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coming Nov 20. 2020

3년 전 내 글에 뼈를 맞다니...

그러니까 일단 계속 써볼게요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보통 얼마만큼의 주기로 글을 쓸까? 요즘은 '매일 한 편씩 쓰기'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 다들 쓸거리가 어떻게 그렇게 넘쳐나는 것인지 경이롭기만 하다. 나는 요즘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자주 답답하고 괴롭다.


 며칠 째 꾸준히 고충을 토로하자 혁(남자 친구)이 말했다.

"그거 소포모어 징크스 아닐까?"


 나의 첫 작품(?)이 대단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채식 생활을 해오는 동안 쌓아왔던 몇 년 간의 고민이나 나름의 생각 같은 것들을 첫 번째 브런치북에 몽땅 쏟아붓고 나니, 그 이후 쓰게 되는 글들은 결론이 조금씩 자가 복제 같다거나 전체적으로 두루뭉술하게만 보인다. 아직 다루고 싶은 주제나 하고 싶은 얘기는 더 있는데, 쓰다 보면 자꾸만 갈길을 잃어버린다. 듬성듬성한 미완성 글들이 깊은 한숨과 함께 차곡차곡 서랍에 쌓여가는 나날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채우는 시간만이 유일한 구원책이라 믿고 글이 버벅댈 조짐이 보이면 조용히 읽을거리를 찾아 나선다. 어딘가 딱 들어맞거나 자극이 되는 책을 만나면 의욕이 타올라 갑자기 폭포수처럼 글이 써지는 날도 가뭄에 콩 나듯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책들은 세 권 연달아 그다지 큰 감흥을 안겨주지 못했다. 반 백수의 처지라 시간도 넉넉한 주제에 짧은 글 한 편 못 적어내는 것이 어쩐지 죄스러워서 방황하던 중, 글감에 대한 힌트라도 좀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내 블로그 탐방을 시작했다.




  채식을 시작하고 6년 동안 식단에서 조용히 육류만 거르는 식으로 소극적 채식을 해왔던 나는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채식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 졌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화장품이나 의류 등에서도 동물과 환경에 최대한 고통을 주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었고, 알게 되는 정보들을 다른 누군가와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2016년 12월, 대뜸 블로그를 열게 된 것이다.




 동물실험하지 않는 화장품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믿고 선택할 수 있는 브랜드들은 어떤 곳들이 있는지, 우리의 옷에 쓰이는 동물성 소재들이 어떻게 얻어지는지, 최근 다녀온 비건 식당이나 카페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등등 새벽까지 푹 빠져서 포스팅했던 글들이 빼곡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자주 써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지만 그때의 글들에서는 순수한 열정 같은 것들이 묻어났다. 틈틈이 웃겨보겠다는 의욕과 여유도 제법 느껴졌다. (*브런치에서는 왜 개그욕심 발휘가 잘 안 될까? 고새 나이를 좀 더 먹었다고 그런가...)


 그러다가 2017년 말, 한 퍼스널 브랜딩 강의를 듣고 적었던 리뷰​가 눈길을 끌었다. 당시의 나는 내 관심사(동물, 환경)에 대한 열정을 직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을 그때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려보게 하는 것이 강의의 목적이었고, 강의를 들은 뒤의 나는 '그린 라이프 큐레이터' 또는 '그린 콘텐츠 기획자'가 되고 싶다고 적었었다. (*당시 존재하지 않던 영역이라 마음대로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제대로 명명할 수 있는 이름이 생겼으려나?)


 그러기 위해 내 콘텐츠에 관심을 가질만한 대상에 대한 나름의 분석도 해두었고, 보다 경쟁력을 가지려면 '화장품 성분'이나 '옷 및 제품 등의 소재'에 대한 공부를 통해 전문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거나, 국내의 정보만으로는 한정적이니 외국어를 꾸준히 배울 필요가 있겠다거나, 시각적인 부분에서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사진이나 영상도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이 적혀있었다.


 글을 읽고 잠시 동안 멍해졌다. '와... 이런 각오들을 해놓고서 지금까지 하나도 안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몰라서 못한 것이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알았는데 안 했다고 생각하니 지난 3년의 시간이 아까워서 조금 침울해졌다.

 



 하지만 그 글을 읽고 부정적인 감정만 남았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 중요하다고 느꼈던 경험과 생각을 현재의 내가 이토록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또렷하게 새기고 있는 나의 글이 고마웠다. 지금도 별반 다를 것 없이 그때의 고민을 안고 있는 나에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이가 조언을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왜 좀처럼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블로그에 글을 쓰던 당시에는 '동물과 환경을 고려하는 소비의 필요성을 알리고 도움이 될 정보를 전달하자'는 단순한 목표 하나만 있었기에 그다지 헤맬 일이 없었다. 포스팅을 작성할 때는 늘 신이 나있었고, 파워블로거가 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내 정보를 참고하며 생활에 적용하는 몇몇 분들도 생겨났다.


 반면 최근 글을 쓰다가 자꾸 도중에 주저하게 되는 이유는 쓰는 목표가 흐려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내 글들이 브런치 메인이나 카카오#탭에 얼떨결에 몇 번 소개가 되고, 때로는 기대 이상의 주목도 받아보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을 자꾸 부리게 됐다. 물론 일정 부분은 이러한 의지도 필요하겠지만 이 마음이 먼저 앞서서는 나다운 글을 쓸 수 없는 것이다. 내 주장이 불편할까 검열하게 되고,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보다 다른 이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가 뭘까 머리를 굴리려 들고, 잘하지도 못하는 서투른 기교를 욕심내니 당연히 헤맬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과거 어느 날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적재적소의 조언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은 글쓰기를 통해서만 맛볼 수 있는 신기한 경험 중 하나다. 그래, 이 맛에 쓰는 거지. 저평가 우량주에 묻어두는 코 묻은 투자금처럼... 비유가 너무 낭만이 없나? 꾸깃꾸깃 썼던 일기장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린 시절 자신의 순수함에 어른이 된 내가 뭉클할 수 있는 것처럼, 욕심 없이 써둔 글이라 할 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미래의 나를 깜짝 놀라게 하거나 기쁘게 할지 모른다. 우연하게라도 누군가의 생활에 조금이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잘 쓰든 못 쓰든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의 나를 문장들로 포착해내고픈 동력이 다시 힘을 좀 받는 듯싶다.


 근데 몇 년 후에 미래의 내가 이 글에 또 호되게 혼나고 있으면 안 될 텐데...


 


 

 

매거진의 이전글 그 후, 상사는 막내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