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덴의 영화읽기 25] <겟 아웃>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헐리우드 최고의 코미디 배우를 꼽으라고 한다면 몇몇 인물들이 회자될 것이다. 에디 머피,벤 스틸러,아담 샌들러,마틴 로렌스,잭 블랙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도 정점에 오른 배우는 단연코 짐 캐리다. 코미디 배우로서 그는 말재주,모사 능력,슬랩스틱,표정 연기 등 모든 분야에서 탁월했다. 그런 그가 2004년 <이터널 선샤인>이란 작품을 선보였는데 기존의 짐 캐리가 아니었다. 한없이 우울한 짐 캐리는 낯설었다. 하지만 이내 모든 관객은 그의 내면 연기에 빠져들었다. 더 이상 짐 캐리는 코미디만 할 줄 아는 배우가 아니었다.
<겟 아웃>을 이야기하기 위해 짐 캐리의 변신을 예로 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심리 스릴러 또는 호러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 사람도 코미디언이란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연출을 맡은 조던 필은 미국의 Mad TV에서 동료인 키건 마이클 키와 ‘키 앤 필(Key&Peele)’이란 코미디 쇼를 진행하고 있다. 그의 코믹한 연기를 봤던 사람들이라면 이 무서운 영화의 연출을 그가 했다는 점을 믿기가 그리 쉽진 않았을 것이다.
단 한 줄의 줄거리
‘흑인 남자가 백인 여자친구 집에 초대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영화 소개 사이트를 들어가보면 이 영화의 내용은 단 한 줄로만 나와있다. 심지어 기자 시사회에서는 참석자들에게 나눠주는 시놉시스 소개란이 공란으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영화는 발상 자체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하는 것이 좋다. 혹자는 예고편을 보지 않고 영화를 봤어야 했다는 후회까지 할 정도다.
한 흑인 남자는 자신의 백인 여자친구 집에 초대를 받고 그녀의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가게 됐다. 그러나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가는 길에 차로 그만 사슴을 들이받고 만다. 경찰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한다. 집의 분위기는 더 의뭉스럽다. 정원사와 가정부는 그들의 눈빛만 봐서는 의중을 알 수가 없다. 주인공은 흑인으로서 백인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둘 모두가 흑인이란 점이 더 신경쓰일 수 밖에 없다.
최면술을 전공으로 한다는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남자 주인공의 금연을 최면으로 도와주겠다며 접근한다. 둘의 이야기가 깊어지며 남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사정까지 털어놓게 된다. 완전히 그녀의 최면에 통제되기 시작하며 이 영화는 본격적인 가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최면을 통해 남자주인공을 마음대로 조종해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몇 가지 장면 톺아보기
지금부터는 서두에 스포일러 경고를 해놨듯이 내용에 대한 직접적이고 자세한 언급이 많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영화를 볼 예정인 관객들은 여기서 읽기를 멈추길 권장한다.
영화를 다 보고서 전체를 복기해보면 군데군데 감독의 세심한 연출이 다시 눈에 보이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를 재관람하는 관객들도 많을테다. 영화의 진행 순서에 맞춰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을 한 번 톺아보자. 우선 여자친구의 집으로 가던 중 차로 사슴을 치고서 경찰과 만났을 때 경찰은 남자에게 신분증을 요구한다. 그 때 여자친구는 운전도 하지 않은 남자친구의 신분증을 왜 요구하냐며 경찰에게 강하게 대응한다. 여자친구는 흑인을 쉽게 대하려는 백인의 태도를 비난하며 남자친구에게 애정과 믿음을 더욱 강하게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사람이라면 알다시피 남자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아야 실종이 되어도 찾기가 어렵다는 그녀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집으로 오는 길에 사슴을 쳤다는 이야기에 여자의 아버지는 잘 됐다며 위로를 넘어서 칭찬을 해준다. 본인이 사슴을 싫어한다는 이유에서다. 영화 전체를 되돌아보면 ‘사슴’이란 꽤나 큰 의미를 지닌 오브제(물체 또는 객체를 이르는 말)다. 여자의 아버지는 사슴을 죽이는데 있어서 전혀 거리낌을 못 느끼는데 이는 여태 본인이 해한 수많은 흑인들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 말미에 여자의 아버지는 집에 걸려있던 사슴 동상에 찔려 죽게되는데 흑인인 남자주인공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는 점에서 사슴은 흑인으로 해석이 되어도 무방하다.
영화 후반 여자친구 가족의 계략에 말려 일촉즉발의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남자는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모면한다. TV를 통해 정기적으로 나오는 최면술 음성을 듣지 않기 위해 소파의 솜을 뜯어 귀를 막아놓은 것이다. 이 장면은 과거 미국 사회에 있었던 흑인 노예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암시이기도 하다. 과거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 목화밭에서 목화(솜)를 뜯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흑인들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을 그린 것이다.
로튼 토마토 지수 99%
위에서 톺아본 세 장면 말고도 <겟 아웃>은 여러 부분에서 꽤나 섬세한 복선을 심어놓았다. 또한 신선한 소재와 함께 영화의 서스펜스를 더하기 위한 준비를 정성스레 한 티가 난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부터는 연출이 진부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기존 반전 스릴러 영화들의 결말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감이다. 소재의 신선함을 연출이 받쳐주지 못한 셈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평점 사이트인 ‘로튼 토마토(rottentomatoes.com)’가 99점을 줬다는 사실에 강한 의구심이 든다. 배급사 측은 현재 이 점을 백분 활용하여 성공적인 마케팅 결과를 얻고 있는 중이다. 로튼 토마토 사이트에서는 보통 웹상의 ‘추천’이나 ‘좋아요’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 ‘Fresh(신선한)’란 항목이고, ‘반대’, ‘싫어요’에 해당하는 항목이 ‘Rotten(썩은)’이다. 흔히 로튼 토마토 지수가 높다는 것은 그 영화가 얼마나 좋은지를 토마토의 신선함에 비유해서 이해할 수 있다.
로튼 토마토 지수가 99점이란 것은 쉽게 100명 중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이 <겟 아웃>에 ‘Fresh’를 줬다는 말로 이해를 하면 된다. 하지만 로튼 토마토에는 평론가들이 매긴 토마토 지수 말고도 바로 옆에 일반 관객들이 매긴 관객 스코어도 있다. <겟 아웃>은 토마토지수는 99점으로 압도적인 수치를 보여주지만 관객 점수는 88점으로 평론가들의 평가만큼에는 미치지 못 하고 있다.
단적으로 로튼 토마토에서 토마토지수가 99점인 다른 영화들과 직접적인 비교를 해보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명작 <대부> 시리즈 1편과 마틴 스콜세지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택시 드라이버>가 <겟 아웃>과 같은 99점의 토마토 지수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와 <택시 드라이버>는 평론가의 점수 말고도 관객들의 평가에서도 90점 중반대를 상회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같은 경우는 토마토 지수는 94점으로 <겟 아웃>보다 낮을지 모르나 관객 지수 역시 94점으로 <겟 아웃>을 훨씬 능가한다.
영화 평점의 1점,2점 차이가 영화 비교의 절대적 지표가 될 수 없음을 잘 안다. 하지만 소재의 신선함과 메시지의 무게감과는 균형이 맞지 않는 전개 때문에 이 영화가 다른 명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결국 평가의 몫은 평론가가 아니라 관객 스스로에게 달렸다.
차별이라는 굴레
미국은 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며 이제 흑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더 이상의 흑백 갈등은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오히려 흑인에 대한 인종적 차별과 탄압은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줄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퍼거슨 사태’가 그 단적인 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에 뜨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흑인 남성이 아닌 백인 여성이 실종된 이야기였다면 우리는 그 내용을 영화로 볼 수 있었을까? 이미 뉴스만으로 미국 사회는 시끄러웠을 것이다. 영화 <겟 아웃>은 흑인을 이용하려는 백인들의 우월감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흑백간의 인종 문제를 넘어서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 가진 변용성의 범위는 꽤나 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백인이 흑인을 통제하는 이야기지만, 가해자가 누구냐에 따라 피해자는 흑인이 아니라 다른 인종이 될 수도 있다. 백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호감을 갖기에 큰 어려움을 겪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비슷한 연유다. 아직도 인종차별의 굴레를 벗어나기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