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표르바 May 24. 2016

독립선언문 #4. 아비정전

1988 자취생활기록지

스무살 경에 처음 아비정전을 보았다. 지금이 시간이 많이 지나 줄거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딱 한 장면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홍콩느와르 시대를 즐겼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장국영의 도취댄스 장면이다.


장국영이 흰 난닝구에 빤스만 입은 채 자유를 만끽하는 표정으로 춤사위를 벌이는 바로 그 장면은 어찌나 매력적이었던지 한 때 여러 방송에서 장면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그 장면이 오랫동안 내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은 이유는 그가 보여준 행위가 남자들 다수의 공감을 심어줄만한 행위였기 때문아닐까. 고독한 남자의 남들은 모르는 도취. 그 장면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남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래서 나는 거울을 볼 때 가끔씩 장국영이 되어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대부분의 생활을 집단 내 속해서 보내야만한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속에 속해 있는 시간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사회적 관계에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이유는 사람들 간의 벌어지는 행위와 그 행위를 이행하는 데 지켜야하는 규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규율은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도 있고, 도덕적 이념을 통해 형성되어 있는 것도 있고, 인간 본성에 의해 내재된 것도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자유에 대한 욕구가 강렬해진 현대 도시 사회로 갈수록 더욱 그러한 에너지 소모가 많다. 시골에 살던 사람이 서울에 가서 사람만 보고도 힘을 다 빼앗기는 모습까지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억측일까. 도시사회에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도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이토록 다양한 규율로 복잡해져가는 사회 속에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무한히 솟아나는 에너지를 갖지 않았기 때문에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한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이다. 재충전의 의미로 혼자 여행을 떠난다거나, 연락을 끊은 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그렇다. 혼자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내면에 모습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사회와의 단절이 이뤄짐으로써 자연스럽게 재충전 할 기회를 얻는다. 또는 내면에서 발생한 욕구를 해소하고자 하는 행위를 할 수도 있다. 취미가 그렇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행위도 그 중 하나다.   


독립을 하게되서 좋은 점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머무를 때 집에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좋았지만, 나는 또 다른 사회적 관계에 얽매여야 했다. 내가 부모의 아들이자 장남으로써, 할머니의 손주로써, 동생의 오빠로써, 그리고 가족의 일원으로써 벌여야 하는 행위들이 존재했다. 바깥 사회와는 다르다 하더라도 가족이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형성된 최소한의 규율을 따라야 했는데, 집에 들어서면 집에 왔다는 인사를 해야하고, 가족들이 묻는 질문에 맞추어 대답을 해야하고, 화장실을 사용할 때는 문을 단속해야했다. 때로는 내가 어느 야심한 시간에 무엇을 먹든 지 간에 가족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야만 했는데, 가령 사과를 먹으려는데 밤에 사과는 독사과(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증명된 그 사과)이니 먹지말아야 하고, 자기 전에 라면을 먹으면 얼굴이 붓는다든가 인스턴트 음식이니 자제하라는 등의 내용들이다. 


이 암묵적으로 집안에 흐르고 있는 규율들이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집에서 벗어나보니 무의식적으로 지켜왔던 행위들이 하나둘 느껴지기 시작하며, 그로인해 에너지를 사용했었던 게 느껴진다.


현재 나는 눈치를 볼 필요없는 완전한 탈피를 경험하고 있다. 그 예로, 나는 독립 한 후 화장실에 속옷을 들고가지 않는다. 화장실 문을 나설 때면 나는 항상 전라의 모습이다. 화장실에 샤워를 하러 들어갔을 때도 그렇다. 나는 화장실 안에서 아주 큰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를 따라부르거나 때에 따라 춤을 추기도한다. 샤워를 하고 전라의 상태로 한동안 돌아다니고 있노라면 내가 혼자있는 이 공간이 마치 완전한 자유를 얻은 나만의 내면세계라는 생각이 든다. 


혼자사는 일이 쉽지않다고 한다. 너무 자유로우니 어떻게 감내해야 할 지 몰라서 그런 것 같다. 아니면 혼자 삶으로써 급속충전이 되니 심심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혼자사는 공간은 내면까지 발가벗겨진 전라의 내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날 것 그대로의 내 모습.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는 순간, 진짜 아비(장국영)의 기분을 이해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싶다.



작가의 이전글 독립선언문 #3. 삶의 현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