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투게더>
조던 필, 제이슨 블룸 등의 감각 있는 프로듀서와 A24, 네온 등의 예리한 제작사가 등장하며 요 몇년 간 호러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장르가 된 가운데, 호러 장르에서도 극히 마니아층을 위한 하위 장르로 인식되었던 '바디 호러' 또한 대중의 눈 안에 들게 되었습니다. 작년 바디 호러물인 <서브스턴스>가 흥행과 비평면에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것도 그 불씨를 크게 당긴 원인일텐데, 이번에 선보이는 <투게더>는 이 바디 호러 장르에 로맨스라는 도무지 결이 안맞아 보이는 장르 간의 결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단연 눈에 띕니다. 그러나 보는 이에 따라 눈을 질끈 감을 수도 있는 이미지들과 그 이미지들 사이를 오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 맞닿기 힘들 것만 같았는데 묘하게 맞닿고, 그렇게 인간의 감정을 향한 대담한 장르적 탐구가 되면서 <투게더>는 시도 뿐 아니라 결과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바디 호러 로맨스'가 되었습니다.
만난지 10년 된 커플인 팀(데이브 프랭코)과 밀리(알리슨 브리)의 사이는 뜨뜻미지근합니다. 오래된 부부 같은 것도 아닌데 최근에 잠자리 가진 게 언제였는지가 친구들 사이 대화 주제로 오를 정도인 그들의 현재 관계는 연인이라기보다는 동지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그런 둘의 관계를 예전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한 일련의 시도로 두 사람은 도시를 벗어나 외딴 교외로의 이주를 결심합니다. 교사인 밀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아이들과의 더 친밀한 교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지만, 음악을 하고 있는 팀은 도시로부터 떨어져 지내면서 자신에게 언제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제때 붙잡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듯 합니다. 여튼 그런 동상이몽은 잠시 접어두고 새로운 터전으로 향한 팀과 밀리는, 어느날 집 근처 숲속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악천후로 인해 고립되고 얼떨결에 숲속에 숨겨져 있던 동굴로 피신하게 됩니다. 동굴에 머물면서 갈등을 이기지 못해 동굴 한 구석에 고인 물을 마신 후 집에 돌아오는데, 이후 두 사람은 이상한 기운을 느낍니다. 직업 특성상 팀은 집에 머물게 되고 밀리는 학교로 출근하게 되는데, 밀리가 출근하자 팀은 밀리를 향한 그리움을 극심할 갈증처럼 물리적-생리적으로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그 괴상한 기운 때문에, 아니 덕분에 어쨌든 두 사람은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는 듯 하지만 거기서부터 진짜 문제는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두 사람은 '하나'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투게더>의 장르는 '바디 호러 로맨스'로 명명되어 있습니다. '바디 호러'라는 장르명이 주는 매니악함을 '로맨스'라는 장르명이 일정 부분 상쇄시켜주는 듯 한데, 실제로 영화는 바디 호러 장르치고는 비교적 보기 무난한 편에 속합니다. 인간의 신체가 기괴한 변형을 겪으며 공포를 주는 바디 호러 장르는 아무래도 보는 이로 하여금 고통과 불쾌함을 가져다 줄 수 밖에 없는데, <투게더>도 그런 면에 아예 없다고 볼 수 없지만 주인공들이 처한 처지와 맞닥뜨린 상황이 얽히며 자아내는 기묘한 감정이 그 고통과 불쾌함을 뜻밖의 방향으로 완화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주인공들이 이주할 교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괴한 현상을 암시하는 영화 초반부는 상당히 을씨년스럽지만, 이후 그 기괴한 현상의 당사자가 주인공 남녀가 되면서 예상되었던 공포 분위기에는 코믹함도 모자라 일말의 낭만마저 끼어듭니다. 이는 이후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사건이 그저 '파국', '재앙' 같은 표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층적 의미를 지닌 일종의 '실험'에 가깝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원한 연인 관계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방식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는 설정은 여러 창작물에서 익숙하게 봐온 것이지만, 이 설정을 영화는 두 사람의 마음 뿐 아니라 몸이 하나로 달라붙는다는,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의 '일심동체'가 되어간다는 바디 호러 장르적으로 접근하면서 신랄한 해석을 더합니다. 바로 연인 관계의 의존성이 갖는 낭만 혹은 폭력에 대한 해석입니다.
<투게더>가 바디 호러적 관점으로 보여주는 팀과 밀리의 관계 양상은 말 그대로 '너 없인 못 살아'라는 말이 물리적으로 구현된 버전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을 겪기 전부터 팀과 밀리의 관계는 그 말처럼 어느 한쪽의 의존도가 더 높아 보이긴 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로서 안정된 직장이 있고 갖춰진 조직 사회에 속해 있는 밀리와 달리, 팀은 뮤지션이라면 뮤지션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이 30대 후반인 현재까지도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입지가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어쩌면 최근 그들의 관계가 소원했던 것은 행여 그런 그들의 동등하지 않은 입장,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뜻하지 않게 티나게 될까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사건은 그렇게 숨겨 왔던 관계의 불균형성, 평향성이 급기야 육체적으로 나타나고 마는 것이겠고요. 영화는 이처럼 연인인 두 사람이 더 이상 동등한 입장에 있지 않을 때, 감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어느 한 쪽의 의존성이 커서 다른 한 쪽으로는 이 관계가 기쁨이 아닌 압박으로 다가오고야 말 때, 그 관계는 진정 서로를 나아가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서로에게 위협이자 폭력으로 작용하여 서로를 무너뜨리고 말 것인지를 바디 호러 장르를 빌려 들여다 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또 다른 도발적인 점은, 보고 있으면 뜻하지 않게 종종 웃음이 나거나 놀랍게도 로맨틱하게까지 느껴지듯 이것을 사랑을 전개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서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본디 호러라는 장르는 최선을 다해서 세상을 기이하게 비틀어 보는 장르인지라, 이 장르가 투영하고 있는 세계를 진지하게 바라보면 좌절과 절망 투성이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투게더>는 육체적으로는 파국인 듯 하면서도 정서적으로는 회복되어 가는 팀과 밀리의 관계를 통해 이것이 어쩌면 파국이 아니라 바디 호러라는 장르가 내밀 수 있는 나름의 솔루션일 수 있다고 말하는 듯 합니다. 호러 장르 특유의 짓궂은 장난기를 빌려, 이것이 어그러진 관계의 파국이 아니라 다만 그 방식이 지극히 유별날 뿐인 관계의 재정립에 대한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팀 역의 데이브 프랭코와 밀리 역의 알리슨 브리는 실제 부부인데,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서 둘 사이에 오고 가는 감정은 연출과 실제를 넘나들며 이 기괴한 두 얼굴을 한 사랑이야기에 묘한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한껏 뒤틀린 모양새로 재구축되는 관계의 양상에 누군가는 기함할테지만, 그들 덕분에 누군가는 왜일까 물으면서도 납득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처럼 지극히 무겁게도, 지극히 장난스럽게도 볼 수 있지만 어느 쪽으로든 바디 호러 장르와 로맨스를 결합한 <투게더>의 시도는 충격적입니다. 이 결합으로 인해 이야기가 명확한 하나의 색깔을 띠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이 영화만의 미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에게 한없이 혹독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만큼 절실하고 달콤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가 바라보는 사랑의 본질일테니 말이죠. 연인 관계에서 피어날 수 있는 의존성과 그 이면에서 자라나는 폭력성, 그 모든 한계를 장르적으로 돌파하여 내다 보는 가능성까지, 개성이 또렷하고 이미지가 명징할 수 밖에 없는 바디 호러라는 장르의 외형을 하고서도 이런 장르와 감수성의 결합 덕에 <투게더>는 영화가 끝날 때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충격파 대신 함의를 곱씹어 보게 하며 감정적으로 진한 잔상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