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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블리 Feb 07. 2019

순수한 게 어때서

나는 가끔 나이에 맞지 않게 '순수하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이것은 '순진하다'와 약간의 뉘앙스 차이를 보이는데,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을 만날 때,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보다 소소한 행복에 관심이 많을 때, 세상을 꽤나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본다거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관점을 취할 때, 사실 나는 이야기의 당사자로서 정확하게 어떤 포인트에서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으나 추측컨대 '세속적이지 않을 때', 순수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가끔은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완연한 삼십 대인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취급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순수하지 않게 살기 위해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를 좀 더 쫓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릴 때도 지금도, 좀 더 나이가 든 후에도 나는 '순수함'을 지켜가며 살고 싶다.





'순수하다'라는 것은 꽤나 장점이 있다. 제일 좋은 것은 꿈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마음먹으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이 때문에, 스펙 때문에, 조건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이 있고 지속적으로 실현한다면 누구나 그것을 가질 수 있다. 세상은 불가능한 것들을 이루어낸 사람들의 것이고 누구에게나 그것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슬프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발선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군가는 1의 노력을 들여 취할 수 있는 것이 누군가는 100의 노력을 들여도 어렵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나 그것을 얻을 기회가 주어진다. 누군가는 그것을 인생의 초반부에 얻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것을 인생의 후반부에 얻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장점은 인간을 수평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의 급을 나누는 사람들과 거의 가깝게 친하지 못하다. 잘 나가기 때문에 그 사람이 더 나아 보이거나 잘나 보이는 사람과 일부러 친해지고 싶은 일이 거의 없다. 인간관계는 자연스러울수록 좋고 모든 사람에게 장점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 학교를 나왔든, 직업이 무엇이든, 재력이 얼마든, 그 사람을 둘러싼 외부적인 환경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좋다. 수평적인 관점에서 사람을 보기 때문인지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삶의 다양한 시각을 배우고, 주어진 것을 겸허히 감사하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 덕에 순수함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순수하다는 것은 삶의 행복을 지켜준다. 나는 어린아이 같이 작은 일에도 까르르 웃는 순수한 영혼이고 싶다. 학교 다닐 때처럼 떡볶이 한 그릇에도 행복함을 느끼고 싶다. 직장생활을 하고 소득이 늘어나고 삶의 경험이 늘어가도 조그만 일에 감사하며 살고 싶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먹는 밥만큼이나 동네 식당에서 간단히 즐기는 밥에도 감사함을 느끼고 싶고, 명품 가방보다는 스스로의 취향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때로는 아이같이 옷을 입고 싶고, 동물원에 가서도 재밌게 놀고 싶고 그런 의미에서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다. 아이처럼.





세상에는 자기 것을 챙기고 사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순수하게 살면 경쟁에서 도태될지도 모른다. 가끔은 손해 보면서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조바심이 들기도 하다. 나이에 맞지 않게 순수하다는 말에 발끈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가다듬고 생각한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결국은 내가 사는 인생인데,


순수한 게 뭐 어때서.



by. 쏘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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