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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랭크 Aug 19. 2024

[캔버스에 비친 내 모습] 일에 대한 자아의 투영

 미술학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연다. 수강생들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행사로 지인들을 초대하거나 외부인들에게 그림을 전시해보는 경험을 열어준다. 이번 전시 주제는 꽃으로 많은 수강생들이 그간 그려왔던 그림들이 벽에 걸린다. 나는 꽃을 그릴 계획은 없었기에 전시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주에는 새로 그릴 그림을 정했었다. 지난 여행에서 찍어뒀던 기차 안 풍경 사진을 그리려던 참이다.

일요일 자유시간에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려두고자 학원에 들렀다. 오늘 따라 다른 학생들은 없어 조용한 날이었다. 


그러다 문득 전시회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림을 그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한 해의 끝을 위함이다. 스스로에게 올 해 무엇을 했는가 물었을 때 시간의 흔적을 그림으로 증명하기 위한 목적이다. 여기에 전시한 경험을 더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었다. 그렇기에 그리고 싶은 꽃의 주제가 떠올랐으면 하던 마음은 있었다. 인구구조 그래프를 활용하여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었으나 꽃의 형식으로 담기지 않아 내려놨었다.


그런데 그 날은 문득 나비로 그래프를 표현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은 나비를 통해 나비는 꽃을 통해 살아가는 사실을  사람과 사회의 관계, 사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밑그림을 강사분께 전시에 참여할 의사를 전했다.


3차례의 수업을 통해 그림이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인구그래프는 여전히 어색했다. 주제로 배치했으나 그래프임을 알리면 나비가 되지 않고 그 반대면 의미가 전달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래프에서 다시 완전한 나비가 되셨네요? 사람들한테 의미가 잘 전달될까요?"


여러번 수정하며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내게 강사분이 얘기했다. 배경의 회색빛 꽃과 어울리지 않는 그래프의 모습으로 색상과 형태를 반복해서 고치던 참이다.


"미술은 아무래도 보여지는 예술이어서 아름다움이 완성되어있을 필요는 있어요."



 문득 예전에 일했던 회사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회사생활에서 자아의 투영 기회는 많지 않다. 회사를 선택할 때, 프로젝트를 선정할 때, 결과물을 확정할 때 정도 인 것 같다. 당시 이직하는 회사에 위 3가지를 일치시키는 기대를 갖고 입사한 적이 있다.


수개월에 걸쳐 기반을 다지는 작업, 과제와 방향을 전달하는 문서와 현황, 회사가 외부에 제시하는 기여를 생각했을 때 놓지 말아야 할 것들을 열심히 전달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아름다움은 매출과 이익이다. 애초에 회사의 주제, 사업 방향성은 매출을 위해 쉽게 바뀔 수 있다.  
내 접근은 자아의 투영이었으나 어리숙함으로 사업의 목표를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헤아리지 않은 결과였다. 이는 그 뒤에 꽤 귀중한 경험이 되었고 다음 회사에서도 사실임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일에 대한 자아의 투영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투영의 출발이 나보다는 조직이나 회사의 기여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여러번의 회고에도 그 자체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물론 그 뒤에도 여러번 시도하고 능숙하게 안착시키는데 실패했고 조금씩 발전했다.


 이번 전시의 나비(혹은 그래프)는 꽤나 이질적인 형체정도로 보일 것 같다. 그림으로써도 함의하는 바에 있어서도 전달은 실패할 듯 하다.하지만 사진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보다는 그 과정이 즐거웠다. 나의 인식이 투영된 것을 마음속이 아니라 밖에 실현시키는 것은 놀라운 기쁨을 선사한다.


앞으로도 그림과 일에 생각을 얹는 자세를 유지해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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