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내 말 좀 들어줘>
마이크 리 감독은 켄 로치와 함께 영국 리얼리즘 영화의 두 거목으로 꼽히는 명감독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영화를 이번 새 영화인 <내 말 좀 들어줘>를 통해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올초 미국 유수 비평가협회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마치 실제 상황에 있는 듯 꽉 짜여진 캐릭터 안에 즉흥성이 한껏 담긴 배우들의 연기가 감칠맛을 자아내면서도, 그것이 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 묵직한 여운으로 남는 영화였습니다. 어떤 굵직한 사회적 현상이나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지는 않은, 당장 거리로 나가서도 몇번은 비슷한 사례를 마주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그 세밀한 묘사와 연민이 깃든 손길은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은 인물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마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굵직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중년의 여인 팬지(마리안 장밥티스트)의 일상은 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편한 것만 같지도 않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가만 앉아 있을 새도 없이 시시때때로 집안을 청소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집에 들어오면 별다른 안부 인사도 없이 밥타령만 하는 남편 커틀리(데이비드 웨버), 밖에 나가 뭐 할 생각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통에 산책 좀 하라는 잔소리까지 쏘아붙여야 하는 아들 모지스(트웨인 배럿)는 팬지에게 사랑스런 가족이라기보다 귀찮고 성가셔서 떼어내고만 싶은 존재들 같습니다. 그런 팬지의 짜증은 비단 타인뿐 아니라 매 순간 몸살 난 듯 몸과 마음이 고달픈 자기 자신한테까지 향하죠. 팬지는 그 짜증을 마음에 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집안은 물론이고 길거리, 마트, 병원 등 가는 곳마다 시비를 일으키며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들기 일쑤입니다. 시종일관 모나 있는 팬지의 태도에 누구 하나 제대로 반응해줄 사람이 없지만 단 한 사람, 여동생 샨텔(미셸 오스틴)만이 팬지의 짜증을 들어주고 대화라고 할 만한 반응을 보여줄 뿐입니다. '어머니의 날'이 곧 다가오는 가운데, 샨텔은 팬지에게 어머니의 날을 맞아 어머니 성묘를 하고 가족 모임을 갖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조차도 팬지에겐 그저 미루거나 건너뛰고 싶은 것들일 뿐입니다. 팬지는 무엇을 바라고 이렇게 세상에 심술 궂게 소리지르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 팬지에게 세상은 무어라 답해야 할까요.
마치 관찰예능 프로그램처럼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어떤 영화적인 무드도 연출하지 안은 채 팬지의 모습을 담습니다. 신랄한 대사를 바탕으로 영화가 대체로 코미디 분위기를 띠어서 그렇지, 초반부 팬지 가족의 모습은 오은영 박사님이 당장에 가정방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집구석입니다. 마땅히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팬지는 하루가 시작되자마자 남편과 아들 등 눈에 띄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불만 가득 쏘아붙이기에 바쁩니다. 그런 팬지의 말투에서 애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그 모든 사람들이 그저 지긋지긋한 것만 같습니다. 여기서 한번 더 피식하게 되는 건 그런 팬지의 쏘아붙임을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입니다. 대꾸도 않은 채 흘려듣고 마는 그들의 심드렁한 표정에서 '또 시작이다'라는 속마음이 읽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집안의 풍경은 시작일 뿐이고, 이후 우리는 길거리, 마트, 병원 등 장소를 옮겨가며 불협화음의 다양한 양상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팬지는 가구 매장 소파에 앉아 꽁냥거리는 커플들을 향해 '당신들 DNA를 여기 왜 묻히냐'며 일갈하고, 그저 무심한 얼굴을 한 마트 계산원에게 '왜 표정을 그렇게 짓냐'며 따지고, 병원에 가서 자신의 단골 의사 선생님이 오늘 일정상 안 나오셨다는 간호사에게 컴플레인을 겁니다. 영화니까 그런 팬지의 모습을 보며 '별 희한한 사람 다 본다'며 웃고 넘기지, 현실에서 만났다면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진상 손님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이처럼 집요할 정도로 타인에게 딴지 거는 것에 목매는 팬지의 모습에, 현실에서라면 더는 듣고 싶지 않을 그 '진상'의 목소리를 영화는 그러나 눈여겨 보고 귀기울여 듣습니다.
영화는 의학, 심리학이 아니기 때문에 팬지가 이러는 원인을 분석하고 가족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마도 일반적인 사람으로서 팬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애정은 여동생 샨텔에게 있을 것인데, 그런 샨텔과 팬지 사이의 대화를 통해 팬지가 그렇게 못 견뎌 하는 화의 심연을 어렴풋이나마 들여다 볼 뿐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애증, 맏이로서 감당해야 했던 책임과 부담, 그걸 알아주지 않은 채 자기 세계와 생각에 갇힌 남편과 아들과의 단절 등 여러 방향으로 짐작은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해도, 샨텔과의 대화 속에서 불현듯 내비치는 팬지의 본심을 통해 그가 내뱉는 가시돋친 말들이 그저 가시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은 알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세상에 상처 받고 겁을 먹은 후 행여나 그런 상처를 다시 받을까 그런 두려움에 다시 몸서리칠까 싶어 스스로에게 겹겹이 둘러친 방어막이었음을, 내 말 좀 제발 누군가 듣고 대꾸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더욱 시끄럽고 뾰족하게 내지르는 외침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이크 리 감독은 그렇게 유별나게 뭉툭 솟아나 있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 마음을 끌어안는다는 것 또한 대단히 힘든 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괄시에 가득찬 팬지의 날선 말과 표정을 끌어안는다는 게, 제아무리 가족이라도 쉽진 않습니다. 사람은 상처로 인해 꼭 아파하며 눈물짓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아픈 걸 티내지 않으려고 성을 내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될 때 그 성난 외침 속에 숨은 목소리가 들리고 할퀴려는 손톱 뒤에 숨어 내미는 손길이 보이겠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어야 말이죠.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얼굴을 들여다 보며 누군가의 표정을 관찰하고 귀를 기울이며 누군가의 목소리를 새겨 듣는다는 것이, 지극히 기본적인 일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대단히 큰 힘과 용기가 필요한 일일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팬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내 말 좀 들어줘>를 관람하는 경험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마음을 기어코 헤아리게끔 만드는 것은 현실보다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는 가운데서도 온기 어린 측은지심을 잃지 않는 마이크 리 감독의 연출 덕분이기도 하지만, 팬지를 연기한 마리안 장밥티스트의 가슴 저리는 연기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의 연기가 가슴을 저리게 한다는 것은 보는 이를 절절하게 울린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저럴 것만 같다 싶게, 도통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끝내 이해할 수 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비밀과 거짓말>의 브렌다 블리신, <베라 드레이크>의 이멜다 스턴튼, <해피 고 럭키>의 샐리 호킨스, <세상의 모든 계절>의 레슬리 맨빌, <미스터 터너>의 티모시 스폴 등 마이크 리 감독은 자신과 함께 한 배우들의 연기 역량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번 <내 말 좀 들어줘>의 마리안 장밥티스트 역시 개연성과 현실성에 천착한 감독과 배우의 캐릭터 연구가 만들어낸 절정의 연기로, 비호감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인 주인공을 데려와 기어코 울림을 주고야 맙니다. 마리안 장밥티스트의 이러한 연기에 무심하게, 또한 살뜰하게 호응하는 여동생 샨텔 역의 미셸 오스틴, 남편 커틀리 역의 데이비드 웨버와의 협연도 극을 더 풍성하게 합니다.
<내 말 좀 들어줘>가 보여주는 이야기에는 요란한 사건도, 극적인 변화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누구도 가까이 하기 쉽지 않은 여인인 팬지가 이 영화 속 이야기를 계기로 변화를 겪을지, 그 변화를 기점으로 그와 가족간의 관계도 어떤 전환점을 맞이할지 알 수 없습니다. 철저한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영화는 그런 가능성을 감히 장담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팬지와 그 가족처럼 각별한 사건의 중심이 있지 않은 보통 사람이라도 저마다 극복하기 버거운, 그 어떤 극적인 사건보다도 거대한 근심이 있으며 우리들 모두는 그런 각자의 근심을 이겨내기 위해, 아니면 적어도 두려움 없이 마주보기 위해 순간순간 큰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만은 여실히 알게 됩니다. 다만 팬지처럼 극성스럽게 소리지르지 않을 뿐, 영화는 누구나 내 말 좀 들어주길 내 손 좀 잡아주길 갈망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숱하게 희망과 좌절의 순간을 경험하고 있을 것임을 이야기하며 내색하지 않은 우리 안의 힘든 마음을 어루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