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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Sep 03. 2023

그리운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 쓰는 글

봄을 떠올리며

어떻게 잊을까. 그날의 기분을 지우려면 네 달은커녕 4년이 지나도 한참 모자랄 텐데.


당시 나는 바뀌어버린 업무 상황과 밀려드는 업무로 버거움이 한계치에 도달했을 시기였다. 툭 터놓을 수 없는 불만을 선물 상자에 리본을 감듯 마음속에 꼭꼭 매듭지어 놓았고,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생채기 같은 생각은 점점 범위를 넓혀 마음 곳곳을 곪아가게 만들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지만, 그런 용맹한 마음과 다르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심정으로 아무도 관심 없을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분노를 자그맣게 표현하는 것뿐이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퇴근을 하고도 집에서 해야 할 일들에 머리가 지끈거렸고, 7시에 예정되어 있던 운동을 가면서도 예정 업무를 미리 끝내려면 이것 또한 사치라는 생각이 저며 들었다. 뭐랄까. 나는 항상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사를 가는 건 매일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언어가 곧 다정함이라고 여겨왔지만, 퇴근 후 운동을 가면서 물색없이 혼잣말로 상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소심한 나로서는 그때까지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과도 같았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죽음을 택했다. 처음 그의 소식을 들었던 건 그러고도 몇 시간이 흘렀던 그날 밤 새벽. 역시 운동을 미룰 걸 그랬다고 씨근거리며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일을 하던 나에게 한 통의 연락이 왔다. 친한 친구가 그의 이름을 언급하며 소식을 들었냐고 했다. 무슨 이야기?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임에도 불안감이 엄습했다. 기시감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몇 해전, 휴학계를 내고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나는 중학생 아이들과 아이돌 이야기를 하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그 팀 이번에 시상식 무대 진짜 멋있던데?', '누구 열애설 떴다는데 봤어?'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는 아이들에겐 꽤 말이 잘 통하는 선생님으로 보이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나서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궁극적인 이유는 실은 나도 반짝이는 그들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재잘재잘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잊은 듯 떠드는 아이들을 보며 나의 한 시절을 떠올린다.


나에게 연예인은 단순히 그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잘 살고 싶게 만드는 동경의 대상과도 같았다. 남들은 청춘이라고 예찬하는 시절이 나는 왜 그렇게 지난하던지. 내게 대학생활은, 실은 내가 얼마나 별 볼 일 없는 사람인지 매일 확인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블로그에 글을 끄적이는 나와 달리 동기들은 잡지사나 신문사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고, 나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영화라는 세상을 선택했다면 다른 이들은 영화를 제작하는 일에 직접 참여하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열없는 나는 언젠가부터 사각지대로 몰리는 기분이었고,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자며 나만의 선을 그었다. '아싸'였던 나는 선후배와 격 없이 지내는 동기들이 부러웠고, 기죽지 않고 자신의 능력치를 뽐내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지금은 지질했던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인정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척했다. 실은 나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었는데.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나를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돌을 사랑했다. 이불 밑에서 벽을 쌓고 있는 나였지만, 반짝반짝 가장 빛나는 곳에서 저마다의 성을 만들어가는 그들을 동경했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건물 한 채도 턱턱 살 수 있는 그들도 예전에는 연습실에서 빵을 나눠먹으며 어려운 시절을 겪었단다. 매일 불을 끄고 작은 모니터를 통해 바라본 사람들은 나에게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만 같았다. 지금 아무리 어려워도, 잘 이겨내면 언젠가는 나만의 빛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계산적이지 않고 숨기는 데 능하지 않은 아이들을 보며 나는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꽃밭이 가득했다. 화이트데이 같은 기념일이 되면 아닌 척 스윽 사탕을 내밀고, 일찍 마치는 날은 선생님이랑 같이 집에 가겠다며 일부러 이삼십 분을 더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퇴근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마음이 조급해지는 지금, 아이들이 나에게 내어준 시간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본다. 그때 나는 내 주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보다 열 살은 어린아이들을 통해, 그리고 자신만의 선을 그어가는 빛나는 사람들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용기 있게 배울 수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영어 듣기를 시키고 혼자 다른 교실에 앉아있었는데, 5년 전에도 그 친구는 나에게 누군가의 소식을 들었냐고 물어왔다. 내가 딱 이 아이들만 할 때 내 모든 것과 같았던 ‘오빠’의 이야기였다. 아니? 못 들었는데. 그 말을 끝으로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수반되어 있었을 테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가 세상을 저버렸다고 했다. 어째서? 나한테그만큼 커 보이는 사람이 없었는데. 나는 그가 전하던 노래를, 목소리를, 담담한 이야기를 들으며 힘을 냈는데. 얼마 뒤, 유서가 공개됐다. 라디오를 다시 틀어놓으면 여전히 따뜻하고 다감한 목소리가 한결같이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계절은 바뀌고 몇 개의 해가 지났다. 허망하고 아픈 시간이었다.





초를 헤아리며 인터넷을 켰다. 이번은 정말 아니겠지. 속으로 되뇌면서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소중한 것을 잃을 위기와 맞닥뜨리면 그렇게 간절해질 수 없다. 뭐든 괜찮아, 살아만 있으면 돼. 긴긴밤이었다. 온종일 업무 폭탄을 맞으면서도 이걸 언제 다 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 불안했지만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무엇이 그렇게 고독했을까. 화면 속 빈 커서만 깜빡였다. 내가 종잡을 수 없는 불만을 혼자 되뇔 동안, 누군가는 오랫동안 감춰놓은 이야기를 죽음으로 발화했다는 것. 더군다나 항상 그렇게 빛나던 사람이. 기사 하나하나를 뜯어볼수록 인정해야 하는 사실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흐물흐물해졌다. 기사에는 저마다 다른 그의 사진이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좋아했던 미소였다. 내가 삶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그의 웃음을 보며 세상에는 명과 암이 있다는 걸 배웠다. 방 안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도, 밥은 꼭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안부인사에 마음을 다잡았다. 세상에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순간에도, 나는 퍽퍽하게 부서지는 밥알을 삼키며 네 영상을 보고 엉엉 울었다.


달은 매년 지구와 멀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점점 멀어지다가, 만약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우리의 세계는 결국 붕괴하고 말 거라고. 있을 땐 당연하지만, 사라지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것. 좋아하면 닮는다고 했나? 우주나 별, 달을 좋아했던 너. 그거 아니, 넌 정말 나에게 달과 같았어. 마냥 먼 세계에 있다고 해도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었고 아무리 캄캄한 밤이라도 둥그렇고 환하게 떠있는 달을 보며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힘을 내곤 했어. 네가 해주는 예쁜 말을 보며 다시 발돋움을 했고, 밥 한 술 뜨는 것도 귀찮아도 네 안부 인사 하나에 과몰입해서 억지로 밥을 욱여넣을 때도 있었지. 언제나 밝은 에너지로 가득했던 너와 멤버들의 영상을 보며 나 웃을 수 있었고, 너희의 컴백 소식을 들으며 내일을 기대하는 방법을 배웠어. 직접적인 관계성이 없는 사람을 통해 원동력을 얻는다는 게 다른 누군가는 시답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매일 너만의 이야기를 하루하루 써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좀 더 열심히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졌어. 난 아직 이렇게 할 말이 많은데, 너는…


할 수 없는 말들 대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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