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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르바 May 24. 2016

독립선언문 #1. 독립선언

1988 자취생활기록지

기나긴 목마름이었다.

오랜시간 혼자 사는 꿈을 꾸었다.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면 삶의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부모님에게 의지해서 나간다면 진정한 독립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제법 긴 시간 동안 바람으로만 간직해왔다. 


얼마 전, 부모님에게 독립선언을 했다. 

엄마는 남들은 집에 같이 살면서 집 살 돈을 모은다는데 너는 없는 돈도 쥐어짜내서 나가느냐, 집이 싫으냐는 둥 핀잔을 줬다. 아빠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할머니는 서운한 지 눈물을 보이셨다.


지금이 적절한 시기가 아닌 지 고민이 됐다.

평생 머무를만한 직장을 다니는 상태도 아니고, 그나마 벌고있는 돈의 절반 이상을 교육비로 충당하는 와중에 약간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연초에 재미로 본 무료운세에서는 올해 독립하는 일은 가급적 자제하라고 쓰여있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한 번 돌아선 마음이 쉽게 바뀌랴. 

나는 결국 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 계획은 친구와 함께 서울 변두리에 함께 살 공간을 구하는 것이었다. 친구와 함께 살며 영상을 함께 찍을 작업실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서로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싶다는 친구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려 그 계획은 당분간 접어두기로 했다다. 대신 생활비를 아낄 수 있는 직장 인근에 방을 알아보는 것으로 첫 독립을 하기로 결정했다. 


혼자 방을 알아보는 일은 처음이라 쉽지 않았고 그만큼 신중했다. 

부동산 거래 어플을 이용해 방을 수시로 검색하고, 주말에는 부동산엘 다녔다. 주변에 자취경험이 있는 친구와 현재 자취를 하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내가 원했던 방은 주변이 조용하고 교통이 편리한 대신 층에 관계없이 널찍한 방이었다. 집에 있던 방은 이불과 책상, 책장, 옷걸이만으로 꽉 들어 찬 방이었는데 답답한 기분이 자주 들어서인지 이번에 구하는 방은 이보다 여유 있기를 바랐다. 


일주일정도 어플을 보고 있자니 주변 지역의 시세를 이해하게 됐다. 

교통편, 생활편의시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있는 시세에 대한 감이 생겨났고, 원하는 지역을 차츰 줄여나갈 수 있었다. 또 부동산을 알아보다 보니 어플의 방을 올리는 부동산 주인들이 젊으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전세, 매매와 다르게 원룸은 수시로 변동이 생기다 보니 원룸은 어플을 통해 보는 것이 나아 보였다. 


반면, 나이를 많이 먹은 부동산 사장님들은 장부처럼 보이는 책자 하나를 들고 다니며 이곳저곳 보여주었다. 집주인들과의 오랜 관계 형성을 통해 알고 있으신 듯 한 방을 보여주었는데, 나름 원칙이 있는지 처음에 가격이 저렴한 대신 꾀죄죄한 방을 보여주고는 맨 마지막에 가서는 언제 빠질지 모르는 제일 좋은 방이라며 처음 방보다는 좀 비싸지만 그래도 고민이 될 법한 방을 보여주곤 했다. 


그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발품 팔기를 약 2주를 지속했더니 후보군이 생겼다. 

반지하의 1.5룸, 그리고 1층에 큼지막한 원룸. 둘을 두고 고민하던 중 어플에서 내가 딱 원하는 조건의 월세방이 떴다. 허위매물이 아닐까 반신반의하면서 바로 연락을 취했다.


"네 00 부동산입니다." 젊은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초짜가 아닌 척 평소보다 낮은 톤으로 통화를 시도했다. "00에서 방을 보고 연락드립니다. 등록번호를 말씀드리면 될까요." 다음날 저녁 퇴근길에 방을 보기로 했다. 가보니 이 가격에 내놓은 집이 맞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로 매우 흡족스러웠다. 주방 및 세탁 기능을 하는 베란다가 좁았지만 활용률을 따지니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고, 이 모든 걸 희석시킬 만큼 방이 널찍하였다. 더군다나 4층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아 알게 된 월세방 체크리스트를 확인해보니 문제 될 것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한 번 더 고민을 할 심산으로 다음날 연락을 주겠다며 그 집을 나왔다. 다음날부터 부동산 사장은 계약을 할 것인지 지속적으로 문자를 넣었다. 나에게 압력을 넣어 빨리 이 일을 끝마치려는 심산이겠거니 싶었다.

그 방법은 아주 적절했다. 심리적으로 쫓겼다. 다른 누군가가 이 방을 얻는다면 나는 무척이나 배가 아플거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전화를 걸어 방을 계약됐다. 

약간 고민의 시간이 부족했지만 어차피 끝나지 않을 고민이라고 생각했다. 가계약금을 넣고 5월 초 입주할 테니, 그때 정식으로 계약을 하겠다고 전했다. 


오랜시간 염원했던 일을 저지른 순간이었다. 

약간의 설렘이 가슴팍을 스쳐 지나갔다. 이윽고 이제 가족과 완전히 떨어져 나온다는 생각에 서글퍼졌지만, 어차피 겪어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말아버렸다.


그렇게 첫 독립선언이 실현되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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