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통해 바라본 현대사회
요즘 에리히 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는 1장에서 19세기의 첫 번째 악덕을 권위주의라고 언급하며 현대의 윤리 문제와 더불어 글을 전개해나가는데, 그전에 우리는 이 책이 1937년에 쓰였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그의 현대가 지금으로부터 83년 전의 것이라는 그 사실을 말이다.
에리히 프롬은 여기서 이론적 설명과 함께 권위의 종류를 공포와 감정적 복종에 바탕을 둔 비합리적 권위와 한 인간의 능력에 대한 현실적 인정에 바탕을 둔 합리적 권위, 그리고 공개적 권위와 익명의 권위로 구분했다.
그는 오늘날의 익명의 권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시장이요, 이론이며, 건강한 인간 이성이다. 남들과 다르지 않고 싶다는 소망, 무리에서 벗어나다가는 들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모두가 자신의 자유의지로 행동한다는 착각 속에서 산다. 하지만 실제로 현대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이 착각한다."
나는 위의 문장을 보며 비합리적 권위도 결국 인간의 착각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직적 권력 구조나 갑질 문화가 인간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속에서 비합리적 권위를 행사하는 그들도 결국 현대사회의 시스템이 가지는 구조적인 문제에 끌려다니는 현대인을 보여주는 인간군상일뿐이다. 익명 뒤에 숨어 마음을 차지한 권위가 그들이 속한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와 20세기를 넘어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그 시대마다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결국 인간의 본성이라는 틀 안에서 그 겉모습만 바뀌어 왔다.
그러나 시대는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이고 인간의 삶에서 환경의 중요성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종류든 간에 사회, 즉 시스템 안에서 살아간다. 가정, 또래집단, 학교, 직장,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문제가 없는 곳이 없고 문제만 있는 곳도 없다. 문제가 있다면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어 왔다. 시대와 함께 발전한 기술은 그 목소리가 더 빨리 퍼져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고 그것이 시스템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모두가 옳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목소리든, 던져지면 작든 크든 파장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2020년 5월 25일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다시금 촉발시킨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전 세계에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것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가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인종차별이라는 사회악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에리히 프롬은 19세기의 악덕에 관해 서술하기에 앞서, 인간은 자연의 변덕이자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생명체이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문제를 떠안는 동시에 어떤 대답을 내놓는지에 따라 어떤 삶을 살 것인가도 좌우된다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도 이 사회로부터 시작되는 파장은 우리에게 질문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지 깊게 고민해 봐야 한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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