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포인트 (3) 급할 땐 '우선순위'를 세우자
2회 차 정도 연재하고 말았던 컴퍼니 포인트를 다시 시작한다. 사유는 근 2년 동안 회사와 사이드의 일이 내 일상의 90% 였기에 이를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내 생활에도 계속해서 좋은 자세를 가지기 위함이다. 컴퍼니 포인트는 8년 차 비개발 직군 직장인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후 작성하며 추후의 글과 과거의 글이 번복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안내하며 시작해본다.
오늘의 포인트는 '우선순위'다. 초년생 때 우선순위가 중요하다고 하면 '그런 건 리더들이 세워줘야 하는 것 아니야?'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흐르고 흘러 허리 정도의 역할을 해야 하는 구성원이 되었고 PM과 같이 업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먼저 해야 하는 것'임을 인지하게 됐다. 그 이유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점차 해내야 할 일은 늘어나고 운영 업무가 기본적으로 베이스가 되는 일을 하게 되면 어느 순간 업무의 양이 몰리게 된다. 그렇다 보니 만약 내가 10개, 20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한다면 어느 순간 몇 개의 프로젝트는 같은 속도감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그렇게 프로젝트를 지속하다 보면 이게 A 프로젝트의 a 업무가 중요한지, B 프로젝트의 d 업무가 중요한지 혼동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물론 물리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쏟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인적 자산과 물적 자산은 한없이 유한하다는 것을. 모든 일을 다 해내어 슈퍼맨이 될 수도 있지만 매일매일 슈퍼맨이 되기엔 우린 너무나 작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들이닥치는 일은 태산 같고 나는 저녁 약속에 가야 하는데 하며 발을 동동 굴러본 경험이 있다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 바로 감각을 차단하고 새로운 창을 여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싶을 수 있지만 문장 그대로다.
만약 책상 앞에 앉아 진땀을 흘리며 있었다면 손을 아주 깨끗하게 씻는다든지 혹은 재택 중이라면 잠시 분리수거를 하고 와도 되겠다. 머릿속에 잔뜩 쌓인 생각 때문에 '바쁜 와중에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을 수 있지만 더 큰 해냄을 위한 아주 작은 투자라고 생각하자. 쌓인 생각 중 30%는 단순 불안으로 이 불안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감각을 차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때 침대나 소파에 눕거나 누군가에게 힘듦을 토로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지만 그 시간은 오히려 마음의 부채감과 긴박함을 더 증폭시킬 뿐이라 크게 추천하고 싶은 감각 차단 방법은 아니다. 그리고 토로가 습관이 되면 혹여 주변인에게 부정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에 유의해야 한다.
이렇게 과열된 상황을 조금 해소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아 새로운 창을 연다. 그리고 그 창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야 할 일을 최대한 상세하게 마구 적는다. 이때 꼭 적어야 할 것은 (1) 누구에게 (2) 무엇을 (3) 언제까지 줘야 하는가 인데 보통 과열은 이 3개가 불분명하거나 이 3개 중 하나가 극심히 어려울 때 발생하므로 애매한 게 있다면 체크해놓는다.
그리고 이 중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을 먼저 고르고, 그다음 중요한 것과 중요치 않은 것을 떠올려본다. 보통 중요한 것은 어려운 것과 교집합이 되어 보일 텐데 그럼 '왜 어려운지'를 빠르게 해소하는 게 먼저다.
왜에 대해 파악했다면 이제 해소의 단계다. 생각보다 정답은 쉬울 수 있다.
나의 루틴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3개의 비누 중 하나를 골라 손을 씻고 책상 앞에 둔 저렴한 향수를 머리끝에 뿌리는 것이다. 비누는 매번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하며 기분을 전환하려는 목적이고 저렴한 향수를 뿌리는 건 아주 강렬하게 향이 묻어났다가 금세 휘발되기 때문인데 너무 오랫동안 향수 냄새를 맡으며 집중하는 건 또 어려운 일이니 이 정도가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아주 가끔은 이렇게도 차단이 되지 않으면 키보드를 바꾸기도 하는데 타각 타각 타건감이 좋은 키보드와 조금 부드러운 소리가 나는 키보드를 바꿔가며 사용하곤 한다.
그리고 할 일들을 적어두는 노션을 열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나간다. 그 와중에도 각종 메신저와 전화, 메일에서 나를 찾는 소리들이 들리지만 일단 적어내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금세 10줄이 넘는 업무들을 적어낸다. 이후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까지가 확인되면 대략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부분들에 먼저 양해를 구한다. 그다음에 바로 업무를 재개하는 편이다.
우선순위는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상대방에게는 1순위의 일이 내겐 5순위일 수 있는 상황이라 조금 더 일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양해를 먼저 구하려고 노력한다. 이 사람과 이번 프로젝트만 진행하고 영원히 안 볼 사이는 아니니 말이다. 그다음에 어려운 일을 한 두어 개 끝내 놓고는 약간의 힘듦을 편한 사람들에게 표출한다. 그러며 중요하진 않지만 시급한 업무들을 (그리고 보통 이런 업무는 굉장히 쉽고 누구나 빠르게 할 수 있는 업무다) 이어나가면 해야 할 일 리스트에는 5-6개 정도의 다음에 해도 되는 일이 남는다. 이게 내가 감각을 차단하고 새로운 창을 여는 방법이다.
미룬 업무는 데드라인 하루 전까지 마감하여 전달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내게도 좋기 때문에 이 할 일 리스트의 양과 데드라인은 개인의 업무 속도와 편차에 맞추어 세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한 야근의 굴레에 빠질 수 있으니 가장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무한히 리소스를 투입하여 '다음번엔 이러지 말아야지'를 되새기는 일도 부지기수지만 가능하면 롱런하는 직장생활을 위해 이 습관을 유지해가 보려 노력한다. 그런 의미로 오늘의 포인트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