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실패하는 이유
늘 다이어트를 한다. 아니 늘 다이어트를 한다고 말한다. 더 정확히는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싶어서 3년 전에는 ‘왜’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지 글도 썼다. 솔직한 ‘나’를 마주하면 다이어트에 성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이유’는 그대로 남아 있고, 다이어트가 되지 않은 ‘몸’도 그대로 남아 있다. 만약 지금 백지를 꺼내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이유를 적어 보라면 3년 전과 똑같은 이유를 댈 것이라는 데에 너무 놀랐다. 나는 3년 전 나의 몸이 원하는 신호를 읽어 주고도 3년 간 매일 그 신호를 무시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사실 글을 써 놓고 잊었다. 어떤 결심은 잘 잊힌다는 사실을 또 나는 또 잊고 지냈다. 매일 내가 왜 살을 빼고 싶은지 기억하도록 나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나에게 학습시켜야 잊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3년 전 기록을 꺼내 왔다. 3년 전 나의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소중히 작성했던 기록을 나에게 잘 가르쳐 주고 싶어서.
거울을 봤을 때 나의 비죽이는 살들이 너무 보기가 싫다. 언제부터인가 브래지어 위아래로 살들이 튀어나온다. 청바지를 입으면 똥배가 두둑 튀어나온다. 어깨 위로 솟은 승모근 때문에 어깨에 가방끈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팔뚝에 두둑이 붙은 살 덕에 넓은 어깨가 더 넓어 보인다. 탄력 없는 살들이 덕지덕지 붙은 허벅지는 말해 무엇할까.
어떤 옷을 입어도 살들이 비죽이며 나오지 않는 몸. 내가 원하는 몸이다. 어떤 옷을 입더라도 스트레스받지 않는 몸을 원한다. 좋아하는 투피스 H라인 치마를 입고도 배에 힘을 안 줄 수 있는 그런 몸이면 좋겠다.
나는 체형이 콤플렉스인 사람이다. 160cm 키에 비율이 좋지 않다. 얼굴은 크고 다리가 짧다. 게다가 어깨도 넓다. 이런 몸을 가진 나는 살이 찌면 상체는 더 부각되어 보이고 다리는 더 짧아 보인다. 살이 조금만 쪄도 아주 많이 쪄보이는 억울한 몸을 가졌다. 다리가 짧아 바지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몸이 이래서 옷 선택에 늘 애를 먹는다. 나 스스로 내가 제일 예뻐 보인다 생각할 때는 몸에 잘 맞는 상의 블라우스를 입고, H라인의 스커트를 입었을 때다. 살이 찌면 울퉁불퉁하게 밖으로 다 드러나는 옷들이다. 가장 피해야 할 옷은 덩치를 더 커 보이게 만드는 루주핏 옷들이다. 살을 가리려고 루주핏을 입는 순간 단점은 적나라하게 부각된다.
내가 예뻐 보이는 옷을 스트레스 없이 입고 싶다. 매일 아침 옷장 앞에서 ‘이 옷은 배 나와 보이지.’ , ‘이 옷은 어깨가 넓어 보여.’, ‘이 옷은 허벅지가 너무 부각되네.’라며 아침마다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생각에서 멀어지고 싶다. 스트레스 없이 옷을 고르며 나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싶다.
나는 확실히 내 몸에 적합한 무게일 때와 그렇지 않은 몸무게일 때, 몸의 움직임이 다르다. 내가 활력 있게 활동하기 좋은 몸무게는 53kg이다. 그 이상이 되면 몸이 늘어지고 허리가 아파오고 움직이기 싫어진다. 누워있는 게 좋고 배에도 힘이 없어 늘 척추가 굽은 자세가 된다. 임신 전에는 53kg 내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때 나는 참 활력적인 사람이었다. 몸이 아프다는 말도 적었다.
아이를 임신하고서 출산 뒤에 체중계의 숫자들이 매일매일 갱신되고 앞자리가 6이 되는 날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몸은 무겁고 움직이기는 싫은데 다이어트는 해야겠고 몸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쌓이면서 마음이 날카로워졌다. 남편이 평소에 하는 장난스러운 말도 내 몸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 때문에 고깝게 듣고 화를 내고 서운하다고 운 적도 많았다. 이러고 보니 몸의 숫자는 활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나의 정신까지 좀 먹었다.
나에게 에너지가 넘치고 활력 있는 사람은 체력이 좋고 마음에 여유가 많은 사람이다.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나의 몸이 체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반대로 몸을 건강하게 쓰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3년 전 이 글을 쓰고서 나는 ‘아프다’라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안 아픈 곳이 어디야?”
라며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물어본 적이 있는데, 대답할 말이 없어 입을 닫았다. 다리는 늘 붓고, 허리 통증은 삶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손목은 시큰거려 엎드려하는 운동을 못하고 있다.
나의 건강이 왜 이토록 무너졌나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내 몸에 무리를 줄 만큼 살이 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체지방이 이미 위험한 경계선을 넘었다. 몸이 아프다 신호를 보내는 건 몸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내 몸이 살을 빼기를 원한다. 더 이상은 못 견디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제 그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이다.
아이가 5살, 이제 6살이 된다. 걷는 방법을 잊었나 싶게 뛰어다니는 아들을 보며, 아들과 오래도록 행복하려면 내가 60이 되어서도, 70이 되어서도 건강하게 걸어 다닐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 남편과 아들이라는 가족으로 확장되고서는 나의 몸의 상태는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란 것을 가족이란 테두리에서 깨닫고 있다.
3년 전 작성했던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이유’를 다시 읽으며, 지금의 ‘나’의 상황에 맞게 고쳐 썼다. 하지만 고칠 부분이 많지 않았다.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이유가 거의 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3년 간 말 뿐이었던 다이어트. 그 실패의 원인이 그 이유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의지는 약해서 자꾸만 편안함을 갈구한다. 그리고 몸은 지독하리만치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항상성을 가지고 있어서 한두 번 시도하는 것은 금세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버린다.
내가 변하려면, 다이어트에 성공하려면 매일 알려줘야 한다. 이 글을 매일 아침 읽을 것이다. 내가 왜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지 매일 읽으며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매일 떠올려 볼 것이다. 의지에 무너지는 나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매일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나는 '되고 싶은 나’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몇 년 후에는 이 글을 읽으며 웃었으면 좋겠다. 몇 년 후에는 이 글의 내용은 남고 몸은 이 글의 내용처럼 바꾸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