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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지강씨 Mar 17. 2022

나는 '공능제'의 오명을 어떻게 벗어던졌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기술 중 하나입니다. 우리 대부분 직무역량에 관한 스킬을 배우는 것에 관심을 두지만, 상대적으로 대인관계 기술의 필요성은 덜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해볼 것은 공감 능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공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감정적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읽고 그에 부합하는 감정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인지적 공감'은 객관적으로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인지하고 맥락에서 그 사람의 사고를 쫓는 능력을 말합니다.


제 MBTI는 ESTJ이고, 특히 세 번째 T의 결괏값은 만점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안이 논리적인지, 혹은 목표 효율적인지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봐 왔거든요. 거기서 파생되는 의사소통의 방식 또한 대단히 직접적일 때가 많아 이따금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감정적 공감이 필수적인 상대방이 포함된 관계에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주변 지인에게 문제 상황이 생겼다고 가정해봅시다. 절친이 직장에서 큰 실수를 했을 수도, 동료가 집안에 일이 생겨 중요한 업무를 펑크낼 수도 있겠죠. 어쩌겠습니까. 이미 일어나 버린걸요. 해결 방법을 찾고 목표를 수정하고, 대안을 찾아 다음으로 나아가면 되겠죠.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면 굳이 표현을 고르지도 않았습니다. 그 상황을 주변에 하소연한들 원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니까요.


"괜찮아?" "그 사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라도 진짜 힘들었겠다."


저에게 이건 비효율의 문장이었고, 대신


"그건 네가 잘못했네" "다음에는 저렇게 해보는 게 어떨까?" "그럼 내가 뭘 하면 될까?"


 이런 문장이 툭툭 나오는 사람이었어요. 굳이 양념처럼 넣어주는 멘트가 안될 일을 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는 요식행위일 뿐이라 생각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다음의 단계까지 굳이 돌아가게 만드는 시간 낭비  이상도 이하도 아닌 행위라 여겼죠.  결과 '공능제' (= 공감능력 제로인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하하...


폭풍 칭찬에 앞서서 그 사람의 성향을 한 번쯤 떠올려볼 것...(메모)



이랬던 저인데 최근 들어 스스로 꽤나 많이 변화함을 느낍니다. 어디서부터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요, 아마도 작년에 진행했던 심리상담이 중요한 역할이 되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제 삶의 목표에 대해서 고민하고 행복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는가 깊이 생각해본 결과, 생각과 행동에 많은 변화가 생겼거든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끝까지 관철하고, 주변 사람을 다 꺾고 납득시키고 나서 결국 제가 얻는 건 무엇일까요? 제가 진정 목표하는 바가 (괴팍하다고 널리 알려진) 스티브 잡스와 같은 독보적인 전문가이었을까? 다시 한번 돌아봤습니다. 제 내면의 가치 우위를 살펴보니, 제 미래의 삶의 일부에는 반드시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하는 장면이 그려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까운 이들과 끊임없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에야 말로 분명한 제 삶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유행처럼 즐기던 MBTI 놀이도 좋은 방법론이 되었습니다. 애초에 논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자라난 나만큼이나, 날 때부터 감정적 공감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살아오며 '설마 이걸 몰라?'라고 외쳤던 내 마음속 횟수만큼이나, 반대로 나를 이해 못 할 인간으로 여기고 있을 다른 성향의 사람이 많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설마 이걸 이제 알았어?'


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음을 안다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을 배격하지 않고 목표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인지적으로 공감'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동행 중 지갑을 잃어버린 친구에게 얹는 잔소리 대신, 내가 그 상황이라면 얼마나 짜증이 나고 미안한 마음이 들지 한 번쯤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행위 말이죠. 업무 회의 앞단 5분 동안이라도, 그들의 주말이 어땠는지, 자녀 혹은 키우는 고양이가 잘 크고 있는지 물어보는 시간이 건조한 회의에 윤활유가 되어줌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여느 관계에서 감정적 교감이 필수적일 수 있음에 대해, 놀랍게도 30년 넘게 살고서야 인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감정적 공감 능력이 높지 못했던 사람임을 확고하게 인정합니다. 마치 간증의 시간 같군요. 세상에 저 같은 사람만 가득했다면 굳이 이 고민을 할 필요는 없었을 거예요. 다만 앞으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리더로서 저는 사람들에 더불어 공감하는 더욱 효율적인 방식을 채택해 가고자 합니다. 이것이 제 삶의 목표를 가장 현명하게 일구는 방법임을 깨달았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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