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MBC <나 혼자 산다>에서 엑소 카이 출연 편을 보았다. 그가 여가 시간에 산책 겸 들른 'ㅁ'공원에서 토끼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는 모습이 방영됐다. 토끼가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힐링이 된다고 했다. 공감했다. 나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ㅇ' 공원을 산책하던 중 우연히 풀을 뜯는 토끼를 마주쳤다. '토끼가 왜 여기서 나와?' 하는 놀람도 잠시, 저물어가는 황금빛 햇살을 받으며 열심히 춉춉 풀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느슨해졌다. 갇혀 있는 동물이 아닌 자유로워보이는 동물을 바라본다는 건 정말로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두고두고 보려고 아름다운 장면을 열심히 내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토끼들이 어떻게 도심 속 공원에 살게 됐는지를. 자유로워보이는 그 장소가 토끼들에게는 극한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토끼들은 처음부터 공원에서 살아오던 게 아니었다. 집에서 키워지다 버려진 한 두 마리의 토끼. 그것이 이 기묘한 서식의 시작이다.
'ㅁ'공원에 토끼가 터전을 잡기 시작한 것은 2011년쯤으로 추정된다. 누군가 한 쌍의 토끼를 이곳에 유기했다. 번식 속도가 빠른 토끼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자신의 활동 영역이 확보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동물이다 보니 공간이 밀집되기 시작하자 서로 영역싸움으로 죽거나 다치기도 했다. 토끼가 많다고 소문이 나자 얌체같이 이곳에 토끼를 버리고 가는 경우도 생겼다. 한 때 'ㅁ'공원에는 토끼가 80마리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그나마 버려진 채 온갖 사고 위험에 노출된 토끼들을 안쓰럽게 여긴 개인 봉사자들이 사비로 중성화 수술을 시켰고, 동물단체와 시민봉사자 모임 등에서 지자체에 꾸준히 심각성을 알리며 대책을 촉구해왔다. 덕분에 그나마 개체수가 조율은 되었지만 여전히 'ㅁ'공원에는 많은 토끼들이 산다. 그리고 방송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토끼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공원 한 구석에 '동물 유기는 범죄'라는 경고 문구가 큼지막히 걸려있다고 한다. 'ㅁ'공원의 또 다른 이름은 '유기 토끼 공원'이다.
(*아무리 예능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이야기가 쌓여 있는 곳을 아름다운 힐링 공간으로만 소비하는 것은 괜찮은 것일까? 제작진이라면 분명히 촬영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어떻게 토끼들이 이곳에 살게 됐는지 알았을 텐데... 정보 자막으로라도 왜 공원에 토끼들이 살고 있는지, 방송을 보고 나서 토끼를 보겠다고 밀려들 인파를 대비해 토끼를 대할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잠깐이라도 일러줬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보았던 'ㅇ'공원의 토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공원 곳곳에 살고 있는 토끼들 대부분은 우리나라 고유종이 아니라 애완용으로 들어온 외래종 토끼들이라니 말이다. 'ㅇ'공원에는 문화재인 옛 토성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 버려진 토끼들이 땅을 파놓는 바람에 문제가 되어왔다고 한다. 버려진 토끼가 안쓰러운 사람들은 어떻게든 돌보려고 애를 쓰고, 문화재나 공원을 관리하거나 개체수가 늘지 않게 조율해야 하는 사람들은 토끼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막아서서 끊임없이 다툼도 잦았다고 한다. 이런 일은 장소나 동물을 불문하고 어디서나 일어나는 것 같다. 정작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유기자는 누군지 찾지도, 제대로 처벌하지도 않는 상황 속에서 애먼 사람들만 골치를 앓아야 한다는 것이 참 모순적이고 답답하다.
토끼를 키우다 보면 배설물 냄새가 생각보다 심하다거나, 털갈이 때 털이 많이 날리고, 성체가 되면 아기 때만큼 귀엽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버려진다고 한다. SNS를 통해 토끼를 키우시는 분과 알게 되면서 토끼의 삶을 종종 지켜보게 되었다. (*식용으로 판매된 토끼를 구조하신 분이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사람의 손길에 상당히 예민하고 생각보다 까칠하다. 먹는 것이며 온도며 조명이며 세세하게 조율해줘야 편안해한다. 토끼의 손톱이 고양이 못지않게 날카로워서 긁히면 피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귀여우니 한번 길러보겠다고 무턱대고 사면 감당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그나마 토끼를 위한답시고 버릴 장소로 택하는 곳이 공원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잠시라도 길들여진 토끼가 바깥 생활에 노출되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들었다. '방생'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엄연히 '유기'이고 명백한 범죄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메시지가 반려동물 입양 문화에 있어 많은 것들을 달라지게 했다고 생각한다.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정말 끝까지 키울 수 있는지 신중하게 되묻게 하고, 펫샵 분양보다는 유기 동물을 입양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는 경우도 늘고 있고, 이런저런 이유로 설령 사게 되었다고 해도 정말 자기 목숨보다도 끔찍이 아끼며 끝까지 책임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말의 영향력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위해 여전히 동물을 강제로 번식시키고 갓 태어난 동물들을 파는 사람들, 책임지지 못해 버렸으면서 또 쉽게 사서 학대하고 버리는 사람들... 이들에게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말은 아무런 효력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의 힘이나 문화만으로 바로잡을 수 없는 영역의 문제들이 반복된다. 이를 위한 제대로 된 처벌과 감시의 눈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서 교류하고 있는 동물인 개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유기 문제에 관심을 갖고 막으려고 애씀에도 불구하고 나날이 문제가 심각해져가고 있다. 버리는 사람은 나 몰라라 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만 시간과 돈과 마음을 쓰며 아파한다. 때로는 생명을 보살피려는 행동이 법의 테두리에 어긋난다고 해서 처벌까지 받는다.
제대로 문제가 알려지지 않은 토끼의 경우는 오죽할까. 우리나라에서 유기된 토끼가 다시 입양 될 수 있는 확률은 없다고 한다. 공원에 사는 토끼의 귀여운 모습만이 아닌 진짜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가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