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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Dec 25. 2017

3. 낯선 집에서 한 달 살기

친절한 헝가리 부부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찾아보자

한 달 살기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숙소였다. 장기 숙박은 에어비앤비만 한 것이 없긴 한데 실제 방문하지도 않고 한 달을 미리 지불한다는 것이 또 부담스럽다. 일단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충전을 하러 간 여행이 스트레스로 바뀔 수 있고 한 달을 통으로 예약하려니 더욱 신중해졌다.


"너무 비싸면 안 되지만 그래도 깨끗해야 하고 너무 외곽이면 안돼. 음식도 해먹을 수 있어야 하고.."


예산 대비 욕심이 많아서 선택이 어려운 것이겠지. 그래도 물가가 저렴한 헝가리라서 시내 중심의 아파트들이 서울 대비 저렴한 가격에 올라와있었다. 그러다 발견한 이 숙소! 일단 후기가 6개밖에 없는 새로 생긴 비앤비였다. 후기가 적은 숙소는 사실 모험이다. 이미 예전 여행에서 후기가 적은 숙소를 방문 예약했다가 실제 방문 후 취소하고 분쟁조정까지 간 경우가 있었기에.. 한껏 예민하게 살펴보았는데 하루에 4만 원 정도의 가격에 취사도구도 갖춰져 있고 위치 또한 상당히 좋았다. 결국 한 달 114만 원 정도를 내고 예약을 했고 도착한 그날까지도 반신반의했는데! 실제로 보니 이게 웬걸. 지금까지 이용해본 에어비앤비 중 최고였다. 물론 시간이 지나도 문제가 없어야겠지만 일단 인테리어 전반, 청결, 호스트의 친절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유럽 쪽이 원래 그런 건지 천장이 높아서 사진보다 넓어 보였고 혼자 지내기에 딱 좋은 스튜디오였다. 호스트는 Neomi와 Sandor라는 이름의 부부였고 헝가리 사람들 원래 이렇게 친절한가 싶을 정도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또 영어도 굉장히 능숙했고 이후에도 부다페스트에서 영어가 통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아파트 건물 자체는 오래되고 낡아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약간 무서웠는데 내부는 리모델링을 해서 신축급으로 깔끔했다. 특히 주방부분이 마음에 들었는데 취사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이 갖춰져 있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예쁜 접시들을 보고 있자니 빨리 장을 봐서 요리를 해보고 싶어졌다. 인상이 푸근한 Sandor 씨는 참 자상해 보였고 허기진 나를 위해 과자와 커피 등의 웰컴 푸드까지 준비해주었다. 



낯선 집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

지구에서 정 반대에 위치한 낯선 나라에 도착해 한 달을 산다는 것은 상당히 묘한 일이다. 며칠 여행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이 동네를 내가 샅샅이 알게 되고 골목이 익숙해지고 내가 자주 가는 카페가 생기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면 인사하고 그들의 삶의 형태를 엿보는 경험은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익숙함에서 떨어져 나와 내 오감을 낯선 자극에 노출시킴으로써 틀에 박힌 생각들을 한 번 벗겨낼 기회를 줄는지도 모른다. 

민트색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던 키친


출퇴근을 하지 않는 디지털 노마드로서 살고 있는 지금, 매일 내 방과 동네 카페에서 작업을 해왔다. 매일 비슷한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스스로 무미건조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여행을 떠나 보니 새로움과 설렘은 반드시 충전되어야 할 감정임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늘 발전하고 싶어 하며 설렘을 쫒는 성향과 소심한 성격 사이에서 내 마음이 갈등할 때가 많았지만 설렘이 없는 삶은 시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가던 동네, 늘 가던 카페, 매일 오고 가는 집 그리고 매일 출퇴근하는 회사를 벗어나 낯선 곳에서 길지도 짧지도 않은 한 달을 살아보는 것은 인생에서 꼭 한 번 해볼 만한 경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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