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때나 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영화라서 벼르고 아끼다가 오늘에서야 봤다. 어렸을 때 나는 동생과 달리 맛있는 것은 맨 나중에서야 먹곤 했는데, 그렇게 아껴두어서 먹었을 때는 이미 배가 부르거나 아니면 음식이 변질되서 내가 상상했던 것 만큼의 맛과 황홀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실수에서 어떠한 교훈도 배우지 못한 채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끝까지 꼬불쳐두는 어른으로 자라버렸지만 화양연화는 실수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은 예외가 되었다.
이미 영화의 일부 장면에 마음을 뺏겨 영화의 엄청난 팬이 되어버린 상태인데다가 OST와 줄거리까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봐도 주인공들의 상황과 감정에 이입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 스포일러는 그야말로 공부 의욕에 불타오르는 학생에게 가해지는 엄마의 잔소리와 같다. 지금 딱 스스로 불타오른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 '넌 공부안하니?!' 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순간 다 때려치고 침대에 눕는 것처럼, 스포일러를 접하는 순간부터 영화 볼 마음조차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다르다. 결말을 영화 초반에 직접적으로 암시함으로써 클라이막스가 만들어 내는 재미를 제쳐두고도 나는 이 영화가 여러 번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홍콩의 정서와 풍경이 담긴 장면을 바라보고, 배우들이 빚어내는 세밀한 감정선을 숨 죽이며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며, 영화 안에서 보고 느낄거리가 많고(흔히 미장센이라고 하는 것들), 무엇보다 내가 앞으로 축적해 나갈 사랑과 인생의 경험에 따라 영화가 항상 다르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다른 감상과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는 흔하지 않기에 이 영화가 명작으로서 가치를 인정 받는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부터 스포일러O, 스포일러 강도는 中)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양조위와 장만옥이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식욕이 돋는 식사장면은 아니지만 Nat King Cole의 Aquellos ojos verdes가 흘러나오는 세련된 도시의 분위기와 에메랄드 빛이 감도는 어딘가 창백한 분위기가 낭만적으로 어우러져 있으며, 그 속에 두 배우의 눈빛과 행동이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한다. 이 장면만 따로 보아도 늘 그 분위기에 잠기곤 한다. 이 장면에서 그들은 서로의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바람을 폈을지 상상하며 그에 맞게 흉내내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흉내와 진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듯 하다. 머리의 생각과 그들의 말에서는 '내 남편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다.', '내 아내는 이렇게 먹는 걸 좋아했지.' 라고 하며 단지 흉내내는 것이라고 선을 긋지만, 마음과 눈빛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자잘한 행동에서는 깊은 감정적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를 위로하고, 진심을 수줍게 내보이는 듯한.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에게 조금씩 스며들고 위안을 받는 따뜻한 느낌이 레스토랑의 차갑고 푸른 분위기와 대비되어 나타난다. 참으로 매력적이다. 거기에 장만옥의 우아한 목소리까지. 이러니 나는 이 장면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대사가 많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전개도 빠르지 않고 장면의 전환도 현란하지 않다. 마치 4분 안에도 다 담을 수 있는 뮤직비디오의 내용을 1시간 30분으로 길게 늘인 듯한 느낌이다. 요란하지 않고, 느릿느릿 다가가는 영화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과 닮아있어 내게 이 영화가 더 감명깊게 다가온 것 같다. 상대가 고민할 틈도 없이 계속해서 사랑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사랑을 알리는 모습을 통해 사랑을 느끼고 행복을 얻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이더라도 이 영화 속의 양조위와 장만옥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과 짧은 말 속에서 항상 상대방을 깊이 생각하고, 배려하는 진심과 사랑이 느껴지는 묵직함이 더 좋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차이니까 옳고 그른 건 없다.) 이런 사람을 만나고, 내가 상대방에게 이런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차우씨와 첸 부인은 그들 각자의 남편과 아내와는 달리 너무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배우자의 불륜을 알고난 뒤에도 얼굴에 짙은 슬픔만 보일뿐 어떠한 격한 감정과 행동도 내비치지 않는다. 심지어 서로의 배우자들이 어떻게 이끌리고, 어떤 행동을 했을지 얘기하고 직접 해보지까지 않나. 나는 이러한 모습에서 차우씨와 첸 부인이 어떻게든 바람난 배우자들을 이해해보려고 처절하게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이렇듯 생각이 깊고,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철면피가 아니었기에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더욱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당시 홍콩의 시대상, 보편적인 도덕규범, 무엇보다 그들의 양심이 그들이 스스로 사랑의 감정 조차 느끼지 못하게 억압했다. 주인공들에 이입해서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참 속상하고 슬펐다. '미리 이별연습을 해봅시다.' 라는 대사가 어찌나 슬프게 다가오던지. 그들이 조금만 더 이기적이고 뻔뻔했다면 순간으로 남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이루었겠지만 이 영화가 불후의 명작이 되진 못했겠지. 단지 끝이 보이는 애틋하고 진심 가득한 사랑의 '순간' 이어서가 아니라 '아름답고 성숙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기에 진정으로 인생에서 아름다운 기억, 화양연화로 남게 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1965년 다시 집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후 첸 부인, 눈물이 그렁하다. 이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고 하소연하는 집주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영화를 보는내내 두 사람의 사랑을 깊이 응원하던 나로서는 1962년과 1965년의 홍콩이라는, 어긋난 타이밍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1962년의 홍콩 다세대 아파트에서의 정과 오지랖 사이의 오밀조밀한 인간군상은 그들의 사랑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3년 뒤, 첸 부인과 차우씨가 다시 방문했을 때에 그런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3년만에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1965년에는 옆집에 애 딸린 여자의 이름조차 모르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그들이 재회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다. 진짜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고, 타이밍이 안맞아도 이렇게 안맞을 수가 없다. 속상한 개인적인 감정은 제쳐두고라도 영화적 장치로는 여운을 남기는 꽤 괜찮은 장치였다고 위안을 삼는다.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그들의 사랑이 화양연화인 것은 고단한 삶 속에서 빛나는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순간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결말이 진행되었다면 차우씨와 첸 부인의 삶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화양연화가 아니라 어쩌면 또 다른 고단한 일상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순적이지만 가질 수 없었고, 되돌아 갈 수 없는 순간이기에 더 가치있게 된 것이 아닐까. 마치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 첫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듯이 말이다. 속이 쓰려 이렇게라도 위안 삼아야겠다.
영화는 캄보디아 사원에서 차우씨가 비밀을 속삭인 구멍처럼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있을테지만, 10년 뒤, 20년 뒤 다시 영화를 보고 변화될 나의 감상이 기대되는 영화이다. 모처럼 적당한 타이밍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