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덴의 영화읽기 26] <박열>
이준익 감독이 다시 사극을 들고 돌아왔다. <라디오스타>와 <소원>의 연출을 제외하면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현대극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기획과 제작을 맡은 현대극은 논외로 하자) <사도>와 <동주>에 이어 이번엔 <박열>이다. 이름도 생소한 독립투사 박열. 이준익은 왜 하필 지금 박열을 꺼내든 것일까?
두 달 전인 5월 12일, 일본의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간토대지진 직후 일어난 일본의 조선인 학살 사건과 관련해 인정을 하지 않고 유감을 표할 의사가 없음을 공식 답변서로 확정했다. 영화 <박열>의 등장은 시간적 우연의 일치든 아니든, 일본 정부에게 고하는 이준익의 용기로 볼 수 있다.
간토 대지진과 학살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 일대의 간토 지방에서 리히터 규모 7.8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5분도 안 되어 비슷한 강도의 여진이 두 번 일어났다. 사상자와 행방불명자가 무려 10만 5천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대참극이 발생한 것이다.
간토 대지진(관동 대지진)은 인류사에 재앙으로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그러한 인류사적 의미를 떠나 더 뼈아픈 순간으로 기억된다. 대지진의 피해를 수습하기 위해 당시 일본 정부는 우선 흉흉한 민심을 다시 다잡는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일본 내무성은 ‘조선인이 혼란을 틈타 우물에 독을 풀었다’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조선인 무리들이 있고 그들이 방화와 약탈을 일삼는다’라는 유언비어를 하달해 신문에 싣는다. 서구의 열강들과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바쁘던 제국주의 일본에게 ‘조센진(조선인)’만큼 만만한 게 있었을까.
심지어 지진을 조선인이 일으켰다는 황당무계한 낭설도 돌아다녔다. 소문의 진위여부를 가리기에 이미 조선인은 표적이 되었고 이성은 감정에 잠식되었다. 죽창과 일본도로 무장한 민간인 조직 자경단은 조국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조선인 학살을 시작했다. 조선식 복장을 하고 있으면 무참히 살해했고 식별이 애매한 사람은 조선인이 발음하기 힘든 단어 ‘십오엔 오십전’에 해당하는 발음 ‘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쥬우고엔 고짓센)’을 발음시킨 뒤 판별이 되면 역시나 죽창을 휘둘러댔다. 이는 영화에서도 묘사된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선조들이 6,000여 명에 달한다.
괴짜 조선인 박열의 등장
영화의 주인공 박열은 독립투사이기 전에 아나키스트였다. 아나키즘이 보통 ‘무정부주의’라고 국내에서는 번역되기 때문에 아나키스트라고 하면 무정부주의자라고 볼 수 있으나, 아나키즘은 단순히 정부에만 반대하는 것이 아닌 지배자와 통치자가 없는 상태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다. 그 지배자와 통치자는 정부,종교,자본,인종,성 모든 분야에서 존재할 수 있기에 아나키스트를 단순히 무정부주의로만 볼 수는 없다. 표기 자체도 아나키스트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
박열은 경북 문경 출신으로서 3.1 운동과 관련되어 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일본으로 넘어가 허드렛일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의 나이 열여덟일 때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나키즘 단체인 ‘흑도회’를 조직했고 일본에서도 그의 연인이자 동지인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와 ‘불령사’를 조직해 일본에 대항했다. 그들에게 일본은 안으로는 천황이라는 거대한 통치자가 지배하고 바깥으로는 조선을 지배하는 썩을 대로 썩은 곳이었다.
박열은 조선인에 대한 무참한 학살이 자행되던 시기에 일본의 계략을 알아차리고 일본의 황태자를 암살하기 위해 폭탄을 가져오려 했다는 혐의에 대해 자백을 하고 옥살이를 자청한다. 그는 사형이 기정사실화 되어있는 재판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계속해서 그가 재판을 어렵게 끌고 가고 크게 키워야만 고국과 국제사회에 일본의 만행을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짜 조선인 박열은 더욱 더 거침없이 행동한다. 공판을 계속 거부하며 재판을 대법원까지 가져가고 서구의 법리 체계를 갓 모방하며 인도적으로 용의자를 대하기 시작한 일본 사법부의 취지도 간파해 의도적으로 식음을 전폐한다. 또한 함께 수감된 연인 가네코 후미코와 옥중에서 사진을 찍게 해달라는 황당한 부탁까지 하고 재판정에서도 조선의 예복을 입고 조선어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장을 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실화다. 영화가 이를 잘 고증했으니 확인 해보는 게 좋겠다.
박열만큼 빛났던 가네코 후미코
이준익 감독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이야기의 힘에 집중하는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의 창출에도 공을 들인다는 점에 있다. <왕의 남자>에서도 장생(감우성)이 극을 끌고 가지만 영화를 다 보면 관객들은 공길(이준기)을 떠올린다. <동주>에서도 윤동주(강하늘)만큼의 스포트라이트를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양을 송몽규(박정민)가 가져가기도 한다. <박열>에서도 마찬가지로 박열(이제훈)만큼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잔향이 매우 강하게 남는다.
최희서는 <동주>에서 윤동주의 시에 반해 그의 작품을 출판해주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던 일본인 쿠미 역을 맡았었다. 작은 역이었지만 이준익 감독은 최희서의 잠재력을 보았고 그 확인을 관객에게 다시 제대로 보여주었다.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구사하는 가네코 후미코 역할을 위해 모든 한국어 대사의 발음을 히라가나로 바꿔 대사를 연습했다는 그녀의 열정을 앞으로 다른 영화를 통해서도 오래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박열>의 의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한 존재가 시대와 불화를 고백했을 때 그 가치관이 내가 현재에서 하는 고백과 닮아 있나, 다른가? 이걸 자각하면 사회관과 세계관이 잡힌다. 젊은 나이에 일관된 선택과 행동을 한 그 젊은이들을 내가 먼저 영화로 보고 싶었다! (웃음) 근데 이걸 대중적으로 요령 피워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대의 청년과 지금 시대를 사는 나와의 상관성을 찾는 게 중요했지”
<오마이뉴스>와 진행했던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했다. 불령선인으로 불리던 그 시대의 청년들이 저항했던 고민의 무게는 우리 시대 청년들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어떨까? 물론 시대적 환경과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그 무게와 해결책이 다르다. 하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은 법. 각자의 문제는 각자가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때 과연 박열만큼 당당하고 솔직할 수 있는가. 스스로 답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