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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블리 Nov 08. 2019

끝판 깨기 중입니다.

왠지 아재 같아 보일까 봐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은 꽤나 등산을 좋아한다. 흙길이 발에 닿는 느낌도 좋고 풀냄새도 좋고 무엇보다 높은 곳에 올랐을 때 가슴이 탁 트이면서 벅차오르는 감정이 드는 것도 좋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인생이 등산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숨이 턱턱 차도 계속 올라야만 하는 산이나,

그것도 아니면 끝판 깨기 게임을 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열심히 이번 판의 왕을 깼는데,

다음 판에는 더 무시무시한 왕이 기다리고 있고

열심히 정상에 올랐는데,

 높은 다음 봉우리가 있고

인생에 꽤나 많은 문제를 풀어온 것 같은데

신은 인간을 늘 시험하는지, 더 높은 난관을 마주한다.




직업을 가지는 것과 관련한 문제를 풀었더니, 두 번째 직업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연애와 관련한 문제를 풀었더니 결혼에 관련된 문제가 기다리고 있고, 부모님과의 갈등에 대한 문제를 풀었더니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해야 하고, 이제야 밥 먹고 살만한데 집은 언제 살거니, 차는 살 수 있니, 노후 대비는 하고 있니 점점 더 어려운 현실의 문제와 마주한다.


어린 시절과 화해하고 나면, 가까운 과거와도 화해해야 하고,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한 듯 보이지만 더 큰 외로움과 마주해야 할 때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고통받지 않는 법을 조금 알 것 같은데, 풍요로운 관계를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과제가 주어진다.


"멈추고 만족하면 되잖아."


법정스님쯤 되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입장에서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게 된다.


'태어나길 원하지 않았지만

태어나면 문제를 풀며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개똥철학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와 관련한 문제만 풀다가,

우리와 관련된 문제를 풀고,

나만 챙기며 살기도 버거운데

가족을 챙겨야 하고

회사에서는 점점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는 속에서도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제를 풀고 나면 잠시나마 편안한 순간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높은 곳에 올랐을 때 아래를 내려다보면 탁 트인 마음을 가지듯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면  지나온 시련을 헤쳐온 자신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게 된다.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높은 산을 오르게 될까,

몇 판쯤 깰 수 있을까,

만렙을 찍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사실 만렙을 찍을 자신은 없지만

주어진 문제들을 담담히 풀다 보면 인생의 마지막쯤엔 지나온 길을 반추하면서 속 시원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이만하면 잘 살았지 뭐, "



by. 쏘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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