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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샹 Oct 13. 2019

꼭두의 몸을 보았네.

임지애(Jee-Ae Lim) 안무가의 신작 Mountain, Tree, Cloud and Tiger(산, 나무, 구름 그리고 호랑이) 춤공연이 베를린에서 막을 올렸다.


프리미어를 지켜보는 동안 몇 차례 꺽 울음이 차 올라 공연이 어서 끝나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 몸을 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본 것은 늙어가는 몸, 시간과 씨름하는 몸, 시중드는 꼭두같은 몸이었다. 공연 마지막날 한번 더 극장을 찾았다. 그 여운이 가시기 전에 서둘러 이 글을 쓴다.


임지애 안무가(이하 지애님)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여름 베를린에서 열린 한국춤 워크숍에서였다. 느닷없이 베를린에서 춤공부(Tanzwissenschaft)를 전공으로 택한 나는 춤이 무엇인지 게걸스레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 모양은 지금도 여전하다. 포스터를 보고 찾아간 위크숍은 한국에서 초빙한 강사를 모시고 일주일동안 강도 높게 진행됐다. 나를 제외한 모든 수강생은 베를린에서 30년 이상 명맥을 이어온 여러 한국교포무용단의 회원들이었다. 그곳에서 새롭게 한국춤을 배우고 있는 지애님을 만났다. 알고보니 그녀는 이미 한국에서 전통춤을 전공하고 베를린에서 안무를 공부한 뒤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잇고 있는 베를린 댄스신 유명인사였다.   


일주일 워크숍은 내게도 몸으로 흔적을 남겼다. 뻗어나간 동작의 모양새보다 무게중심의 추가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시간을 떠올리면 겨우 독일생활 문법을 익혀가던 중 갑자기 접하게 된 한국 어르신들이 낯설게 다가왔던 기억도 같이 소환된다. 독일에서 오래 생활하신 어르신들에게서 풍기는 쿨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되레 어찌 처신해야 할지 몰라 나홀로 난감해지곤 했기 때문이다.

              

한국춤의 동시대성과 디아스포라적 몸에 대한 고민을 붙들고 그분들과 이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지애님이 이번에는 직접 무용단 소속 선생님 두분과 함께 무대 위에 섰다. 무용을 전공한 뒤 베를린에 표류하게 된 두 젊은 무용수(임지애, 권지선)와 독일 간호사로 파독되어 30년 넘게 한국춤을 추며 향수를 달랜 두 선생님(신경수, 김옥희)의 조합인 셈이다.


네명의 디아스포라 바디에 축적된 시간과 공간과 문화가 뒤얽혀 기존의 질서가 해체된 곳에 전혀 새로운 시공간과 문화가 탄생했다. 결코 프로와 아마추어, 젊은 댄서와 나이든 댄서의 대비 구도가 아니다. 손을 맞잡고 힘을 겨루는 지애님과 옥희샘, 둘 사이를 왔다 갔다 요동치는 힘의 변화처럼, 무대 위 네 명의 움직임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자체로 춤이 되었다.    

프리미어가 진행되는 동안 경수샘 몸에서 풍겨지는 긴장감이, 옥희샘 몸에서 새어나오는 여흥이, 지선님에게서 느껴지는 흥분감이… 제 각기 다른 에너지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 가운데 공연의 중심추를 잡고 움직이는 지애님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힘의 완급을 조절하며 시중을 들고 중심을 맞춘다. 긴장하기는 관객인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됐다! 통했다!“ 하는 안도감으로, 이어서 이렇게 멋진 공연을 베를린에서 선보인 그녀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변해갔다.     


함께 춤공부를 하는 베를린 친구들과 마지막날 극장을 다시 찾았다. 초연에서 보였던 경수샘 몸의 긴장감은 간데없고 자연스러움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재밌는 차이를 발견했다. 도포자락을 넘기고 부채를 펴고 턱 접는 듯한 한량무 춤사위가 긴장된 움직임 속에서는 한복과 부채의 부재를 도드라지게 하더니, 이번에는 캐주얼한 옷차림 위로 마치 도포가 둘러있고 손에 부채자루가 들린 것처럼 보여졌다. 전자가 전통의상의 부재를 가시화함으로 전통춤 요소를 현대춤으로 재작업화한 프로세스를 상기시켰다면 후자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함으로써 하나의 또 다른 세계를 가공해낸 것이다. 맞고 틀림은 없다. 부재를 가시화하며 전통과 현대 사이를 매개하는 안무의 힘을 확인할 뿐이다.   


또 한번의 차이는 지선님의 회전씬에서 찾아왔다. 지선님의 움직임은 빠르고 정교하고 힘이 좋다. 왠지 한국의 트레이닝 과정을 엿보는 듯하다. 프리미어에서는 소리에 힘이 넘쳐 순간 제의 한가운데로 들어온 듯 했다. 마지막 공연에서는 소리가 몸에서 나왔다. 소리와 몸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반복된 회전속에 기운이 빠지는 몸이(또는 소리가) 보이자(또는 들리자) 객석에서 동시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브라보!!! 소리내는 바디의 완벽한 구현이었다. 데보라 헤이의 매치라는 작품에서 총쏘는 동작을 표현하던 무용수의 몸이 총 자체가 되던 멋진 퍼포먼스를 연상시켰다.  

 

덧붙이자면, 옥희샘의 퍼포먼스는 마냥 훌륭하다. 가만히 있어도 말을 걸어올 것 같은 트레일러 속 얼굴도 좋고, 움직일때마다 드러나는 리듬감이 감탄을 자아낸다.     

솔로와 듀엣으로 구성된 전반부를 지나 무대 뒷편에서 네명의 무용수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경수샘이 먼저 등장해 덩쿵덕쿵다라라라라 구음을 하고 지애님이 이어서 따꿍따꿍따 한다. 그 장단에 맞춰 네명의 무용수가 뒷짐을 지고 잔걸음을 한다. 따꿍 소리에 심장이 쿵덕, 따꿍따따꿍에 뭉클해온다. 찰싹찰싹 파도소리까지 덧입혀진다. 순간 나는 카메라가 되어 무대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진다. 그들 각자의 이야기가, 그들이 걸어온 길이 궁금해진다. 문학적, 영상적 상상력이 배가되는 씬이다. 해변에서 따로 또 같이, 아 아름답다. 따꿍따따꿍따!


이런 조합, 이런 접근, 이런 공연을 만난 건 관객에게도 큰 행운이리라!


그럼에도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무용수들의 마주봄, 시선의 겨룸은 관객들에게 전달됐을까? 영화 버닝(Burning)에 대한 연상엽(Steven Yeon)배우의 인터뷰처럼 직접적인 헐리우드식 감정 표현방식과 달리 눈빛 하나만으로도, 입모양의 작은 떨림 하나만으로도 극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과연 한국적인 것이라면 유럽 관객들은 이 눈짓을 읽었을까?


디아스포라 바디 속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 한국인으로 태어나 가장 오래산 몸, 아님 전통춤을 가장 오래 춘 몸이 가장 한국적인가? 다들 한국을 떠나와 유럽문화 속에 살고 있으니 어쩌면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몸이 가장 한국적인 것은 아닐까? 질문은 이어진다. 소리내는 몸, 부딪힘(컨택)에서 파생되는 즉흥적인 움직임은 현대무용의 특징인가, 한국전통 놀이의 산물인가? 세대와 국경, 삶과 죽음 사이 경계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 삶은 한낮 꿈이던가?  


전통과 현재, 젊음과 나이듦, 한국과 베를린! 시공간과 문화가 뒤얽혀 한바탕 새로운 춤을 추었다고 말하기엔, 그 춤이 온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 춤이 나를 데려간 곳은 어디인지, 풀어야할 숙제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온 몸을 던져 그 해답의 실체에 한뼘 다가간 임지애 안무가의 시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녀의 움직임은 그 답을 찾기 위한 긴 여정 위에서 만난 꼭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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