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라이벌전, 순천의 이름으로 2
순천의 봄은 광양에서 이른 소식을 전하는 매화와 여수의 바닷바람으로 피어난 동백과 함께 시작한다. 시간이 지난 가을은 새파란 갈댓잎들이 푸름을 벗어내고, 황금빛을 덧칠하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한참 동안 잡아둔다. 순천만과 국가정원을 비롯해 선암사와 낙안읍성까지. 순천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순천 사람도 모르는 순천 이야기를 소개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 냄새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더욱 진해져 가는 곳이 바로 순천이다.
순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공감하고,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을 담아내고 싶었다. '맞아, 그땐 그랬었지.', '아, 나도 그랬었는데'하며 지난 시간을 떠올릴 수 있는, 특히 순천 사람들에게는 보다 더 친절한 것들 말이다.
생태도시 순천, 다른 듯 닮아있는 여수와 광양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주인공 '해태'는 고향 순천이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면서, 갯벌이 넓게 펼쳐진 철새들의 보금자리라고 자랑을 한다. 곧바로 여수 여인은 여수공항을 내세우며 돌산대교와 갓김치로 반격한다.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순천을 소개할 때, 단 번에 못 알아들을 때면 '여수 위'라고 소개해본 것이 비단 혼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여수에는 산업단지가 있고, 광양에는 제철소가 있으며 순천에는 산업단지와 제철소에 다니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순천, 여수, 광양은 호남의 지역색으로 묶여있는 반면에, 보이지 않는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특색 있는 문화권이다.
서울에서는 편 가르기를 할 때 '데덴찌'하며 구호를 외친다. 순천, 여수, 광양은 지리적으로 매우 근접해 있으나, 편 가르기 구호조차 전혀 다른 것이 신기하다. 순천은 '우라우무때 때때로 때', 여수는 '모랄 모랄 센치', 광양은 '오라이 모라이 땡'이라고 한다. 각 지역마다 이렇게 복잡했던 구호를 서울에서는 '데덴찌'라는 단 세 글자로 해결해버렸다. 당연히 사투리도 비슷한 듯 달랐다.
순천에 '청소골 계곡'(어린 시절, 순천교도소 근처 분교에서 학교별 야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이 있다면 광양에는 '옥룡 계곡'이 있고, 순천에 '국제정원박람회'가 있다면, 여수에는 '해양엑스포'가 있다. 이렇게 '우리 동네에는 뭐가 있다 없다'를 가지고 한참 다툼을 하다가도, 타이거즈의 야구 경기나 드래곤즈의 축구 경기에는 모두 하나가 된다.
광양에 축구 전용구장이 생기고, '전남 드래곤즈'가 창단했을 초창기만 하더라도 순천 팔마체육관과 여수 진남체육관에서도 경기를 했었다. 농구 선수 에릭 이버츠가 활약했던 '골드뱅크팀'이 여수를 홈으로 자리 잡았을 때는 꽤 많은 농구팬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잠실야구장을 홈구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노란 막대 풍선의 '해태 (기아) 타이거즈'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 순천, 여수, 광양 사람들 모두 잠자리에 들 때는 결국 '민병대' 아저씨의 별밤을 들었었지. <야심만만> 같은 SBS 예능 프로그램을 기다리고 있으면, 뜬금없이 지역방송 시골 다큐멘터리가 나오기도 했고.
90년대는 중앙동, 2000년대는 조례동
순천에서 '중앙동'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시절이 있었다. 한마디로 '순천 시내'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중앙동으로 모여들었다. 푸른색에 하얀 줄무늬가 있었던 71번, 77번, 75번, 26번 버스를 타고 가다 '서광서점'앞 정류장, 혹은 샤킬 오닐 벌집 농구화 포스터가 잔뜩 붙어있는 '리복'앞 정류장에서 내리면 시내가 시작된다.
'황금백화점'을 중심으로, '일광문고', '화월당 제과점'을 끼고 있는 구거리와 일명 '나이키' 사거리가 모두의 약속 장소였다. 90년대 후반에 잠깐 있었던 '콜라텍' 근처, 다리 너머에는 '잠뱅이', '옹골진'과 같은 의류 브랜드 가게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규모가 상당했던 '맘모스 극장'과 '시네마 극장', 그림으로 극장 간판을 그렸던 '중앙 극장'과 '국도 극장', 동시 상영을 해주었던 '코스모스 극장'등 문화시설이 집중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항상 많았다. 그리고 아랫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어머니들의 발걸음 또한 바빠졌다. 대학생들은 '순대' (순천대) 앞으로 많이 몰렸고, 극히 드물었지만 순천역 앞에서 노는 친구들도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순천의 중심지는 중앙지구에서 연향지구로 빠르게 이동한다. 중앙지구가 중앙동, 매곡동, 장천동 일대라면 연향지구는 연향동, 조례동, 금당동 즈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연향지구에 '동부', '부영', '대우', '현대', 2동만 있었던 '우미' 아파트 등에 실입주자들이 늘고 근처에 학교가 많이 생겨남에 따라 문화적 인프라도 동반 성장했다.
극장은 끝내 들어오지 않았으나, 수영장이 있었던 (당시에는 팔마체육관 수영장이 유일) '뉴코아 백화점'과 '동부상설시장'이 버티고 있었고, 연향동 '미니스톱'사거리를 중심으로 수많은 의류 가게와 상점들이 들어섰다. 고릴라상이 붙어 있는 '오병원'과 '성가롤로 병원', '순천병원'등 의료기관은 중심지 이동을 한층 더 빠르게 했다. 건물을 짓는 도중 부도를 맞은 '기산 코아'는 '조은 프라자'로 변화를 시도했고, 최근에는 '에코그라드 호텔'이 올라갔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연향 지구의 약속 장소는 초등학교 동창 집으로 유명했던 '그린피아'오락실과 역시 초등학교 동창 용택이 집으로 유명했던 '롯데리아' (동생 조용태는 순천 출신으로, 수원 삼성을 거쳐 광주 FC에서 활약 중이다) 정도였다.
현재는 조례호수공원을 중심으로 카페와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겼고, 상징적인 '스타벅스'와 '법원'이 들어섰다는 것만으로도 대세 지역임을 증명하고 있다. 혹자는 예전 '로마 나이트', '아라비안 나이트' 등을 내세워 연향지구를 자랑하기도 한다.
달라진 순천의 랜드 마크, '봉화산' vs. '순천만'
지금 누군가 순천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가 어딘지 묻는다면 대부분 '순천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중, 고등학생들은 물론이고 20대 친구들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30, 40대의 순천 사람들도 '순천만'이라고 대답할까라고 묻는다면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했고, 갈대밭 사이로 기가 막히게 떨어지는 일몰을 볼 수 있는 순천만이 상징적인 면에서 단연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순천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봉화산과 죽도봉, 그리고 동천도 순천만에 모자람이 없다. 학창 시절, 한참 유행했었던 호연지기와 소풍 및 연례행사가 있으면 어김없이 오르는 곳이 봉화산이었고, 내려오면서 한 번 쉬는 곳은 죽도봉이었다.
1990년대 중, 후반에는 봉화산의 길이 정비되어있지 않았고, 공사 중이라 거대한 채석장을 방불케 했다. 돌가루를 삼켜가며 봉화대가 있는 정상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가끔 순천왜성이나 낙안읍성, 혹은 풍덕동 뒤 동산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지만 0순위는 무조건 봉화산과 죽도봉이었다. '똥천'이라는 오명을 들었던 동천도 수로사업과 환경미화 작업으로 순천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더불어 순천은 '기적의 도서관' 1호점이 들어선 곳이며, '드라마오픈세트장'은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배경이 됐다. 하정우 감독, 주연의 <허삼관 매혈기>, 유하 감독의 <강남 1970> 등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를 촬영하기도 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추억이 돋는다. 오랜 생각을 글로 옮겼지만 그 시절의 감성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다. 여수, 광양과의 지리적 라이벌. 중앙지구에서 연향지구로 넘어가는 지역적 라이벌. 순천을 대표하는 상징성의 라이벌 외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이해찬의 교육 정책 이전, 고등학교 재수생들이 많았을 때의 순천은 학원가 전성시대였다. 지상 4층과 지하 1층에 매점까지 있었던 '대성학원'과 '종로학원'이 순천 학생들을 양분했고, '한림학원'과 '상아탑학원'도 나름 선전했다. 중앙지구에서 연향지구로 번화가가 옮겨왔듯이 '안효승 입시학원'등 과외형 학원들이 연향동, 금당동에 생겨나면서 사교육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예식장은 '궁전'과 '행복'. 건달마저 '중앙파'와 '시민파'로 나뉜다.
순천은 뛰어난 인물과 아름다운 볼거리가 넘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얼마나 기억하고, 공감을 했는지는 차이가 있어도 지금 떠올리는 것이 '순천'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바람 좋은 날, 어디로 떠날지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망설이지 말고 순천행 기차 티켓을 끊을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