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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람 Mar 30. 2018

#10. 운동회와 유나의 목소리

입술이 부르튼 트롬본 주자

꿈을 만난 순간의 기억. 어떤 사람은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수많은 기억 가운데 하나 정도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그 기억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어느 날, 꿈을 만났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동을 품은 기억. 음악을 꿈으로 만난 그 날들. 그 기억을 꺼내봅니다. 그리고 그 충만했던 순간을 다시 살아봅니다.


#10. 운동회와 유나의 목소리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나는 봄에 열린 전국 미술대회에서 특선으로 입상했다. 월요일 전체 조회 시간에 내 이름이 불려졌다. 대표로 단상에 나가 상장을 받는 건 고학년의 몫이었지만, 특선은 우리 학교에서 나 하나뿐이었다. 조회가 끝나고 교실에 돌아와서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이 서랍을 뒤지는 동안 나는 교탁 앞에 서 있었다. 꽤 긴 시간이었다. 그 젊은 여교사는 책상 서랍을 여기저기 다 뒤지더니 결국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어머, 메달이 없어졌네.”


나는 상장만을 받아들고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메달이 없어져서 가져오지 못했다는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만일 그런 말을 했었다면, 우리 담임 선생님은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겠지. 아마도, 그런 걸 원했으리라고 짐작된다.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는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건 꽤 큰일이었던 것 같다. 그날,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선생님 오른쪽 얼굴에 비치던 모습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내게 말을 할 때 느낀 거짓된 표정도 기억난다. 담담하게 들리던 그 목소리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4년간의 기억은 그것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내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 4년 동안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과 5학년이 되고 내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기억이 긴 잠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깨어난 것처럼 4년간의 기억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잠에서 깬 것처럼 기억이 시작된다. 5학년이 되어 이사를 했고, 태권도부에 들어가서 주장이 되었다. 가을 운동회에서 기왓장을 한 장밖에 깨지 못했다. 밴드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운동회가 계속되는 동안 나는 운동장 구석에 설치한 대형 천막 아래 앉아서 트롬본을 불었다. 클라리넷을 부는 창이와 수자폰을 부는 범석이가 그 천막에 함께 있었다. 처음보다 머리가 조금 더 벗겨진 음악 교사가 하얀 지휘봉을 흔들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줄다리기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곳에서 트롬본을 불고 있었다.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흙먼지가 공중에 떠다니다가 햇빛을 만나 희미한 무지개를 만들었다. 흙먼지 냄새와 밴드부의 연주 소리가 가득한 가을 운동회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본문 내용과는 관계없는 이미지입니다. / 중도일보, 기마전(1970 안산초)/사진=김완기

운동회가 끝나고 집에 갈 때까지 멀쩡했던 입술이 저녁이 되자 퉁퉁 부어올랐다. 윗입술에 커다란 물집이 잡혀있었다. 입술 하나가 더 생긴 것처럼 커다란 물집이었다. 가렵기도 했고 약간 욱신거리는 느낌의 통증이 있었다. 터트려야 할까,  그냥 두면 나아질까, 거울 앞에서 혼자 망설이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식구들이 눈치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능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좁은 집안에서 내 얼굴을 숨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밤이 되자 어머니가 내 입술에 난 물집을 보고야 말았다. 나는 그날 하루종일 트롬본을 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나팔을 불면 폐가 나빠진다는 친구들의 이야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알면 당장 그만두라고 할지도 몰랐고, 나는 그런 식으로 밴드부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난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일을 설명하는 게 싫은 11살 소년이었다. 


나는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고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몸에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누워버렸다. 어머니는 내게 자세한 설명을 듣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그냥 몹시 아프기로 마음을 정하고 저녁밥도 먹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밥도 먹지 않고 잠을 잘 만큼 아프면 당연히 학교에 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하루를 누워서 보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이제는 병원에 갈지 학교에 갈지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루를 쉬고 나면 학교에는 더 가기 싫어진다. 하지만 병원에 가는 건 더 싫었다. 더구나 입술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학교에 가서 왜 결석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진단서를 가져갈 수도 없었다. 어머니가 학교에 전화를 해준 것도 아니다. 나는 5학년이나 되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도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런 변명거리도 만들지 못한 채 교실에 들어갔다. 조회 시간이 되자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실 앞으로 불렀다. 나는 담임선생님이 아직은 조금 부어있는 내 입술에 관심을 가져주기만 바라며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내 입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어제 왜 결석했니?”


선생님은 단호한 목소리였다. 나는 약간의 죄책감과 패배감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이 전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했다. 한마디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수십번이나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내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운동회 때 보니까 입술이 많이 부었던데요.”


유나의 목소리였다. 유나는 3햑년 음악 교사의 딸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었다. 적당히 날씬한 체격에 언제나 차분하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유나는 다른 모든 교사들의 관심거리였다.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유나를 좋아했다.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건 설문조사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루종일 나팔을 불어서 그랬나 봐요.”

인천시 인터넷신문 i-View / 본문 내용과는 관계없는 이미지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모습을 유나가 봤다는 게 신기했다. 더구나 나도 집에 가서야 알았던 내 입술의 물집을 그녀가 알고 있었다는 게 놀랍기까지 했다. 유나의 말에 담임선생은 내 입술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은 아니었다. 가슴이 계속 콩닥거렸고 그건 당연히 유나 때문이었다. 어떻게 운동장 구석에서 트롬본을 부는 나를 그녀가 봤을까? 어떻게 내 입술에 물집이 생긴 걸 알았을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왜 담임선생님에게 그런 얘기를 한 걸까? 모든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유나가 나를 위해 그런 일을 했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건 그녀가 음악을 하니까 자연히 갖게 된 관심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10년 뒤에 이어진 우연 같은 일을 설명하긴 어렵다. 그리고 그런 우연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걸 알 수 없었다. 나는 너무 어렸고, 여자아이들에 비하면 더 어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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