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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이 Aug 25. 2020

각자의 시선

연극 <미래의 여름> 리뷰


극이 시작되고 얼마 후, 나는 어린 시절 내 주위에 웅성대던 어른들의 목소리와 정겨운 부산 사투리가 떠올랐다. 지금까지 여러 매체에서 경상도 출신 역할을 맡은 배우의 사투리 연기가 자연스럽지 못해 작품 감상 자체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미래의 여름>의 배우들은 사투리에 어색함이 전혀 없어 관람하는데도 편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어릴 적 세상을 바라보던 내 시선엔 무지로 인한 편견과 차별이 있었고 거기엔 폭력성마저 내포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시선들이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을 마주 하는 것은 그런 과거의 내 자신과 조우하는 느낌이라 다시 한 번 찾아온 성장통을 앓는 기분이다. 5년 만에 꺼내든 이 이야기가 관객들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었으면 한다.”

_연출가 신명민


나의 여름은 어땠을까. 열이 올라 시뻘건 얼굴로 주택가 골목골목을 누비던 어린 날, 날 부르던 할머니의 목소리에 시원한 물이 가득 찬 커다란 대야에 앉아 받아들던 수박. 벌레가 싫어 잠드는 게 무섭다며 그 더운 날 숨어들어가던 엄마의 품. 


그 모든 건 소리로, 색깔로, 냄새로 내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미래의 여름'이라는 제목을 보고 떠올린 과거의 여름은 지금, 그리고 미래에 마주할 여름마다 또다른 감정으로 떠오르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함께 놀아줄 사람이 필요했을 뿐, 어른들의 사정은 알 턱이 없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을수록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간만큼을, 내가 느끼는 것들 만큼을 먹고 자라와 지금의 내가 되었다.   



미래도 자라나는 중이었다. 나는 이미 많이 자라버려서 그런지 미래의 고모인 동아의 시선에서, 동아의 마음을 더 많이 들어보고 싶었다. 동아가 안타까웠다. 그 마음이 안타까워 더 넓은 세상을 보길 바랐다. 하지만 이 마음 또한 그저 나의 것일 뿐, 동아가 정녕 어떤 마음으로 그 마을을 떠났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이것도 아이들이 어른들의 사정이란 것에 느끼는 답답함과 같은 종류의 것일까? 


하지만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다. 아이들만 어른들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것 같지만 막상 어른들도 아이들의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나는 당신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당신은 나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차마 말하지 못하는, 말하지 못했던 사정들도 우리 모두에게나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나의 시선은 결국 나의 것일 뿐, 당사자의 사정을 대변할 수 없다. 미래의 시선이 그랬듯.


동아는 결국 혼자가 되어 마을을 떠났다. 그런데 석우가 떠난 후의 시간 동안의 동아는 혼자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그곳에 없었으니 동아는 '그저 살아남아 있던 것'이 아닐까. 미래까지 떠나버린 시점에서 그에게 마을은 아픔으로만 남았을까. 아니면 그래도 좋았던 그 시절의 추억을 바라보며 앞으로를 살아나갔을까.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49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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