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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의 나라 미국에선 왜 아직도 수표가 많이 쓰일까?

by delight

결제 시장 판세는다양한 출신 성분의 다양한 기업들이 뛰어든 구도가 된지 오래다. 최근에는 새로운 결제 플랫폼으로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나타샤 드 테란, 고트프리트 라이브란트가 쓴 책 '결제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를 특정 결제 방식이 글로벌 시장에서 대세로 자리를 잡기는 만만치 않다. 나라마다 지배적인 결제 방식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대거 등장한 미국의 경우 여전히 수표가 강력한 영형력을 발휘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카드를 발명하고 페이팔과 애플페이를 탄생사키고,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프로젝트 리브라를 꿈꿨던 나라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결제 수단이 수표라는 점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가장 오래된 결제 수단 중 하인 수표는 쉽게 훼손되고 다루기 번거로우며, 처리 속도도 느리다. 또 제한된 시
간 동안에만 유효하다. 수표는 현금과 동일한 단점이 있지만 신속성, 확실성, 익명성, 보편성 같은 현금의 장점은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카드를 사용하면 훨씬 간단하게 결제할 수 있는 계산대에서도 여전히 수표를 쓰고 있다. 그뿐 아니라 매월 들어오는 청구서 등의 대금 결제를 위해 대부분의 나라가 계좌이체를 사용하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수표를 통해 결제한다. 미국인들은 매년 럇 150억장의 수표를 쓴다. 모든 미국인이 매주 1장의 수표를 쓰는 셈이다.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수표의 75%가 미국에서 발행된다. 수표 사용에 있어서는 미국에 견줄 나라가 없을 정도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의 결제 방식은 편익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결제 방식을 사용할지는 그 결제 방식으로 얻는 편익에서 해당 방식의 단점이나 비용을 뺀 값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수요에도 장점이 있긴 하다. 수표가 처리되기까지는 대개 며칠이 걸리고, 수표 처리 기간에는 계좌에서 돈이 빠져 나가지 않는다. 게다가 수표를 우편으로 보내거나 수표 수취인이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수표를 현금화하면 좀더 오랫동안 돈을 쥐고 있을 수 있다. 수표 사용이 쉬워지고 처리 비용도 저렴해졌다. 미국에서는 2004년부터 수표를 받는 은행들이 수표를 스캔해서 수표 발행 은행에 해당 이미지를 전자적으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변화만으로는 미국에서만 유독 수표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그 외 다른 나라에서는 인기가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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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결제 방식이 나라마다 명확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현금 사용률이 여전히 높은 반면 프랑스, 베네룩스 3국, 북유럽 같은 인접국에서는 현금 사용률이 월등이 낮다. 독일 사람들은 수도 회사나 전기 회사, 통신 회사 같은 곳에 자신의 은행 계좌에서 매달 사용 요금을 인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자동 이체 방식도 좋아한다. 반면 스위스는 자동 이체를 선호하지 않는 대표적인 국가다. 이처럼 각 나라가 선호하는 결제 방식의 조합은 다르다.

결제는 기과 경제적인 논리만으로 설명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


사람들이 결제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경제학자들과 연구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범죄율 같은 설명 변수를 이용해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결제 방식을 보여주는 모델을 구축하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런 변수들은 우리가 특정한 결제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신 연구자들은 저조한 카드 사용률이 카드를 받는 상점 비율이 낮게 나타나는 현상과 관련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여전히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를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요가 다른 결제 수단 보다 좀더 우수해서 미국인들이 수표를 선호하는 것이라면 똑같은 결제 수단이 존재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왜 수표가 널리 사용되지 않는 것일까? 이는 우리의 결제 뒤에 숨어 있는 관습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우리는 결제할 때마다 결제수단을 선택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한번 자리를 잡은 결제 방식은 강력한 관성의 법칙을 갖게 된다. 더 좋은 기술이 나왔다고 해도 과거 결제 방식을 흔들기가 만만치 않다.


어떤 결제 수단을 받아들일지는 관례와 관습에 따라 결정된다. 결제에 영향을 미치는 관례와 관습에는 문화적 선호처럼 측정이 어려운 소프트 요인도 있고 얼마나 많은 상점 주인이 카드를 읽을 수 있는 단말기를 갖고 있는가와 같이 측정 가능한 하드 요인도 있다. 두 가지 모두 바뀌기는 어렵다. 관습을 변화시키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그리고 미국인들이 그토록 수표를 많이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결제의 가장 중요한 두 요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유산(레거시)와 네트워크다. 각 개인이 특정 결제 수단을 선택해서 얻을 수 있는 효용은 해당 방식을 택하는 사용자가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달라진다. 카드의 가치는 그 카드를 얼마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가에 딸려 있다. 미국에서 수표가 유용한 이유는 많은 사람이 수표를 받고 수표를 관리하는 법적 제도가 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그것이 미국 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결제 네트워크에 대해 가장 먼저 알아둬야할 것은 초기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결제 네트워크가 살아남으려면 특정한 임계점을 넘어서야 하지만, 일단 구축되고 나면 엄청난 가치를 지나게 된다.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네트워크는 기술 혁신 조차도 이겨낼 수 있다. 물론 기술 혁신이 시작될 초반에는 기존의 네트워크들이 뒤쳐진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들은 얼마든지 앞서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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