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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수첩 Mar 18. 2016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마세요

<명량> 김한민 감독, 순천의 이름으로 1

2014년 가장 뜨거웠던 도시 전남 순천. 정치, 문화 등 다방면에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구원파 유병언의 주검이 발견되었고, 지난 탈옥수 신창원의 검거와 맞물려 탈주범에게 약속의 땅이 되면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는 박근혜의 남자 이정현이 노무현의 남자 서갑원을 꺾고 26년 만에 보수정당의 깃발을 꽂으면서 파란을 일으키기도 한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제가 되었던 것은 순천 출신 김한민 감독이 연출한 영화 <명량>이다.

     
순천은 임진왜란 7년 동안 이순신 장군의 전라좌수군에 물자와 인력을 보급해 주는 중요한 장소 중에 하나였다. 김한민 감독은 역사적인 관점에서도 순천은 큰 의미와 자긍심이 있는 지방이라고 했다. 자신의 고향 순천에서 <명량>을 촬영하는 데에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

   
김한민 감독은 1999년 단편 영화 <그렇게 김순임은 강두식을 만났다>로 데뷔한 뒤, 2007년에는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을 통해 제28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한다. 순천고등학교 시절, 지역 학생들과 극단 활동을  했던 그는 당시 맘모스 극장에서 많은 영화를 보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극락도 살인 사건>은 80년대 그가 고등학교 시절에 순천에서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당시 순천에는 인근 도서 지역에서 유학 온 친구들이 많았는데 정치적, 사회적으로 아픈 상처를 갖고 있는 지역이라 흉흉한 소문들이 많았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미스터리 추리극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700만 관객을 돌파한 <최종병기 활>은 순천 조계산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으며, 그가 어린 시절 활터에서 느꼈던 활이 주는 당김과 과녁에 꽂히는 소리들이 주는 스릴을 잘 담아냈다. 영화 <핸드폰> 시사회 때는 배우들과 함께 직접 순천을 찾아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학창 시절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꿈을 키웠던 바로 그 극장에서.    

 
그는 영화만큼 야구도 좋아했는데 명절에는 가끔 후배들과 어울려 야구를 즐기기도 한다. 여전히 고향을 그리워하고 아끼는 마음에 순천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한참 어린 후배인 나에게도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지금은 순천지역이 고등학교 평준화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일명 '순고병'이 있었다. 순천고등학교를 보내기 위해서 재수를 많이 했고, 광양, 여수, 고흥, 구례, 완도 등 전남 전역에서 많은 학생들이 몰려왔다. 그만큼 인물도 많다.    


보통 순천고를 이야기할 때 현직 판검사가 56명에, 법조인과 파워엘리트 386 인사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70년-90년대 말까지를 순천고의 전성기로 본다) 학교라고 한다.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과 시공테크 박기성 회장 등이 경제계의 유명한 인물이다. 순천고 출신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계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순천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두드러지는 분야는 글재주가 뛰어난 ‘작가’들이다.   

 
순천 대대 일대를 배경으로 한 <무진기행>과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승옥 작가를 순천고의 대표적 작가로 꼽는다. 하지만 이전에 <후송>이라는 작품으로 1962년 사상계 신인상에 당선된 서정인 작가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서울대 (김승옥 불문과, 서정인 영문과) 선후배 사이기도 하다. 두 작가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9년, 순천고 교정에 서정인 김승옥 문학비를 세웠다. 그리고 순천 선암사 출생인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와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쓰는 정채봉 작가도 중요한 인물이다. 순천에는 김승옥, 정채봉의 문학관이 있고 조정래길을 만들어서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알리고 있다.

   
영화감독으로는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 <명량>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과 영화 <동승>의 영화생각 대표 주경중 감독, 영화 <박대박>의 양영철 감독이 대표적이다. 언론계에는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범우사> 윤형두 대표가 눈에 띄는 인물이다.


순천 호수공원에서 프리허그 행사를 진행중인 배우 손호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순천시 조례동에 살고, 순천고를 졸업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해태 손호준은 순천 사람일까. '허뻐'와 '긍께'를 연발하며 맛깔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하는 손호준의 고향은 광주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 순천시 명예 홍보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드라마 속의 순천 출신 캐릭터를 통해 순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도 커다란 행운이었다.  

   
순천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학교, 직장에서 자기소개를 하면 상대는 약속이나 한 듯 순천 와봤다며 고추장(고추장은 전북 순창)과 순천향대학교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당시 친구의 아버지가 뉴코아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자체만으로 여수, 광양보다 어깨를 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 외에도 그룹 에이트의 가수 이현,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윤시윤, 브라운아이드 걸스의 미료, B1A4의 공찬, 배우 최재원, 가수 추가열 등이 순천 출신 연예인들이다. 최근에는 <개그콘서트>의 개그맨 임종혁과 김승혜, <최군 TV>의 최군 (최우람), 황제성도 주목을 받고 있다.    

  
운동선수로는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성열, 이태양, 롯데 자이언츠의 정보명, 비운의 스타 강철민, 정성기, 왕년 현대 유니콘스의 우승을 이끈 '라이더조' 조용준이 순천 효천고 야구부 출신이다. 또한 유공 코끼리 축구팀의 윤정춘, 전남 드래곤즈의 임관식은 축구, 소년 장사 백승일은 씨름에서 이름을 날렸다. 여자 골프의 박결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등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베를린 올림픽 시상식에서 남승룡 (좌)과 손기정 (가운데)

  
그리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선발전 1위는 누구였을까. 손기정? 아니다. 바로 순천 출신 남승룡이다. 올림픽에 조선인 3명이 나가는 것을 꺼렸던 일본은 실력이 가장 뛰어났던 남승룡을 집중적으로 견제하고 탄압한다. 사람들은 베를린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은 기억해도 동메달리스트 남승룡은 대부분 모르고 있다. 그는 손기정이 금메달을 딴 것보다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다는 게 더 부러웠다고 했다.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 자랑 말라'했다.  

   
순천에 수많은 인물들이 있어도 현재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순천만이다. 어린 시절, 내 키보다 더 자란 갈대숲을 지나 미끼 없이 던져도 바늘을 무는 문절이를 잡고 석양을 보는 것보다 즐거운 건 없었다.   

  
여전히 내 고향은 순천이지만 그곳을 떠난 지 10여 년이 훨씬 넘어간다. 칠면초 넘어 와온 갯벌에는 참게와 문절이가 한 가득 이었다. 이제는 순천만 공원이 생기고, 국가정원이 들어섰다. 선암사, 낙안읍성을 거쳐 수많은 사람들이 순천을 찾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만의 놀이터를 뺏긴 것 같아 괜히 섭섭하기도 하다. 그래도 순천을 찾는 모든 이들이 여유와 즐거움을 찾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명량>을 보고 나서 김한민 감독의 이야기를 하려다 순천 홍보로 끝났구나!

서울 사람들은 또 웃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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