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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디디아 Oct 05. 2020

하늘로 보내는 편지

잘 지내나요? 당신

당신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지  730일이 지났어요. 하루씩 살아낸 날들이 한 달이 되고 1년이 지나 이만큼의 시간이 걸렸군요.

아, 당신에게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어디서부터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요? 말하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알까요? 알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영혼은 내 옆에 잠시 머무르기도 할까요?

웅크린 채 울고 있는 더 작아진 나를 안아주기도 하나요? 내가 환하게 웃으면 그런 나를 보며 기특해서 웃어 주나요?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잠을 자고, 혼자인 설움과 외로움을 꿀떡꿀떡 삼키는 내가 짠해서 눈물짓기도 하나요?

당신의 영혼은 나 때문에 아프고 나 때문에 웃고 나 때문에 우나요?

당신이 나의 지난 시간들을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았으면 좋겠어요.  

 

생각해보니 이별이 나에게만 갑작스러운 건 아니었어요.죽음을 예측하지 못한 당신도 나만큼이나 당황했을 거예요. 그럴 수 있었다면 아마 당신 영혼은 내 곁에서 ‘미안해’를 수 십 번은 반복했겠지요.     


당신이  떠난 후

어느 날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꽉 막힌 체증에 숨이 막혔고 어느 날은 꿈인가 싶어 멍해지고, 어느 날은 이유도 모른 채 울었고 어느 날은 눈물조차 없는 속울음에 온몸이 젖어 무거운 하루를 살아냈어요     


여보 , 그 모든 하루에 나는 웃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슬픔에 질식당하지 않으려고 웃었고, 눈물을 머금고도 웃었고, 엄마여서 웃었고, 살아내기 위해 웃었어요. 당신과 살았던 시절보다 더 크고 환하게 웃으려 애썼어요.  

    

당신을 땅에 묻은 후, 난 단 하루도 내가 살아온 평범한 하루에서 숨거나 도망치지 않았어요.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을 가고 산을 오르고 팬플룻을 불고 춤을 추었어요. 그 모든 하루마다 불쑥 올라오는 당신 생각에 울컥해지는 순간들이 있지만 평범한 일상을 매일 살아가는 힘으로 나는 당신을 상실한 고통과 외로움의 시간을 견뎌요. 당신이 떠났어도  평범한 일상을 만들어주고, 나와 동행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그들의 손을 잡고 한 발걸음씩 앞으로 걸어가고 있어요. 때로는 당신이 모르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산을 올라요. 그래서 나는 당신 품을 잃고 더 많은 사람들 품에 안기는 법을 배우고 그로 인해 감사합니다. 당신이 죽고 2번의 결혼기념일과 2번의 당신 생일과 당신의 1주기 추모식을 보냈어요. 당신의 추모식엔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당신에 대한 즐거운 추억들을 나누었어요. 당신이 머물던 곳에서 이제는 사라져 버린 당신의 유머와 꼼꼼함, 자상함, 친근함을 우리 모두 그리워했습니다. 난 그날 아주 의연한 당신의 아내였어요.      

첫 추모식을 지낸 후 오히려 난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어요. 과거가 되어버린 온갖 기념일이 힘들었고, 잊고 지내려 했던 당신에 대한 기억들이 마구 떠올랐어요. 당신과 함께 한 시간들, 당신의 차가운 주검, 장례 후 내가 견뎌야 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 당신이 불현듯 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 하며 돌아올 것 같았고, 아침이면 ‘잘 잤어요?’ 물을 것 같고 어느 날 문자에 ‘오늘 좀 늦어요, 미안해요’ 할 것 같았죠. 당신이 떠나고 사람들은 내게 “잘 지내냐? 어찌 지내냐?”라고 물어요. 어느 날은 대답이 쉽고, 어느 날은 어려워요. 그러니 어느 날은 잘 지내고, 어느 날은 여전히 힘이 드나 봐요.


여보, 당신이 떠난 후 난 여전하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해요.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난 여전하고 싶기도 하고, 난 달라지고 싶기도 해요.

난 당신을 까맣게 잊고 싶기도 하고, 난 당신의 사소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기도 해요.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당신이 떠난 후 나의 하루하루에 나는 ‘정금이 되어 가는 날‘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나의 결국이 신의 손에 달렸고, 신이 나를 연단하신 후 정금같이 만드시길 소망함이죠. 그러니 오늘은 내가 정금이 되어가는 730 날이네요.

정금이 되어가고 있냐고요? 글쎄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긴 연단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 나를 향해 신은 깊은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네요.


여보, 나는 여전히 아주 사소한 일에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없는 삶이 외롭고 두렵지만, 5m 다이빙대에 홀로 서서 두려움을 넘어 보이지 않는 물속으로 뛰어내리던 순간처럼 그렇게 당신 없는 내 삶 속으로  뛰어들어 살아보겠습니다.


안녕, 나의 남편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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