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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이 Jul 06. 2021

베르톨트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동시대적 관점으로 희곡 읽기

자본주의 시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자리한 것은 돈이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구의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지만 (한국도 아직 종전하진 않았고) 적어도 남한은 전쟁이 만연했던 과거와 매우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진정한 삶의 가치와 맞닿아 있느냐, 하면 나는 돈이 인간의 삶의 목적이자 주인이 되어, 손에 잡히지도 않은 채 기껏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숫자놀음에 우리를 장기 말로서 던져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전쟁 놀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여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이 있다. 이 작품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전쟁이라는 상황적 배경과 억척어멈(안나 피어링)이 가진, 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상인성인데, 이런 특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현대인들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에리히 프롬이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듯, 19세기와 20세기를 넘어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으며 그 시대마다 가지고 있는 문제들은 결국 인간의 본성이라는 틀 안에서 그 겉모습만 바뀌어 왔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는 돈의 흐름을 좇아야 한다고 쉽게 이야기한다. 돈이 최고라는 신실한 믿음을 굳건히 받치고 있는 사실적 증거들이 널려있으니 말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하나 돈은 인간에게 거의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만들고 때로는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렇게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돈은 환경적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피라미드를 만들어 낸다. 물론, 돈이 아닌 물리적 의미의 힘이 만들어낸 기존의 피라미드에 돈이라는 새로운 힘의 속성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억척어멈은 수많은 피라미드 중 하나인 신분 계급에서 천민이라는 계급을 부여받은 인물로서, 전쟁이라는 상황 속 승리와 패배로 갈라지는 흐름을 좇아 상업적 기회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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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척어멈 : (중략) 우리 천민은 승리와 패배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이죠. 우리네에겐 정치 상황이 어지러울 때가 제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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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위태로운 흐름 속 기존 질서체계의 굳건한 벽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꿈꿔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위험을 경계할지, 위험을 무릅쓰고 눈앞에 보이는 기회를 쫓을지에 대한 갈림길에 선다. 실제로 코로나 19의 발생과 함께 주가가 폭락하면서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미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반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수많은 매체에서 주식 관련 소재를 다룬다. 심지어 예능에서도.

그러나 이제 화폐의 가치는 그 자체로는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작금에는 돈이란 돈의 탈을 쓴 거짓이요. 거짓이라는 탈을 쓴 새로운 우상이다. 자극적인 미끼로 사람들을 낚시하는 썸네일들은 클릭(혹은 터치)이라는 손쉬운 열쇠를 가진 덕에 차곡차곡 쌓이는 조회수로 배를 불리고, 실체도 없는 가상화폐에는 가여운 불나방들이, 돈이라는 우상이 만들어낸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헐레벌떡 뛰어든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 결과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돈이라는 우상, 그가 만들어낸 새로운 시스템, 그 시스템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장기 말들... 인간들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 채 전쟁 같은 시스템에 굴복하고, 이제는 따라가기도 힘든 흐름에서 어떻게든 발버둥 치기 바쁘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지? 또 무엇을 잃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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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파시즘을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파행적으로 진행되는 폭력적 정치적인 체제 즉, 자본주의의 최종단계로써 파시즘을 파악한다.

김윤정, B.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아이들' 연구
- 등장인물의 성격분석과 현실변혁의 전망을 중심으로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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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는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을 그저 천재지변이나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시민들에게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깨달음을 주고자 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시민들의  전반적인 사고방식이 세워진 기틀은 세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뇌는 국가의 이익 (또는 국가 지도자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파시즘 위에 세워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요소다.


그래서 브레히트는 자본주의가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상업성을 전쟁이라는 수단과 연결 짓는 국가적 권력의 면면을 억척어멈이라는 새로운 인물 속에 담아냈다. 그리고 그런 배경 속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잃어가는 상황을 억척어멈이 그의 세 자녀를 잃게 되는 상황과 대응시켜 연극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관객에게 일종의 세뇌를 깨뜨리는, 하나의 도끼로서 내어 보였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전통적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론적 입장에서 극을 해석하던 연구 경향을 보였고,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 이론은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를 기본 틀로 하여, 현실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그리는 환상의 무대, 착각의 무대가 얼마나 현실과 비슷한가를 좋은 연극 무대의 조건으로 삼았기 때문에 브레히트의 의도와는 달리 관객의 비판적 수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


그럼에도 이미 브레히트가 문학의 '화자'를 도입한 서사극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제시했고, 이를 통해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것이 아닌 연극과 자신이 사는 현실을 비교해 보며 그 속에서 변증법적 자기 성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뒤늦게나마 관객들의 관극술이 비판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결국 그의 서사극이 등장한 배경엔 새로운 형태의 도끼를 만들고자 한 시도가 있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현대인들에게도 하나의 도끼라고 생각한다. 정보의 진위를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심해보는 것', 더 나아가 '비판적 태도'이며, 나는 그게 문해력이든 관극술이든 모든 정보를 수용하는 태도에서 제일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억척 어멈처럼 진위 판별 그 자체에만 집중하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


억척어멈 : 잠깐만, 카트린아 곧 갈께. 상사님이 돈을 내고 있지 않느냐. (반 냥 짜리를 이빨로 깨물어 본다). 돈이라면 다 수상쩍어서. 상사님, 나도 많이 당해 보았소. 하지만 이 동전은 진짜인데. 자 이제는 떠나자. 아일립은 어디 갔니?​

쉬바이처카스 : 모병꾼하고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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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대가 빨라지고 정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진정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정보량에 휩쓸려버리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가 거대한 권력과 사회 구조 앞에서 속절없이 휘둘리기 쉬운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지만 손에 쥐고자 하는 풍요로움은 너무도 익숙하고 선명하다. 알고 있음에도 익숙함에 깨닫지 못했던, 자본주의가 가진 거대한 권력을 떠받들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이미 자본주의의 최종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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