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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이 Jul 06. 2021

이철용 <사탄동맹> 리뷰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읽어보기

<사탄동맹>은 악의 주체라고 하는 사탄의 정체성이 결국 종교적 측면에서 형성된 것이며, 그 종교적 기반이 현대에 들어서며 오히려 현실의 부조리를 부추길 수 있음을 비판하는 작품이라고 보았다. 결국 누가 사탄인 것인가? 사탄이 악의 근원이라면 악의 근원은 사탄인 것일까? 어떤 악을 판단하는 것은 '진리'라 포장되는 전형적 선입관이다. 인간은 사회가 만들어 낸 틀이 확정짓는, 그 실체를 구체화하기 위해 사탄을 만들어 냈고 이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나는 <사탄동맹>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이런 '이름'에 주목해보기로 했다.


이 극에는 살로메, 우르술라,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 인물이 등장한다. 각 이름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중 살로메와 요한은 신약성서 중 마가복음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다. 의붓아버지 헤롯왕 앞에서 춤을 춘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했다는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와 관련된 소재는 특히 1870년대부터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곤 했다. 살로메는 이를 통해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이미지로 소비되곤 한다.


우르술라는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4세기경, 이교도인 색슨족이 잉글랜드를 침략하여 가톨릭 신앙을 파괴하던 배경 속에서 믿음과 순결을 지키기 위해 이교도들의 청혼을 거절하고 11,000명의 처녀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 순교자로 기록되는 대표적인 성녀다.


 <사탄동맹>의 초반부는 각 인물들에게 이토록 대비되는 살로메와 요한의 전통적 이미지, 그리고 우르술라가 가진 성녀로서의 이미지를 부여한다. 또한 요한은 살로메가 사탄임을 주장하며 그 증거로 살로메가 불안증세를 보이고 자살소동을 일으킨 점, 그리고 자신을 유혹하려던 시도와 더불어 살로메의 수감번호가 666번이고, 그녀가 뱀띠라는 점을 내세우기도 한다. 이 모든 증거들은 전통적, 종교적 관점에서 죄악임과 동시에 '사탄'이라는 상징이 가진 특징이다.


그러나 이런 끼워넣기식 사탄 색출은 15세기 ~ 17세기에 이뤄진 대표적 종교 재판인 '마녀 사냥'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이들, 즉 이교도들을 마녀라 판결하는 족족 무자비하게 처형해 버리지 않았던가. 이를 통해 당시의 종교가 사회의 도덕적 통념을 쥐고 흔드는 절대적 위치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런 극단적인 믿음과 신념이 이교도를 박해하는 명분으로 자리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 속에서도 종교의 탄생은 정치적 목적 아래 권력을 소유하기 위한 것이었고 말이다.


지금에 이르러 마녀사냥이 사전적으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된 것은 곧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현대의 상식에서는 지극히 벗어난 것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여성의 이야기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 보자면, 극 속의 여성들은 모두 기혼자이자 뱀띠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살로메, 우르술라, 그리고 요한의 아내까지.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특징들은 사회가 여성에게 씌워놓은 프레임을 상징한다.


(현대에서는 덜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사회는 여성에게 결혼을 통한 아내의 전통적인 역할을 당연하게 요구해왔다. 심지어 뱀이라는 상징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꼬여내 선악과를 먹게 한 주체다. 그를 통해 뱀의 꼬임에 당한 여성의 어리석음을 부각시키는 성경 속 이야기와 연결지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프레임, 상징을 지닌 인물인 살로메는 사탄으로서, 성경 말씀을 어기는 표본을 만드는 일을 해왔다고 밝힌다.



살로메: 세상에는 아내의 수만큼 남편이 있어요. 꼭 같지는 않지만 딸들도 있고요. 자, 내가 보아온 바, 아내 한둘이 남편을 죽이고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수의 아내와 딸이 남편에게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나의 일? 다른 일에 비하면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전쟁도 아니고, 학살도 아니고, 징병도 아니거니와 강간도 아닙니다. 내 일은 표본을 만드는 거예요. 남편을 죽여야만 할 때, 나를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말이죠. 나는 옛적 고대로부터 남편 살해의 모델을 만들어왔어요. 주저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성경에 실린 말을 정확하게 어길 수 있도록. 미약하기는 해도, 남편을 죽이는 아내는 조금씩 많아지고 있답니다. 종막에는 남편에 죽은 아내보다 아내에 죽은 남편이 많아지게 될 거예요.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사이

살로메: 남편을 죽인 아내는 모두 지옥에 갑니다. 살인도 죄지만, 남편을 살인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죄이거든요. 그 처사를 이용하려는 겁니다. 아내들로 가득한 지옥에 남편들은 감히 발도 들일 수 없어야 해요. 그곳은 반역의 나라요. 죄악의 거점이 되어야 해요. 그러나 한 가지. 이 죄악은 아내 자신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내가 부린 마술로는 하느님을 욕보일 수 없으니까요. 알겠습니까? 당신이에요. 우르술라. 당신이 해야 해요. 난 그저 표본에 불과해요.



이 대사 이후, 살로메는 이야기 한다. 성경 속의 아내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일 뿐이지만 깨진 다음에는 여리지도, 약하지도 않고 날카로워 찌를 수도, 휘두를 수도 있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깨뜨려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살로메는 표본으로부터 용기를 만들어내는 인물이 되었다.



우르술라: 나는요, 살로메. 찾고 있었어요.

살로메: 찾았다고요?

우르술라: 여태껏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고요. 난 오직 남편을 죽인 사람들만 만나요. 분명 그들 중 한 사람일 테니까. 당신은 죽여 왔잖아요. 언제나 당신보다 크고 강한 사람들을. 남편들을 말이에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요. 칼로 찌르고 줄로 조르고 독을 타고, 썰고 묶고 끓여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죽였어요. 인간이 결혼을 발명했을 때부터 보든 시대, 모든 국가를 아우르면서. 당신은 수도 없이 많은 아내로 변장해 꼭 같은 수의 남편을 죽여 왔고 단 한번도 실패한 적 없어요. 맞죠, 사탄. 당신이지요 살로메?

살로메: 그러나 내가 사탄이라면 어째서 사탄을 찾아다니신 거죠?

우르술라: 친구가 되고 싶어요.



남편을 죽이는 것은 지금까지 여성이 감내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희생과 봉사, 즉 여성으로서의 역할과 프레임을 깨 버리는 행위였을 것이다. 질그릇은 여성의 역할을 가두어 놓는 감옥과 진배 없는 상징이었다. 그 감옥을 깨고 나갈 때야말로 여성들은 진정한 자신의 무기로 사회적 성이 가져오는 한계를 무찌를 수 있는 것이다. 그 시작은 죄악이자 여성(아내)을 상징하는 살로메로부터였다. 이런 배경을 미루어 본다면 남편을 죽인 아내들이 가득한 지옥은 진정한 지옥일까?



요한: 알다마다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까. 여호와 하느님꼐서는 남성의 돕는 베필로 여성을 지으셨다고요. 읊을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라. 성당으로 돌아가십시다. 수녀님. 저는 아무것도 못 본 것으로 하겠습니다.

(중략)우르술라: 우리는 당신보다 강해요.



이런 전통적 가치관에 매여 있는 남편들이 가득한 현실이 진정한 지옥은 아닐까? 세상의 편견을 무찌르고 나아간 것이 죄라면 그 죄는 달디 달 것이고 그 죄의 연대자들이 발딛을 지옥은 또 다른 낙원으로의 통로일 것이다. 우르술라는 그래서 사탄과 친구가 되고 싶었을 테다. 성당으로 돌아가자는 요한의 말에도 우르술라는 굳건하기만 하며 그렇게 사탄은 동맹한다. 죄악으로 나아가 지옥에서 만난다.


종교의 교리와 그 신념이 만들어내는 성역인 교도소 밖을 나가서야, 신이 말하는 지옥에서야 살로메는 담배를 다시 물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질그릇과 교도소는 종교적, 전통적 가치관에 매인 여성들을 상징하고, 남편을 죽이는 행위는 질그릇을 깨는 행위이며 교도소를 나가는 순간과 같다. 그렇게 교도소라는 성역을 나가서야 물게 된 담배는 결국, 비로소 만끽하는 자유일 것이다.


이 극의 마지막을 마주하고 나면 인물이 가진 이름이 주는 전통적 이미지는 극 속 인물이 가진 이미지와 철저히 대비된다. 결국 이름은 껍데기일 뿐이며, 그 껍데기를 깨고 나아가는 힘은 연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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