고. 다른 사람들에게 농담으로도 쉽게 꺼내지 못한 이야기였지만 어머니께는 장난처럼 말씀드렸다. 글이 쓰고 싶어서 글 쓰며 지내고 있다고. 마흔을 훌쩍 넘은 아들이 타지에서 특별한 직업도 없이 갑자기 집에서 글 쓰고 있다고 말씀드리면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얼마나 심난해하실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새 시간이 지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나 자신에게 조차 농담처럼 변해 있었기에 장난치듯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잘하고 있다고,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 거라고.
단순히 막내아들의 응석을 받아주신 어머니의 넉넉함 일 수도 있겠지만, 통화를 마치고 그리고 수 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잔잔한 음성의 울림이 멈추지 않는다. 근래에 내가 사는 것이 꿈꾸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꿈이라 하니 괜히 허황되고 거창하게 그려질 수도 있겠지만, 잠꼬대로 빙그레 웃음 짓게 하는 그냥 기분 좋고, 무슨 꿈인지 뚜렷이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평안하고, 편안한, 그렇게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저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짧은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그 이유를 찾은 것 같았다.
나는 정말 꿈을 꾸고 있었다. 단지 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꾸고 있었다. 깨어버리면 허망함만 남을 수도 있겠지만 깨지 않고 지금도 꾸고 있기에 괜찮다. 그리고 앞으로도 꿈꾸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노력해서 가질 수도 없고, 선택할 수도 없는 것이 가족이기에, 본인도 터무니없어하는 일까지도 응원해 주시는 좋은 부모님 아래서 자라 왔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만 했다.
산에 올랐다. 오래간만에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막판에는 심장이 몸 밖으로 뛰어나오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주말에는 일을 하곤 했지만 모처럼 일이 없어 수년 전부터 벼르던 엘에이 뒷산 Mt. Baldy에 올랐다. 말이 뒷산이지 해발 10,064 ft. 3068m 의 고봉이다. 남들은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하여 오른다던데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전날 생각나서 다음날 아침 별 준비 없이 츄리닝 바람으로 올랐다. 요 근래 이 동네 날씨가 화씨 90도까지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산 정상쯤에는 잘못 디디면 눈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다른 세상이었다. 중간에 길까지 잃어 꼬박 9시간이 걸려 산행을 마치니 요즘 뛰기는커녕 걸음조차 많이 걸을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온몸의 세포가 기억하게 해 주었다.
산 정상의 특별한 희열은 잘 모르겠다. 그냥 거의 그 봉우리가 눈 앞에 잡힐 때쯤, 그리고 내 정신이 아련해 갈 때쯤 참 오래간만에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나올 일들이 슬슬 많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어 그런지 묵묵히 오르던 산 정상쯤에서 느끼는 "나왔다"는 느낌이 특별하게 와 닿았다. 슬슬 하고 싶은 또 다른 일들이 생기고, 해야만 하는 일들도 주어지기 시작해서 유유자적 생활은 고이 접어둬야 할 시기가 왔다. 덕분에 내 평생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허리둘레와 몸무게와도 작별해야겠고.
유행어처럼 집 밖은 위험하다고들 하지만 그 부담감 때문에 피어오르는 긴장감이 오히려 가슴을 뛰게 한다. 새로운 일들에 대한 기대감이 적당히 몸을 흥분시킨다. 새로 꾸기 시작한 꿈들이 몸에 활기를 부어준다. 하지만 어떻게 세상 살아가는 것이 꿈꾸듯만 살 수 있을까? 현실의 문제들이 있는데 싶지만 이제는 그러한 일들마저도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한 좋은 바탕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괜한 근거 없는 자신감일까? 아니면 그저 철딱서니 없는 소리들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제는 꿈을 깨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어느 새 40이다. 한 달 반여의 여행을 떠나며 내 삶의 하프타임 휴식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휴식 후 시작되는 후반전이 휴식만큼이나 재미있으니 신기하다. 꿈을 꾸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던데 나이 듦에 대한 자기 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늙을 틈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틈이 없어 철이 들어야 하는데 철도 들어오고 있지 못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