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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르바 May 24. 2016

독립선언문 #2. 공간의 장소화

1988 자취생활기록지

가계약을 맺고 한 주가 흘러 비로소 정식 입주계약을 했다.

그 동안 인터넷을 검색하며 확인할 것이 많았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등기부등본은 무엇이며 계약 전 확인해야 할 사항, 계약서에 쓰인 내용 확인 등 따질 일이 많아졌다. 꼼꼼히 체크해야 하는 사항이라니 공부하듯이 읽어보았다. 본질적으로는 잘 몰라도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집주인 노부부와 부동산업자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은 입주 전 날 첫대면을 갖게되었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박카스 한 병을 건넸다. 그 상황이 익숙한 듯한 인상이었다. 실제로 그 공간에서 어색한 기운을 느끼는 건 나뿐이었다. 


어색한 기운에 눌려 꼬치꼬치 캐물으려던 질문들은 자연 소멸되기 시작했다. 오히려 괜한 짓으로 첫인상을 망치느니 숙이고 들어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이 변하고 있었다. 질문은 차치한 채 계약서를 훑어보았다. 인터넷에 보던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고개를 들고 집주인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렸다.


집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말투와 인상을 보니 생활을 별로 개의치 않겠다는 눈치였다. 통장에 월세만 꼬박꼬박 넣어줄 수 있는 성실 납부자라면 생활이 어떠한들 무슨 상관이겠냐는 투였다.


부동산 업자는 약간의 설명을 보탠 뒤 별로 어려운 일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계약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처음으로 돈이 걸린 계약서에 서명을 하자니 머쓱했다. 다시 한 번 방을 보러 올라갔다. 방을 보니 약간 흥분됐다. 주인없던 공간이 내 방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밖에 내리는 비가 웬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잠시 돌아본 뒤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부터 입주를 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방 안 공간의 쓰임새를 분리하고, 쓰임새에 따라 필요한 물품을 정리했다. 방 안 공간은 잠을 청할 침실, 공부 겸 식사가 가능한 곳, 옷을 둘 곳, 냉장고와 밥솥등을 둘 주방보조 공간으로 분리했다. 필요한 물품과 공급처를 적었다.


문제는 주방이었다. 라면을 끓일 때를 제외하곤 익숙하지 않은 장소인지라 무엇이 필요한 지 어렴풋이 그려질 뿐이었다. 나의 주방이용패턴과 이용률을 따져 많은 식기자재를 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물품을 구매할 일은 많지 않게 했다. 그나마 필요한 물품을 전에 한 번 쓱 둘러 본 다이소에 가면 될 일이었다.

각 종 사진과 영상을 보며 생긴 환상은 당분간 현실에 타협하고 차근차근 이뤄나가기로 결정했다.


3일 뒤 임시공휴일까지 4일 간의 여유가 생겼다. 일기예보도 좋았다. 이사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제 이사할 짐만 싸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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