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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바람처럼 Jan 09. 2024

싸고 맛난 것을 정성껏 차리는 시간

나를 대점하는 한 끼


나를 대접하는 한 끼에 더한 시간


지난 토요일 동네 야채가게에서 만 원으로 장보기 한 후 알뜰하게 잘 챙겨 먹고 있는 나의 한 끼


천 원짜리 무 한 개.

반개는 듬성듬성 썰어서 소고기 무 콩나물국 한 냄비를 끓였다. 경상도식 소고깃국으로 고춧가루를 넣고 버섯 한 팩 중 새송이버섯과 표고버섯을 넣고 육개장 삘 나게 한 솥 끓여서 소분해서 냉동실행~

몇 끼는 따뜻하게 잘 먹을 수 있다. 

고춧가루가 똑떨어져서 좀 더 빨갛게 끓여야 하는데 덜 빨갛다... 고춧가루는 친정엄마 찬스를 쓴다. "엄마 고춧가루 떨어졌어"... 한마디면 한 봉지가 날아온다. 농사를 짓는 엄마도 아닌데 나보다 더 바쁜 직장인인데... 그래도 엄마뿐이다.


팔팔 끓여서 뜨끈하게 한 그릇 듬뿍 담아 열무김치와 보리 잡곡밥 한 그릇...

쌀쌀해지는 저녁에 이보다 행복한 한 끼는 없었다.




남은 무 반 개

새콤달콤하게 무치는 무생채 


가을에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무생채이다. 흰쌀밥 한 그릇에 따스한 소고깃국 한 그릇과 무생채,

반찬 가짓수가 많을 필요가 없다. 내가 나에게 대접하는 이 소소한 한 끼가 든든하다.

채칼에 쓱쓱 썰어서 

고춧가루 버무리고

10분쯤 내버려 둔 후 소금, 액젓, 다진 마늘, 설탕, 식초, 매실진액 넣고 버물 버물

내 입맛에 맞게 새콤달콤하게 설탕과 식초는 알아서~

통깨가 없어서 깨 생략, 다진 대파나 쪽파를 넣어도 색깔이 예쁠 텐데 대파 쏭쏭 써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무만~






상추 한 봉지, 애호박 반개, 가지 한 개

보리 잡곡 비빔밥


애호박, 가지, 양파  채 썰어 그냥 프라이팬에 소금 살짝 뿌리고 볶기

그리고 보리 잡곡밥 한 그릇...

비빔밥의 국룰은 계란 프라이 2개... 왠지 한 개는 정 없어 보인다.






10첩 반상차림의 밥상을 좋아한다.


한정식을 좋아한다. 그러니 반찬 가짓수가 많은 걸 좋아하지만 혼자 먹는 밥상은 항상 간편을 추구한다. 귀찮으니깐... 그럼에도 한 번씩 이렇게 반찬이 푸짐한 날이 있다. 반찬가게의 덕을 본 날이다. 내 돈 주고는 잘 안 사는 반찬이지만, 이렇게 또 생기는 날도 있으니깐... 감사한 선물이다.

무생채, 열무김치, 오징어채볶음, 김치찌개

계란말이, 두부조림, 미역줄기볶음

푸짐하게 한 끼 잘 먹은 따뜻한 저녁이었다.






잘 몰랐었다. 스스로 나를 대접하는 게 별게 아니란 걸...

사는 게 너무 바빠 물 말아 김치 한쪽으로 끼니를 때웠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젠 내가 나를 대접한다. 비싸고 거한 게 아닐지라도 싸고 맛난 것을 정성껏 차리는 시간을 더한다. 항상 끼니때마다 이렇게 차리진 못하지만, 되도록이면 귀찮음을 물리치려고 노력한다.

나를 대접하는 따뜻한 한 끼는 소박한 음식이지만, 시간과 정성을 더한 맛이다.



아직 장본 야채가 남아 있다.

상추 한 봉지, 가지 한 개, 애호박 반개, 팽이버섯 한 묶음

오늘 저녁은 야채 쫑쫑 썰어서 야채 전을 부쳐서 나를 대접해야겠다. 냉장고를 다 털어 먹으려면 한참을 장보기 안 해도 될 텐데... 그래도 또 장 보러 갈지도 모른다. 



동네 야채가게 아저씨 자주 봐요.

부식비 한 달 5만 원 도전한다.

여긴 지방이고 혼자 생활하는 중이라 가능한 금액이다. 그리고 종종 친정엄마 찬스가 있다. 고춧가루, 쌀, 마늘, 고추장, 된장 등등 꼭 우리 거까지 구매해서 배달해 주는 늙은 엄마가 있다. 나이가 오십이 다 된 딸내미 밑반찬도 가끔 해주시는 친정엄마... 엄마는 정말 어쩔 수 없다.

25일 주말엔 한 해 반찬 농사인 김장 담그는 날. 늘 우리가 다 가져다 먹는 김장 김치라서 무조건 한다. 묵은지가 없는 김치냉장고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나 큰 별은 묵은지 삼겹살 김치찜을 좋아하기에 할머니 김치가 없으면 펄쩍 뛰는 녀석이다.


오늘 아침은 쌀쌀함이 덥석 문 앞에 더 다가온 날이다. 겨울엔 뜨끈한 국 한 그릇이면 언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다. 다양한 국으로 한 달 오만 원 잘 살아보자. 그럼에도 나를 대접하는 한 끼는 절대로 소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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