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가족에게 뜬금없이 나에 대해 물어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이 갔다. 그렇지만 나도 이게 가끔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번기회에 내가 생각하는 ‘나’와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가 어떤 차이가 있을지,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어느 하나의 성향으로 나를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 여기도 속하는 것 같고, 저기도 속하는 것 같은 면이 계속 보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내향적인 동시에 외향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이면서 보수적이기도 하다. 먼저 성격을 나누는 가장 유명한 기준인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얘기해보자면 나는 70%의 내향성과 30%의 외향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이 수치화가 가능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고,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 농담하고, 왁자지껄하게 이야기하는 면은 나를 이루고 있는 외향적인 모습이다. 동시에 밖에서 누군가와 어울릴 때보다 안에서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리고, 낯선 사람을 사귀는데서 얻는 재미보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있는데서 더 큰 재미와 편안함을 느끼는 면 또한 내가 가진 모습이다. 진보적인 사람인지, 보수적인 사람인지를 논할 때도 어느 한쪽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정치성향이라던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진보적이다. 그러나 잘 조직된 계획과 체계에서 안정감을 얻고, ‘(어른다운)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라는 말이 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나 자신조차도 ‘내가 보수적인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에 관해 ‘너는 말을 잘 듣는 듯 하면서도 실은 그렇지 않다.’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평이 있었다. 아직도 이 이상 가는 명쾌한 표현이 없는 것 같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장‧단점을 떠올려 보았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여 진행하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신중하게 판단을 내린 만큼 결정이나 결심을 번복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는 약간 단점이기도 하다. 다른 장점으로는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한다는 점,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점,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며 과도하게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는 점, 적당히 둔하고 잘 잊어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고치고 싶은 단점도 있는데 가장 큰 단점은 우선순위를 알고 있음에도 하고 싶은 일부터 하는 점이다. 그 밖에도 잠 앞에서는 한 없이 의지가 약해지는 점, 대화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지는 점, 걱정을 많이 하는 점이 있다.
주변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일 년 동안 같이 살고 있는 룸메들에게 물어봤다. 고등학교 친구는 나를 꼼꼼한 사람, 같이 대화할 때 즐겁고 의미 있는 사람, 자기 성찰적인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해준 말 중에 가장 감동적이었고, 고마웠던 말은 ‘너는 어떤 일을 하던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라는 말이었다. 룸메A는 나에 대해 잘 때 모습이 성장기 곰 같다고 했다. 이불 속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 귀엽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고,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고, 말 속에 배려가 들어있다고 얘기했다. 룸메B는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언니지만 어른스럽다고 대답했고, 룸메C는 매일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같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쿨하다, 츤데레 기질이 있지만 고민상담을 잘해줘서 좋다는 대답을 했다. 특별히 좋은 말을 해달라고 한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직접 물어보니 부담스러워서 좋은 말만 해준 것 같았다. 진짜 솔직한 얘기를 듣고 싶은데 내가 없는 곳에서는 내가 들을 수 없으니 그저 아쉬울 뿐이다.
인상 깊게 본 드라마 중에 ‘또 오해영’ 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못 생기고, 능력 없는 오해영과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오해영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인데 기억에 남았던 대사가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이 났다. “난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괜찮아지길 바랬던 거지, 걔가 되길 원한 건 아니었어요.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되길 바래요.” 라는 대사인데, 이 대사의 주인공인 부족한 오해영처럼 나 또한 단점도 많고,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여전히 노력해야 할 점도 많지만 지금의 나를 사랑한다. 처음에는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가 궁금했지만, 쓰면서 그게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완벽하게 알고 있더라도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나 자신을 버티게 하는 힘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일 테니 말이다. (2017년 11월 11일 토요일)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들며 종이박스와 클라우드에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을 모으고, 잊을 때 쯤 꺼내보는 악취미가 있는데 이 에세이도 최근 홍삼박스를 뒤적이다가 발견한 것이다. 이 에세이는 내가 2학년 때 과제로 제출한 에세이로, 교수님께서 '나 자신'을 주제로 쓰되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반영해서 써보라고 하셨던 것 같다. 이 수업은 글쓰기 수업이 아니었고 수업시연을 연습하는 수업이었지만 교수님께서 매주 1편씩 에세이를 제출하는 과제를 내주셨다. 표면적인 이유는 글을 잘 쓰는 것은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하며 교사가 꼭 갖춰야 할 소양이기 때문이었지만, 대다수 대학생의 글쓰기 실력이 하향평준화 되어가는 시대에 언젠가 교직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교수님의 후배들이 사람답게 글을써서 (당신을 귀찮게 하는 일 없이) 제 몫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셨을까...라고 나는 추측해본다. 글쓰기 교양 강좌 때보다 글을 훨씬 많이 썼는데 그럼에도 귀찮았던 기억이 아니라 좋은 추억으로 남겨둔 이유는 유일하게 과제에 대한 성의있는 피드백을 받은 수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첨삭해주시거나 종종 칭찬도 적어주셨는데 가뭄에 단비 내리듯 짧은 칭찬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ㅎㅎ 교사의 피드백이란 이렇게나 학생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나도 이 기억을 잊지 말아야지.
다른 글도 많은데 이 글을 처음으로 올린 이유는 첫째, 가장 의미있는 칭찬을 받은 글이기 때문이다. '글 잘썼어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다는 반응만큼 글을 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나의 다짐을 응원해주기도 하셨기에 더욱 감사했다. 두 번째 이유는 이 글을 다시 읽고, 브런치에 올림으로써 3년 전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내가 나 자신에게 품고 있었던 긍정적인 기운을 다시 한 번 마음에 되새기고자 함이다. 다시 도전중인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고 미운게 많아져서 스스로를 사랑하기가 쉽지 않아졌지만 그래도 다시 힘을 내보려고 한다. 예쁜 자식도, 미운 자식도 다 내 자식이라고 하지 않는가. 미운 내 일부도 받아들이는 동시에 미운 나 자신으로 머물지 않고 괜찮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