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8일, 나영석 피디 사단의 새 프로그램(...인 듯 전에 본 것 같은) <윤스테이>가 첫 선을 보였다. 나름 방송 제작업 종사자이기도 하기에 관대한 시청자인 나로서는 좋아하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또 볼 수 있고 모처럼의 여행 같은 힐링 포인트들이 마음에 들어서 군말 없이 보는 편이지만, 조금 논란이 될 여지들도 있어 보였는데 정공법으로 잘 대처하고자 애쓴 기미가 눈에 띄었다.
윤스테이의 첫 번째 힐링 포인트는 단연 구례의 겨울 한옥 풍경이 가져다주는 고즈넉한 힐링감이다. 외식은 고사하고 생업을 위한 요건조차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차단되는 요즘, 많은 사람들의 예민감과 피로도, 절망, 분노가 대단히 높은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어지간한 예능 프로그램들도 되도록 실내에서 진행하고 있고, 야외 촬영 자체를 조심스러워하며 줄이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화면으로나마 시원스러운 구례의 겨울 정경 속 멋스러운 한옥의 정취를 보고 있자니 답답했던 마음이 좀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낯설지 않은 풍경이라 그 공간 안의 내 모습이라든가 동선이 어렵지 않게 상상되기도 했다.
직업이나 학업 등을 이유로 1년 이내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한국에 있지만 한국을 다닐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을 숙박 대상으로 정했고, 출연진들은 갇혀서 고생만(;;) 하는듯 보였기 때문에 시청자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요소는 최소화된 듯싶다.
두 번째 포인트는 (지금부터 본격적인 사심...) 식사 메뉴를 정할 때 채식주의자를 고려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윤식당> 시즌2를 진행하던 당시 채식주의자 손님들의 비건 옵션 요청에 당황하며 메뉴를 허둥지둥 재정비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비건에게도 순조롭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일부 메뉴를 처음부터 비건 옵션으로 구성한 것이다.
첫 회에서는 콩고기 넣은 궁중떡볶이, 그리고 콩소스를 곁들인 부각이 보여졌는데 회를 거듭하면서 메뉴도 조금씩 변화가 있는 듯 하니 채식 음식 메뉴도 조금 더 소개되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된다. 콩소스는 간단하면서도 맛있어보여서 꼭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요리 베이스로 쓰는 육수도 비건까지 고려해 멸치조차 넣지 않았고 '채수'로 소개했다. 채수를 '채수'라고 표기하는 경우를 그동안 방송에서 보기 드물었는데 (채소로만 국물을 우려도 대부분 '육수'로 통용해왔기 때문) 제작진, 출연진의 세심함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내가 방송을 제작할 적에도 채소로만 우려낸 국물이면 자막에 '채수'라고 표기하려고 노력했었다.
"육수가 아니고 채수? 채수는 처음 듣는데?"
라는 반응에도 모르쇠 작전으로 스리슬쩍 밀어붙였다. 뭐 대단한 차이냐, 그런 구별이 뭐 그리 중요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육수가 아니기도 하고, 채소만을 우린 물로도 얼마든 맛있는 음식들이 만들어진다는 인식이 필요한 상황이라 생각해서 채수는 채수라 불러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윤스테이에서 메인 메뉴는 육류이기는 하다. 그러나 고기를 먹지 않거나 음식 알러지가 있는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값을 지불한 만큼, 자신의 몫에 대한 나름의 배려를 받으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어쩌면 이 당연한 상황이 지금까지 우리 예능에서 찾아보기 많이 힘들었다보니 나도 모르게 내적 박수를 짝짝치며 보게 되었다. 다만 외국인뿐만 아니라 자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음식 프로그램들에서도 채식을 비롯해 조금 더 다양한 경우의 수가 활발히 고려되었으면 좋겠다. 외국인들만 채식을 하거나 음식 문화가 다양한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한국의 채식문화 열풍이나 식단의 다양성도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이니까. 더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풍속도가 묻어나왔으면, 바라보게 된다.
세번째 반가운 포인트는 윤스테이의 어메니티! 샴푸바, 고체치약 등 제로웨이스트 상품으로 준비된 것이 한옥의 정서에도, 요즘의 가치관에도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만 해도 경각심을 안 가진 사람이 없을 정도로 플라스틱이나 쓰레기는 우리 코앞에 직면한 문제인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플라스틱 테이크아웃컵이나 일회용 용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모습이 종종 보여서 아쉬웠다. 제로웨이스트 용품을 어메니티로 준비했다는 것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제작진이 신경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테고, 쓰레기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개선해나갈까 고민하는 시청자들이 관심 갖거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점이라 작은 포인트였지만 멋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보면서 반가워할 수 있는 요소들이 또 종종 눈에 띄면 좋겠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계속해서 기대를 충족시켜 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